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비오 12세(재위 1939-1958).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유다인 대학살에 대해 침묵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오스카 쉰들러보다 더 많은 유다인들의 목숨을 구했다고 한 유다인 역사학자가 주장하고 나섰다.
뉴욕의 유다인 역사학자 랍비 데이비드 달린은 최근 이탈리아 일간지 「아베니레」와의 인터뷰에서 “유다인들은 20세기에 비오 12세 교황보다 더 훌륭한 친구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홀로코스트(유다인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유다인들을 인터뷰한 라피데 문서에 따르면 비오 12세는 적어도 70만명의 목숨을 구했다고 하지만 또 다른 자료에서는 적어도 86만명 이상의 유다인 목숨을 구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면서 비오 12세는 나치의 유다인 대학살에 결코 그냥 있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랍비 달린은 독일군이 로마를 점령하고 있을 당시에 비오 12세는 가톨릭 성직자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이용하라는 비밀 지시를 내렸다면서 이로 인해 이탈리아에 있는 수많은 유다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유럽 전체에서 유다인의 80가 희생된 반면에 이탈리아의 유다인은 80가 살아 남았다면서 로마에서만 155개의 수도원들이 5000명의 유다인에게 피난처를 제공했으며 한때는 교황의 여름 별장지인 가스텔 간돌포에도 적어도 3000명이 피난해 있었다고 말했다.
랍비 달린은 또 교황이 유다인들에 대한 박해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교황의 침묵은 가능한 더 많은 유다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이었다”면서 교황이 나치를 공개적으로 규탄했을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 비오 12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 특히 유다인 대학살을 적극적으로 규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에 의해 비난을 받아왔으며 2차대전 당시 교황청과 교황 비오 12세의 역할을 규명하기 위해 지난 1999년에 발족된 가톨릭-유다교 역사위원회도 위원회의 유다교 측이 교황청이 비오 12세에 관한 고문서 기록을 전면 개방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우는 바람에 지난 7월말 해체된 바 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