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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개발 대부 경원하 박사 영세 사실 확인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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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트리올(캐나다)=미 뉴욕지사 장기풍 주간] 북핵 개발 대부 로 알려진 경원하(74)박사의 망명설이 지난 4월19일 외신을 통해 보도되자 경 박사에게 세례를 준 고종옥(캐나다 몬트리올대교구 은퇴)신부가 30년만의 재회 기대에 설레고 있다.
 고 신부가 경 박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66년 춘천 성심여대(가톨릭대에 통합된 부천 성심여대 전신) 재직 중 브라질로 이민을 떠난 경 박사가 브라질 이민자들의 대부였던 고 박동열(토마스) 해병 예비역 준장의 소개로 당시 몬트리올대교구 생 루이 드 프랑스 본당 보좌였던 고 신부에게 캐나다 이민 초청을 부탁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경씨로부터 자신을 소개하는 장문의 편지를 받은 고 신부는 즉시 경씨와 한국에 있던 부인과 두 딸 등 가족의 캐나다 이민을 주선했고 경씨 가족은 캐나다에 입국하자마자 고 신부 주선으로 셍드니 거리 성당 인근에 방을 얻어 살게 됐다. 이때 맥길대 대학원에 들어간 경박사는 69년 구면 폭발 충격파에 대한 수치해석 으로 석사 72년 구면 가스 폭발파의 이론적 연구 로 박사학위를 받는 과정에서 고 신부로부터 세례(세례명은 고 신부가 기억을 하지 못함)를 받았으며 경씨가 미아(美芽 아름다움의 씨앗 이 되라는 뜻) 희아(喜芽 기쁨의 씨앗 )라고 이름을 지은 두 딸 또한 가톨릭계 학교에서 세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해방 후 김일성 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6·25전쟁 중 단신 월남 가족을 그리워하던 경 박사는 72년 북한을 방문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온 뒤 당시 한국 중앙정보부와 캐나다 국립경찰(RCMP) 정보관계자들에 의해 요주의 인물 로 낙인찍히며 당국의 감시를 받게 됐고 한국정부의 입김으로 캐나다의 직장마저 잃게 되자 74년 북으로 떠났다.
 이 때문에 고 신부는 경 박사와 관련 수차례에 걸쳐 캐나다 국립경찰의 조사를 받았으며 이듬해 봄 경 박사가 파리에서 전화를 걸어와 고 신부와 만나기를 희망해 재탈출의 기대를 안고 파리로 갔으나 1년간 사상교육 때문에 과학 서적을 단 한권도 읽지 못했다 는 불편한 심경을 전해들었을 뿐 이것이 마지막 만남이 됐다.
 고 신부는 이어 83년 북한 김영남 외교부장관의 통역으로 경시의 큰 딸 미아씨가 유엔 총회에 참석했으나 정체가 드러나 곧 평양으로 소환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던 것과 84년 방북 당시 북한 핵물리학연구소에서 일한다는 경 박사와의 만남을 북측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던 사실을 털어놓고 그간 사제로서 개인적 비밀을 가슴에 묻고 지켜왔으나 그가 자유세계로 망명한 지금 거의 30년만에 (속내를) 털어놓아 홀가분한 느낌 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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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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