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오 14세 교황이 제41차 세계 젊은이의 날을 앞두고 담화를 발표하고, 전 세계 청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용기를 찾고 사랑을 실천할 것을 당부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앞두고 발표된 이번 담화는 한국어로도 공식 공개돼 눈길을 끈다.
교황청은 11월 3일 2027 서울 WYD 주제인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제목의 담화를 한국어를 비롯해 9개 언어로 발표했다. 2025년 제40차 세계 젊은이의 날 담화는 12개 언어로 공개됐지만 한국어는 포함되지 않았다. 서울 WYD를 앞두고 한국교회와 청년들에 대한 관심이 읽히는 대목이다.
교황은 담화에서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과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짚었다. 특히 소셜미디어의 꾸며진 이미지가 자신의 참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한다고 지적하며, 기술이 인간의 진정한 친밀함을 대신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풍랑 속에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상기시키며 “그리스도인의 용기는 우리 자신의 힘에서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 용기는 예수님의 현존에서 온다”고 밝혔다.
교황은 또 그리스도인의 용기는 누군가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진리, 자유와 정의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가혹함이 더 쉬워 보일 때 사랑을 실천하고, 반목이 유리해 보일 때 평화를 추구하며, 냉소주의가 설득력 있어 보일 때 희망을 지킬 것을 요청했다.
특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청년들에게 “여러분은 소중하다”고 격려했다. 이어 “참된 승리는 다른 사람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에 있으며, 완벽하게 보이려 자신의 약함과 한계를 숨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서울 WYD에 대한 기대도 나타냈다. 각국 청년들이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고, 보편교회의 아름다움과 한국교회의 너그러운 환대를 체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서울 WYD가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나는 기회가 돼야 한다”며, 대회 준비가 실무적인 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의 순례는 이미 시작되었다”며 “여러분의 마음을 준비하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서울에서 여러분을 만나기를 몹시 기다리고 있다”며 청년들이 자신의 상처와 세상의 갈등을 그리스도께 가져가고, 그분의 평화를 세상에 나눌 것을 요청했다.
세계 젊은이의 날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제정한 날로, 매년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지역교회에서 거행한다.
다음은 교황 담화 전문.
레오 14세 교황 성하의 제41차 세계 젊은이의 날 담화
2026년 11월 22일
[2027년 8월 3-8일,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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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33)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이 담화를 통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교회와 사회에게 선물인 여러분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아시고, 사랑하시며, 삶의 여정에서 여러분을 동반하십니다. 비록 여러분이 서로 다르고 온 세상에 흩어져 있을지라도, 하느님의 영께서는 여러분 모두 안에 위대하고 항구한 것을 향한 동일한 갈망을 불어넣어 주시며, 여러분이 자유와 진리를 추구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여러분의 갈망이 나옵니다. 또한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일깨워 주시는 희망, 다른 이들을 위해 빛이 될 수도 있는 그러한 희망도 하느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2027년 8월 서울에서 열릴 국제적인 만남을 고대하면서, 오는 11월 22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각 지역 교회에서 거행할 제41차 세계 젊은이의 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순간들을 준비하면서, 저는 여러분에게 다음 예수님의 말씀을 맡겨 드리고자 합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33) 이 말씀은 앞으로 몇 달 동안 우리의 주제가 될 것입니다. 이제 저와 이 말씀을 묵상하도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스도의 말씀은 용기를 내라는 초대로 시작됩니다. 때로는 우리 안에서 용기가 아니라 불확실함이나 두려움이 앞설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첫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이가 여러분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문제들과 걱정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어쩌면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고, 성공하고 완벽해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며, 끊임없이 자신을 남들과 혹은 도달할 수 없는 인위적인 이상과 비교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소셜 미디어 상의 세심하게 꾸며진 이미지로부터 받은 영향 때문에, 여러분이 참으로 누구인지 알아보고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은 참된 애정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기술은 진정한 인간적 친밀함을 대체할 수 없으며 단지 공감을 흉내 낼 수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몇몇은 외로움, 실망감, 혹은 자신이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 못 된다는 두려움을 겪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어쩌면 여러분 또한 밤에 작은 배에 의지한 채로 호수를 건너던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은 심정을 느껴 보았을 것입니다.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파도는 높게 일며, 호숫가는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우리가 용기를 내라는 복음의 초대를 듣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가오시며 말씀하십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요한 6,20) 제가 여러분의 마음 안에 심어 주고자 하는 확신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찾기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그분께서는 삶의 거친 물결을 헤치며 여러분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용기는 우리 자신의 힘에서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용기는 예수님의 현존에서 옵니다. 분명 그리스도께서 살아 내신 삶 역시 폭풍우 없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그러한 삶을 약속하지도 않으십니다. 