2026년 10월 31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탁발(托鉢)

[월간 꿈CUM]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서 (04)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로마 라테라노 대성당 앞 광장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와 동료들의 조각상. 성 프란치스코와 동료들은 1210년 프란치스코회를 교황 인노첸시오 3세(재위 1198~1216)에게 승인받기 위해 라테라노 대성당을 방문하였다. 이 조각은 1926년 프란치스코 성인 선종 7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것이다.


‘좌청룡 우백호’(左靑龍 右白虎)는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와 성 도미니코. 신비를 온몸으로 체험한 이 두 성자가 없었다면 1200년대 교회는 어쩔 뻔했나. 두 사람은 13세기에 찾아온 진도 9 신앙 위기 지진 쓰나미를 막아준 거대한 방파제였다. 이들은 각각의 고유한 영성으로 교회에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명의(名醫)였다. 성 프란치스코는 단순함의 덕을 바탕으로 복음의 가난을 증거했고, 성 도미니코는 설교를 통해 복음을 전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생계를 이어가는 방식이 동일했다. 그것은 탁발(托鉢)이었다.

불교 용어인 탁발(托鉢)은 ‘바리때(공양 그릇)를 받쳐 들다’라는 뜻으로, 승려가 구걸하며 생계를 잇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탁발은 단순한 구걸이 아니라, 아집(我執)을 없애고, 무소유를 실천하고자 하는 불교의 수행 방식 중 하나다. 이러한 탁발에는 꼭 지켜야 하는 네 가지 방법이 있는데, 불교에서는 이를 ‘걸식사사’(乞食四事)라고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주정계(住正戒) : 심신을 바르게 하고 부처님 가르침에 바르게 머무를 것
▲ 주정명(住正命) : 부처님이 가르쳐 준 법도에 맞게 살아야 하며, 불성실하게 살면서 음식을 얻는 일은 없도록 할 것
▲ 주정각(住正覺) : 몸은 고통의 근본임을 깨달아, 음식은 몸을 지탱하는 만큼만 받아 만족할 것
▲ 주정위의(住正威儀) : 용모를 바르게 하고 점잖게 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공경하여 믿게 할 것

 
아씨시 카르체리 은둔소의 성 프란치스코 침소


이런 불교의 탁발 수도 전통이 가톨릭교회 내에도 있다.

‘오르디네스 멘디칸티움’(Ordines mendicantium)이라 불리는 ‘탁발수도회’ (托鉢修道會)가 그것이다. 이들 수도회는 청빈과 엄격한 규율을 이념으로 삼아 13세기 이후 서유럽에서 널리 퍼져나갔는데, 1210년 무렵 프란치스코가 창설한 프란치스코회, 1216년 도미니코가 창설한 도미니코회가 대표적이다.

프란치스코와 도미니코가 이 땅에 오기 전, 수도원 개혁의 선봉에 섰던 수도회는 시토회였다. 하지만 시토회는 1200년대 초에 이르러서는 동력을 잃고 있었다. 교회라는 마차를 끌고 가기 위해선 지친 말 대신 생기 넘치고 젊은 새로운 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탁발수도회 회원들의 탁발 수행은 수행자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방편이었으며, 복음의 근본적인 의미를 되돌아 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 결과 탁발하는 수도자의 모습 자체가 교회가 나아가야 할 모습을 예시했고, 이는 교회의 쇄신, 수도원의 쇄신, 평신도의 쇄신을 이끌어내는 동력이 됐다.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따르는 탁발수도회의 활동은 당시 수도원 개혁을 통해 교회 개혁을 이끌어내려던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뜻과도 딱 맞아떨어졌다. 교회 차원에서 탁발수도회 성장을 적극 지원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교황은 이런 탁발수도회에 막강한 특권을 주었다. 특히 재속 성직자들의 사목을 독려하고 신자들의 메마른 영성에 물을 주기 위해 교황들은 이들 탁발수도회가 교구장 지시를 받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그러나 이러한 특권은 차후 본
당 조직을 흩트려 놓고 본당 신부와 주교의 영향력을 감소시킴으로써 또다른 문제점을 야기시켰다. 탁발수도회의 조직 규모가 커지면서 기존 교구 및 본당과 마찰을 일으킨 것이다. 어쨌든 이 문제는 후에 벌어지는 일이고….

