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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민중에게 다가가게 한 착한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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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은 제2의 성령강림 사건 이라고도 부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한 복자 교황 요한 23세(재위 1958~1963)의 서거 40주기가 되는 날이다.
복자 교황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교회 쇄신 △그리스도교 일치 △교회와 세상과 대화의 기틀을 마련했을 뿐 아니라 교황이 귄위주의자 가 아니라 사목자 라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 인물이다. 교황 요한 23세(1881~1963) 서거 40주기를 보내며 생애와 인물됨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 열린 교황
 복자 교황 요한 23세와 친분을 쌓았거나 그를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요한 23세는 모든 것에 열려있는 분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과 대화한다고 해서 일부 보수층으로부터 붉은 교황 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개방적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요한 23세를 좋으신 교황 (
a
a buono)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77세 고령에 교황으로 선출된 요한23세는 즉위 후 교황청 기관지에 교황에 관한 특별한 경어를 쓰지 말도록 했다. 이전까지 신문은 교황에 대해 지고하신 분 선택받으신 분 이라고 칭했고 항상 말씀이 축복받으신 입술에서 떨어지셨다 라고 표현했는데 요한 23세는 이를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로 바꾸었다.

 또 아무리 찾아봐도 교황은 혼자서 식사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면서 언제나 교황 혼자 식사를 해왔던 교황청의 오랜 관습을 파기했고 교황청 직원의 급료가 매우 박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공정하지 못한 일 이라며 임금을 올려주었다.
 소련 공산당 의장인 흐루시초프의 사위와 딸이 요한 23세를 알현한 것을 못마땅히 여긴 한 주교가 바티칸 관리들 가운데 좀 곤란한 사람이 있다 고 노골적으로 표현하자 교황은 무신론과 무신론자를 구분하라 면서 무신론은 단죄받아야 하겠지만 무신론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고 다독였다.
 요한 23세는 1959년 1월 즉위 후 처음으로 소집한 추기경 회의에서 추기경 숫자를 70명으로 제한한 교황 식스토 5세(재위 1585~1590) 규정을 폐지하고 23명의 새 추기경을 임명한 후 곧이어 인도와 아프리카 출신이 처음으로 포함된 32명을 더 임명했다.
 교황은 또 이 추기경 회의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소집 의사를 밝혔다. 일부 추기경이 교황이 교회를 다스리며 잘못을 범하지 않는데 공의회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고 반문하자 요한 23세는 창문을 열면서 공의회는 이 바티칸 안에 어느 정도는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을 것 이라고 말했다.

 ■ 한 평생 가난한 이들 편에 선 목자
 교황 요한 23세는 1881년 11월25일 이탈리아의 산골마을 소토일몬테에서 가난한 농부인 조반니 론칼리의 13명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1904년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에서 일하다 1925년 주교품을 받은 그는 600년 만에 처음으로 불가리아 교황대사로 파견됐다.

10년 후인 1935년 대주교품을 받고 그리스와 터키 주재 교황대사로 부임한 그는 정교회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를 방문 900년 만에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를 만난 첫 교황청 인사로 기록됐다.
  성직자들에게 그 나라 말로 전례를 하고 구호활동에 힘쓸 것을 강조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론칼리 대주교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때인 1943년에는 유대인들의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해 유대인 수천명에게 가톨릭 세례 증명서- 신분증 을 만들어 주어 목숨을 구해 주었고 1944년 프랑스 주재 교황대사가 된 후에는 프랑스에 수용돼 있는 25만명의 전쟁 포로 석방을 위해 힘썼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를 민중에게 끌어내려야 한다 고 역설해 프랑스에 노동사제 를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다.   론칼리 대주교는 1953년 추기경으로 서임된 후 베네치아 총대주교로 재임하다 1958년 10월28일 교황으로 선출됐다. 요한 23세는 교황 즉위 이후에도 병원과 감옥을 방문해 환자들과 수감자들을 위로했고 회칙 룗어머니요 스승룘 룗지상의 평화룘를 통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적 관심과 국제 연대를 강조했다. 요한 23세는 또 1962년 한국 천주교 교계제도를 설정해 한국교회의 자립 기틀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1963년 6월3일 선종한 교황 요한 23세는 후임 교황인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 소송이 시작돼 2000년 9월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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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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