하지만 어떠한 어두움이나 고통도 그분의 사랑보다 강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결코 여러분을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당신과 나누는 우정으로 초대하시고, 여러분 자신의 여정과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의 여정을 당신께 의탁하라고 청하십니다. 그러니 여러분을 찾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꺼이 만나 뵙고, 여러분이 각자 그리고 함께 걸어가는 그 길을 그분께 맡겨 드리십시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마음 안에서 새롭고도 항구한 용기가 자라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승리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셨던 주 예수님께서 이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33) 이 말씀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리고 여러분의 여정을 함께 나누는 형제자매들에게 개인적으로 직접 건네시는 약속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이 말씀은 권고라기보다 하나의 선물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세상을 이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복음 구절이 말하는 ‘세상’이 하느님께서 창조하셨고 사랑하시며 구원받도록 예정된 우주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둠의 세상’(에페 6,12 참조), 곧 인간의 마음 안에도 현존하면서 하느님께 맞서고 거역하는 그 이해하기 힘든 현실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오직 그분만이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이 어둠을 이기셨고, 인류에게 하느님께로 가는 길, 행복과 정의와 평화로 가는 길을 다시 열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용기의 다른 차원들을 이해할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용기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이 용기는 여러분 자신의 결단이나 강인한 성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앞서 가시는 분을 신뢰하는 데에서 오며,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서 생겨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세상을 사랑하심으로써 세상을 이기셨는지 묵상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용기란 무언가나 누군가에 ‘맞서는’ 용기가 아니라, 무언가를 ‘위한’ 용기, 곧 생명, 진리, 자유 그리고 정의를 위한 용기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용기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신 세상(요한 3,16 참조)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도 ‘어둠의 세상’을 ‘구원된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데에서 해야 할 몫이 있습니다. 그 몫이 작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서 도피하라고 여러분을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모든 것을 치유하는 당신의 사랑으로 세상을 어루만지라고 부르십니다. 여러분을 둘러싼 현실이 여러분의 마음을 울리고 움직이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멀찍이 서서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인간 조건 안으로 온전히 들어오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필리 2,7-8 참조) 그분께서는 기쁨과 우정도 경험하셨지만, 역경과 배척, 외로움과 고통도 겪으셨습니다. 하지만 결코 당신의 마음을 닫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상처 입은 세상,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으나 불의와 긴장과 두려움으로 얼룩진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이가 평화를 갈망하지만 폭력을 마주하고, 많은 이가 친교를 염원하지만 외로움을 겪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모순 한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의 온유한 용기를 따르라는 부름을 받습니다. 그것은 가혹함이 더 쉽고 효과적으로 보일 때 사랑을 내보이는 용기이며, 반목하는 것이 더 유리해 보일 때 평화를 추구하는 용기이고, 냉소주의가 더 설득력 있어 보일 때 희망을 굳게 붙드는 용기입니다.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의 승리 ‘승리’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떤 이들은 남들보다 더 강해지거나 자기주장을 관철하는 것, 또는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것을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하느님 없는 세상의 승리, 세상에 만연한 사고방식이 부추기는 승리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다른 종류의 승리를 발견합니다. 성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셨다고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필리 2,6-7 참조)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당신 자신을 낮추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거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증명해야 할 것도 없으시고 당신 자신을 위해 남겨두어야 할 것도 없으십니다. 당신 자신을 낮추심으로 인해 존엄성을 잃어버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께서는 죽었던 이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당신의 거룩한 마음이 지닌 위대함과 깊이를 드러내십니다. 그분의 승리는 비용을 셈하지 않고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의 승리입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참된 승리는 다른 이들의 위에 서려고 하는 데에 있지 않고, 그들에게 여러분 자신을 내어 주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 주신 길을 따른다면, 여러분도 자신을 드러내거나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없으며, 완벽해 보이려 하거나 자신의 약함과 의심과 한계를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과 다른 이들 앞에서 진실된 자기 자신이 될 용기를 지니십시오. 여러분의 존엄성은 여러분이 스스로를 위해 만들어 내는 이미지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소중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고,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아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을 위하여, 곧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 안에서 우리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우리가 참으로 누구인지 발견합니다. 사실 우리 내면 깊은 곳에는 우리 자신을 내어 주고자 하는 갈망, 다른 이들의 행복과 선익을 위해서 우리의 삶을 봉헌하고자 하는 갈망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자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염려하는 것을 넘어, 사랑의 너그러운 창조성에 마음을 여는 자유입니다.
