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이상 반주 봉사를 하는 좌운국씨가 1일 제주교구 주교좌 중앙성당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성가에는 기도문과 복음 말씀이 담겨 있어요. 거기서 오는 울림은 절로 신앙심이 일게 하죠.”
제주교구 주교좌 중앙본당(주임 김석주 신부) 신자들은 주일 새벽 미사 때마다 한결같은 풍경을 마주한다. 신자들 사이에서 ‘좌 할아버지’라 불리는 좌운국(발렌티노, 88)씨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26년 4개월째 새벽 미사 반주를 해오고 있다.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는 매 주일 어김없이 동틀 무렵 새벽 5시 45분 집을 나서 15분 남짓 걸어 성당에 도착한다. 중·고등학교 음악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고승헌 신부의 부탁으로 반주 봉사를 시작했다.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하겠습니다”라고 답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만두려 할 때마다 새로 부임한 신부와 수녀가 부탁했고, 불가피한 사정으로 두 차례 다른 이에게 맡긴 것을 빼면 늘 오르간 앞을 지켰다.
좌씨는 오랜 봉사의 비결로 ‘책임감’을 꼽았다. 눈보라가 심해 걷기조차 어려운 날에도 신자들이 미사에 오는 모습을 보면 반주를 거를 수 없었다. 그는 “몇 사람이라도 미사에 오는데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빠질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의 한결같은 봉사는 평신도 주일을 맞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신앙을 실천하는 평신도 소명을 되새기게 한다. 지난 1일에도 중앙본당 새벽 미사에는 약 80명의 신자들이 그의 오르간 반주소리를 들으며 함께하고 있었다.
26년 이상 반주 봉사를 하는 좌운국씨가 1일 제주교구 주교좌 중앙성당에서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다.
“수고했다”는 신자들 한마디가 큰 보람
평생 음악과 함께했지만 미사 반주는 늘 긴장되는 일이었다. 원래 트럼펫을 연주하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건반 악기를 익혔다. 실수로 신자들의 몰입을 깰까 봐, 미사에서 연주할 성가를 일주일 내내 연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과 예수님, 교회 구성원인 신자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신앙심이 더 앞선다”고 말한다. 미사 후 “수고했다”는 신자들의 한마디와 “할아버지가 피아노 치는 게 제일 자랑스럽다”는 손주들의 말이 가장 큰 보람이다.
최근 3년 전부터는 눈이 침침해지고 집중력도 떨어진 데다 뒤를 이어 반주할 사람도 없어 걱정이 크다. 좌씨는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느님을 위해 연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가는 여러 명이 함께 부를수록 울림과 감동이 커집니다. 노래를 부를 때 느끼는 감정이 다르듯 신앙도 함께할 때 더 깊어질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