여기서는 프란치스코회의 정신을 따르는 회원들이 이전 수도자와는 무엇이 달랐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탁발수도회가 이전 수도회와 다른 점은 수도자들을 가리키는 단어에서부터 나타난다. 이전 수도회에서는 수도자들을 ‘monk’라고 하였다. 하지만 탁발수도회의 수도자들은 ‘Friar’라고 하는데, 이는 ‘형제’라는 뜻의 이탈리아 고어(古語)에서 나온 말이다. 이들은 기존 수도원과 달랐다. 나 홀로 독방에서 하느님을 추구하던 이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한 곳에 모여 살았고, 함께 몰려다닌 ‘형제’(Friar)들이었다. 이러한 형제 수도회는 검정 옷을 주로 입었던(Black Friars) 도미니코회, 회색 옷을 입었던(Grey Friars) 프란치스코회, 흰색 옷을 입었던 (White Friars) 아우구스티노회 등이 있다.

이들은 더 나아가 기존의 다른 수도원과는 다른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기존 수도회가 개인 수행 중심의 수도자 중심이었다면, 탁발수도회는 사제단을 중심으로 바퀴가 굴러갔다. 그 이유는 나 홀로 수행을 하는 방식으로는 부(富)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당시 성직 사회를 개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깨어있는 사제들이 필요했다.

교황들 역시 성덕이 높은 탁발수도회 수도자들이 성직자가 되어 설교하고 성사를 집행하기를 원했다. 특히 당시 신앙인들이 일부 평신도 설교자들에게 현혹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성덕 높은 탁발수도회 사제들의 미사 전례 집전 및 강론은 반드시 필요했다.

탁발수도회의 또 다른 특징은 강력한 중앙 집권적 운영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당시까지 수도원은 개별 수도원 중심으로 운영됐다. 그래서 중앙에서 통제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탁발수도회는 중앙 컨트롤 타워만 잘 관리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통제가 됐다. 탁발수도회는 규칙적으로 총회를 열었고 이 총회에서 수도회의 모든 사안이 결정됐다.

교황들이 탁발수도회를 좋아한 이유는 또 있다. 철저히 가난을 실천했기 때문에, 교회는 그들을 의심의 눈을 갖고 바라보지 않아도 됐다. 물론 과거의 수도자도 가난했다. 하지만 그 가난한 수도자를 돕기 위해 많은 기부가 있었고, 그 결과 수도원은 부자인 경우가 많았다. 수도원은 기부금 그리고 기부받은 땅에서 나오는 세금, 수도자들의 무임금 노동으로 인해 급속히 부를 쌓아 나갔다.

하지만 탁발수도회는 수도회 차원에서 가난을 천명한 수도회다. 그래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땅을 소유하지 않았으며, 기부자들의 기부를 거부하고 직접 탁발을 통해 생계를 해결함으로써 기존 수도원의 폐해를 극복했다. 모든 회원은동등하게 가난했으며, 그들은 일정한 거처나 식량을 마련하지 않고 주유하며 세상에 복음을 선포했다. 이러한 모습에 감동을 받고 그 가르침대로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이는 평신도들의 형제단이라고 할 수 있는 제3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참고로 제1회는 남자 수도회이고 제2회는 여자 수도회, 제3회는 기혼 남녀들이 수도자와 같은 봉헌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탁발수도회 또한 조금씩 원래의 정신을 잃고 방황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했다. 초창기에 그들은 딱히 집이라고 하는 것도 없이 세상을 주유했지만, 그러한 삶을 따르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공동체 생활이 불가피해졌고 일정 부분 소유를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함께 모여 살기 위해선 건물이 필요했다. 그런데 수도원 건물을 지은 장소가 묘하다. 기존 베네딕토 규칙서를 따르는 수도원들은 주로 사람의 발길이 닫지 않는 곳에 수도원을 지었지만, 탁발수도회는 탁발을 해야 했고, 사람들에게 설교를 해야 했기에 도시에 수도원을 지었다. 도시에는 돈이 많았다.

이 탁발수도회의 꼭짓점에 프란치스코가 있다. 허름한 단벌 겉옷, 헤어진 허리띠…. 프란치스코와 그 형제들의 외모는 영락없는 거지였다. 아씨시를 떠나 온갖 고생을 하며 도착한 로마. 프란치스코의 바리때에는 교황으로부터 인준받아야 할 탁발수도회 회칙이 들어있었다. 영양부족으로 인해 움푹 꺼진 그의 눈은 교황이 있는 라테라노 성 요한 대성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10-31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10. 31

시편 119장 132절
저를 돌아보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신 권리에 따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