겸손함의 용기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자기 비움은 십자가 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부께서는 성자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모든 피조물 위에 드높이셨습니다. (필리 2,9-11 참조) 부활은 스스로를 높이는 행위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부활은 성부와 그분의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용기의 또 다른 차원을 발견합니다. 곧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우리는 이를 겸손함의 용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벗이 된다는 것은 이러한 면에서도 더욱 그분을 닮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고방식은 우리가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내야 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개선하고 더 강한 개성과 성품을 길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우리가 우리 자신의 구원자라고 믿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우리에게 성장의 또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맡겨 드리는 길입니다. 이는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며, 멈추어 서서, 귀를 기울이고,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의탁하는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그리스도께 마음을 연다고 해서 여러분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여러분은 하느님의 눈에 여러분이 누구인지 더욱 깊이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분께서 바라보시는 그대로 여러분 자신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마음의 깊은 곳으로 시선을 돌리십시오. 여러분은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구원하는 그분의 은총에 여러분 자신을 여십시오. 그분의 사랑이신 성령께서 여러분의 삶을 이루어 가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여러분 안에 머무르시며 여러분의 선택을 인도하게 하십시오. 그렇게 될 때, 일상의 평범한 상황 속에서도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친구들에 대한 신의에서, 여러분과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존중에서, 외로운 이들에게 기울이는 관심에서, 가장 약한 이들에게 보이는 친밀함에서, 나아가 여러분이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모든 것이 사랑으로 변화됩니다. 많은 이가 사랑을 나약함의 한 형태로 여기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이야말로 자유와 힘의 원천임을 보여 주십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평화를 지니고 여러분을 만나러 오십니다 부활하신 날 저녁, 부활의 빛이 이미 세상에 들어선 때에, 제자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가득 차 다락방의 문을 걸어 잠그고 모여 있었습니다. 믿음이 어둠을 단번에 몰아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그 어둠 속에 홀로 버려두지도 않습니다. 승리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두려움을 이겨 내거나 문을 열기를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한가운데로 오십니다. 그분의 첫 말씀은 이렇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요한 20,19)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었습니다. 하나는 그분을 배반했고, 다른 하나는 그분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평화를 건네십니다. 어쩌면 여러분 자신의 마음 안에도, 그리고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 안에도, 실망과 상처, 원망이나 죄책감으로 인해 굳게 닫힌 문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에게 당신의 평화를 주러 오십니다. 여러분을 서로 화해시키러 오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용기는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에서, 용서하시고 우리를 파견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에서 솟아납니다. 그분께서 주시는 평화의 선물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용기로 우리를 채워 줍니다. 이 용기로 인해, 우리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두려움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 여러분의 마음을 여십시오 우리가 서울에서 모일 때, 여러분은 보편 교회의 아름다움과 한국 교회의 너그러운 환대를 특별한 방식으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닌 젊은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함께 모일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 성체성사(미사)와 십자가의 길, 교리 교육과 전례 거행 그리고 수많은 만남을 통하여, 여러분은 복음이 어떻게 모든 경계를 뛰어넘어 모든 백성에게 말을 건네는지 새롭게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시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나고, 그분께 여러분의 삶을 맡겨 드리는 기회가 되게 하십시오. 바로 이것이 세계청년대회가 제정된 이유입니다. 우리의 순례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서울로 가는 여정의 채비가 실무적인 수준에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준비하십시오! 그리스도께 여러분의 물음들과 여러분의 상처들을 가져오십시오. 아울러 여러분의 사회를 갈라놓고 나라들이 서로 대립하게 만드는 상처들도 그분께 가져오십시오. 신음하며 고통받는 이 피조물,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을 그분께 가져오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여러분의 기쁨과 희망을 예수님과 나누십시오. 바로 이러한 정신으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당신의 교황직무를 시작하시며 하신 말씀을 저 또한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 문을 활짝 여십시오!” 그분께 여러분 자신을 열기에 앞서 완벽해지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그분께서는 그저 여러분 그대로인 여러분을 만나러 오십니다. 그리스도께 여러분의 삶을 여십시오. 그리스도께 여러분의 공동체를 여십시오. 여러분이 만나게 될 이들의 마음으로 인도하는 길을 여십시오. 잠겨 있는 문들을 지나 들어오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우리 한가운데로 오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더러 살아가라고 부르시는 삶에 미치지 못하는 그런 삶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그분의 사랑으로 하나 되고 변화되도록 여러분 자신을 내어 맡기십시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저는 서울에서 여러분을 만나기를 몹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그곳에서 만날 주님께서는 이미 여러분을 만나러 오고 계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라고 하신 그분의 약속을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이 약속이 여러분의 여정 중에 여러분을 동반하게 하십시오. 교회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어머니다운 전구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맡겨 드립니다. 성모님께서 친히 그러하셨듯이, 그리스도께 마음을 열고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며 기쁨으로 그분의 평화를 받아들여 모든 이에게 나누어 주는 법을 성모님께서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빕니다. 2026년 10월 22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기념일에, 바티칸에서 레오 14세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