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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역할을 했던 무당

[월간 꿈CUM] 교회사의 숨겨진 한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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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낙안읍성


1890년 함경도와 강원도 지역에서 사목 활동을 했던 쿠드르(Vincent Cuod erc) 신부님의 사목 보고서에는 무척 흥미 있는 이야기 한 편이 실려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착한 농부가 오래 전부터 천주교를 믿고자 노력했으나, 사나운 그의 아내는 남편이 천주교 신자가 되지 못하게 했답니다. 

어느 늦가을, 추수한 것을 곳간에 다 들이고 나서, 농부는 자신의 집을 살짝 빠져나와 어느 교우 집으로 교리를 배우러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이내 곧 성미 고약한 그의 아내가 그 교우 집으로 쫓아가서는 난리를 쳤답니다.
“내 남편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자신의 남편을 발견하자 아내는 칼을 들이대면서 ‘즉시, 조끼 한 조각을 잘라 주든지(이는 이혼의 표지입니다), 아니면 배교하고 집으로 돌아가든지’ 하라고 독촉했습니다. 농부는 자신의 아내를 버릴 생각이 없었지만, 죽으면 죽었지 하느님을 배반할 수는 없다고 항변했습니다. 그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착한 농부와 그의 아내는 싸움을 계속했고, 그러다 아내는 결국 ‘유산’까지 했답니다. 

그래도 남편이 배교하지 않자 아내는 생각한 끝에 그 지역에 유명한 무당을 찾아가서 자신의 남편이 ‘벙어리’가 되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그 무당은 물었습니다.

“그건 왜요?”
“남편이 가증한 천주학쟁이 짓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예요.”

“남편이 천주학쟁이가 되지 못하게 하려고 남편을 벙어리로 만들고 싶단 말이요?”
“그래요.”

“오! 그렇다면 아예 그런 생각하지 마시오.”

무당은 매우 엄숙하고 수수께끼 같은 태도를 취하며 그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천주학쟁이들의 교리는 하늘의 큰 신령의 교리인데, 이 신령이 내려오시는 때면 언제나 큰일이 일어난다는 걸 알아 두시오. 이 큰 신령님을 화내게 하지 않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심상치 않은 무슨 일이 일어날거요.”
이 말을 듣자, 농부의 아내는 벌벌 떨면서 무당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하느냐구요? 당신 남편뿐 아니라 당신과 당신 아이들, 아니 온 집안이 천주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쿠드르 신부님은 그 무당이 본의 아니게 훌륭한 선교사가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현재 착한 농부의 온 집안 식구가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있다는 말로 이야기를 끝맺음하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얼굴엔 미소를 지으며 이 이야기를 읽는데, 순간 문득 ‘그 무당은 천주교에 대해서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구체적으로 천주교를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당시 그 무당은 천주교 신자

들과 천주교 신앙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서는 알음알음, 들음들음 해서 간접적으로 보거나, 들은 것을 혼자서 추론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우리 천주교 신자들의 모습을 어렴풋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겠습니다.
1890년! 이때까지도 천주교 신앙에 대한 자유가 분명하게 천명이 된 적이 없었던 조선 후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천주교 신자들은 숨어서 실천하던 신앙을 서서히 드러내 놓으려 하자 일반인들은 화들짝 놀랐을 겁니다.

‘어라, 천주학쟁이는 조선 정부가 이 땅에서 싸그리 잡아서 다 죽였다고 하는데 어떻게 아직까지 천주교를 믿는 사람이 있는 걸까! 그렇다면 천주교야말로 진짜 종교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이 모시는 신은 정말로 위대한 큰 신이 아닐까?’

실제로 이 땅에서 천주교 신앙에 대한 생명력은 정말 위대했습니다. 생명을 걸고 지켜낸 천주교 신앙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땅의 모든 신앙 선조들 역시, 시성 혹은 시복이 되지 못했다 할지라도 한 분, 한 분이 드러낸 신앙의 물방울이 개울이 되고, 강물이 되어, 하느님의 마음을 닮은 바다가 되었을 것입니다.

1890년 당시, 무당까지도 천주교 신자들이 모시는 신이 ‘큰 신’이라 생각할 정도로 위대하고 대단한 신앙을 실천했던 우리 신앙의 선조들 한 분, 한 분에게 다시금 진심으로 큰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글 _ 강석진 신부 (요셉,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1988년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 입회, 1997년 종신서원을 했으며, 1998년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서강대학교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가톨릭대학교에서 역사 신학을 전공했다. 현재 전주교구 내 ‘개갑 순교성지’(전북 고창 소재)에서 성지 담당 소임을 맡고 있다. 저서로 「강석진 신부의 인생 수업」(가족편, 관계편), 「순교, 생명을 대변하는 증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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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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