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에 장기를 이식할 때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제거한 이른바 녹아웃(Knock-out) 돼지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연초 세계 생명공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복제양 돌리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로슬린 연구소의 자회사인 미국 버지나의 PPL 유전공학 연구소가 2일 인체에 이식됐을 때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제거된 복제 돼지 5마리가 지난 성탄절에 태어났다고 밝힌 데 이어 미국 미주리대학과 생명공학 벤처인 IBT의 공동 연구진도 4일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를 통해 인체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제거된 복제 돼지 4마리를 건강하게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녹아웃 돼지 복제의 잇따른 성공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장기 이식 시장에서 이종(異種)간 장기 이식의 청신호가 되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복제 돼지의 장기는 인간 배아의 줄기 세포를 이용한 장기의 인공 생산을 둘러싼 윤리적 논쟁을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이식용 장기가 상품화될 경우 전체 시장 규모는 연간 110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시장성도 매우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 관련 교황청 생명학술원이 지난해 가을에 발표한 「이종간 장기 이식의 전망-과학적 측면과 윤리적 고찰」이란 문헌이 관심을 끌고 있다.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일간지에는 9월26일자 주간지는 11월28일자)에 발표된 이 문헌은 이번과 같은 복제 돼지의 탄생이 임박했음을 예고하면서 이종간 장기 이식의 과학적 측면과 윤리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문헌의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과학적 측면=문헌은 이종간 장기 이식에 있어서 가장 큰 난제는 동물의 장기를 인체에 이식했을 때 생기는 거부반응을 없애는 일이지만 현재의 과학 기술로 볼 때 거부반응을 일키는 유전자를 제거한 이른바 ‘녹아웃’(knock-out) 복제 돼지의 탄생은 곧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러한 복제 돼지의 장기가 임상에 이용되기까지에는 아직 많은 난관이 남아 있다. 우선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또 다른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들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해결해야 한다. 또 이들 유전자들의 거부반응 기능을 제거했을 때 다른 중요한 기능들이 함께 손상되는지의 여부를 확인해야 하고 이들 장기들이 종(種)의 장벽을 넘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도 검토돼야 한다고 문헌은 밝히고 있다.
나아가 이식된 장기에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의 잠복 가능성의 여부도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라고 문헌은 덧붙이고 있다. 실제로 에이즈 바이러스나 에볼라 바이러스 등은 동물에게만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로 퍼진 사례들이기 때문이다.
문헌은 따라서 이런 복제돼지의 장기를 임상에 적용하기에 앞서 인간이 다른 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예컨대 다른 영장류에 장기를 이식했을 때 최소한 90일 이상 생존할 수 있어야 하고 이식된 장기는 평생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문헌은 여러 가지 기술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머지 않은 장래에 돼지의 장기가 장기 이식에 있어서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윤리적 측면=이종간 장기 이식은 과학적인 측면 외에 신학적 인간학적 심리적 윤리적인 문제들을 아울러 내포하고 있다고 문헌은 지적한다. 그리고 문헌의 3분의 2가 이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문헌은 이종간 장기 이식과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고찰하고 있
다. 첫째는 인간의 창조 질서 개입 말하자면 동물의 장기를 존엄한 인간에게 이식함으로써 초래할 수 있는 창조 질서의 혼란이 어느 정도나 용납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헌은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창조주의 명령에 따른 인간의 의무와 권리가 재천명돼야 한다는 원칙론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즉 인간은 우주 만물을 정복하여 부릴 수 있지만 이 일은 창조주께서 세우신 자연 질서를 거슬러서는 안되며 창조 질서 안에서 또 창조 질서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인간의 선익을 위해 동물을 이용하는 것이 어느 정도나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헌은 인간을 위해 동물의 장기를 이용하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창조 질서와 충돌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켜야 할 조건들이 있다. 인간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동물을 불필요하게 희생시키거나 고통을 안겨서는 안되며 동물계에서 종의 다양성과 균형을 상당히 훼손시킬 수 있을 정도의 유전자 변형이나 조작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고려해야 할 점은 장기 이식이 그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의 인간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된 것이다.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사회 문화적 측면과 심리적 측면까지 고려해야 하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장기 이식에 따른 윤리적인 한계는 장기를 이식받은 그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에 어느 정도나 영향을 미치느냐에 달려 있다고 교황청은 밝히고 있다.
이 같은 고찰과 함께 문헌은 이종간 장기 이식이 수혜자의 건강을 비롯해 후손이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 수혜자와 그 가족들의 동의 장기이식 비용이나 특허권 문제 등에 따르는 경제적인 영향 등에 대해서도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생명윤리 분야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원칙들이 이종간 장기 이식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문헌은 이 밖에도 과학자들에게 이종간 장기 이식의 대안 예컨대 배아의 줄기세포가 아니라 성인의 줄기세포를 활용하는 문제 등에 대한 연구 노력을 소홀히 하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