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무총장 김종수 신부는 북한 조선로동당 창건 55주년을 맞아 북측의 초청으로 지난 9일부터 14일까지 북한을 다녀왔다. 방북기간중 장충성당을 방문 신자들을 만나고 미사를 집전한 김 신부가 전하는 북한교회의 모습을 소개한다. 편집자
“사무총장 신부님 잘 오셨습니다.” 갑작스런 인사에 깜짝 놀라 바라보니 예순은 되어 보이는 마음 좋게 생기신 한분이 내게 인사를 했다. “김종수 사무총장 신부님이시지요? 저 조스테파노입니다. 이번에 신부님을 모시게 됐습니다.” 그 순간 내게는 어디 의지할 곳이 생긴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북한에서 만난 첫 천주교 신자였다. 그분은 9살에 영세했다고 하였다. 비행기 트랩을 내려 환영 나온 북쪽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500여명의 환영객 앞을 지나 이제 막 단체사진을 찍고 난 뒤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때까지 내 마음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데다 분위기도 낯설어 매우 허전하고 서먹한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도 아는 사람이야 어디 있었겠느냐마는 노동계 농민을 대표해서 온 사람들이라고 반기고 환영하는 분위기여서 내게는 더욱 서먹한 자리였다. 스테파노씨로 말미암아 내 마음은 밝아졌다.
스테파노씨는 개인 사진을 찍고 나면 저쪽으로 오라로 했다. 민주 노동당 인사들을 시작으로 단체별 개인별 사진을 찍었다. 천주교에서는 나 혼자 갔으니 나 혼자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10월10일자 로동신문 4면에 실렸다.
내가 장충성당을 찾은 것은 13일 오전이었다. 9일에 도착하여 며칠 동안 실무자들이 북쪽 책임자와 협의하여 각 분야별로 관련 단체 인사들을 만나기로 한 결과였다.
승용차를 타고 스테파노씨와 함께 장충성당을 찾았다. 성당 마당을 들어서니 20여명의 신자들이 한복을 차려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여성 신자 한분이 꽃다발을 주며 환영했고 곧 덩치 큰 아저씨 한분이 나를 끌어안으며 인사를 했다. 장재언 사무엘씨였다. 의외였다. 그저 형식적인 악수를 나누게 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사무엘씨는 덥석 나를 끌어안기부터 했다.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본래 감격을 잘 하는 사람이라 눈물을 흘릴 뻔했다.
거기에 서 있던 다른 사람들과도 악수를 하고 2층 사무실에 올라가 조선카톨릭교협회 중앙위원회 사람들과 잠시 환담을 나누었다.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은 장재언 사무엘 위원장을 비롯하여 서기장 강지영 바오로 장충성당 회장 차성근 율리오 유오상 파스칼 리세복 베드로였다. 조성원 스테파노씨도 동석하였다.
미사가 10시에 있어 미사 후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미사를 드리러 성당으로 갔다. 성당에 들어서며 나는 다시 놀랐다. 아까 마당에 환영 나온 사람들뿐이려니 했는데 성당이 신자들로 거의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제대 앞으로 나가며 나는 기도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참 신자이게 해주십시오.” 제대 앞에서 차성근 회장은 신자들에게 나를 소개하였다. “김종수 사무총장 신부님이십니다.” ‘이렇게 소개하면 그 사람들이 내가 어디에서 일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을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서울에서도 잘 모르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남쪽의 우리 교회조직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설명이 있었는지 주교회의도 알고 있었고 사무총장도 알고 있었다.
미사를 드렸다. 강론도 했다. 강론이라기보다는 그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대충 천주교 부활의 역사 를 스테파노씨에게서 들었기에 그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했다. 골자는 이런 것이었다.
“여러분에게 고통을 주어 죄송합니다. 늦었지만 전쟁시기에 여러분이 가톨릭 신자로서 겪은 아픔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고난의 행군 시기에 신념의 깃발을 높이 들고 모든 고난을 이겨낸 것처럼 주님 안에서 기쁜 마음으로 우리 함께 이 미사를 드릴 수 있을 때까지 신앙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십시오. 여러분이 신념 이라고 하는 단어를 외국인들에게 나누어준 자료에서 보니 faith라고 되어 있던데 이것은 신앙이라는 말입니다. 김일성 주석님과 김정일 장군님을 모시고 신념의 깃발을 높이 들었던 것처럼 주님께 대한 신앙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십시오. 남쪽에 있는 우리는 분단 이후 여러분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북남의 교회가 하나되는 날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북한 교회를 찾았던 여러 사람들에게서 들었듯이 나도 그들에게 신앙이 있는지 잘 모른다. 북한 사회 전체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장군을 정점으로 하는 기능적 종교라고 하지만 나는 그들 안에서 신앙의 빛을 볼 수 있었다.
북한의 천주교 신자는 3000명 가량 된다고 한다. 중앙위원회 아래 각 도지부가 있는데 그를 통하여 전국적으로 부모님대에 신자였던 사람들을 찾았더니 그렇게 되더라는 설명이다. 물론 나이가 드신 분들은 모두 전쟁 전에 세례를 받은 분들이다. 그분들 가운데는 유아세례를 받은 분들도 계신다. 그밖의 사람들은 당의 지침을 따라 천주교 세례를 받은 모양이다. 그러나 이것도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다. 외형적으로는 당의 명을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내적으로는 부모님의 신앙을 따라 세례를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나를 기쁘게 했다. 아무나 데려다가 억지로 세례를 준 것이 아니라 유아에게 세례를 주듯이 부모님의 신앙을 따라 세례를 준 것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들은 집에서도 기도를 드린다고 했다. 하느님의 섭리가 그들을 이끌어 줄 것이다.
미사를 끝내고 난 뒤 성당 입구 층계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그들 가운데 나를 심어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 사진이 어떻게 쓰이든 관계없다. 그들 안에 심어진 사제들의 모습이 결국 주님의 섭리를 따라 그들을 신앙으로 이끌어 주리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다시 2층 사무실로 올라가 장재언 위원장 등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난의 시절에 남쪽의 천주교에서 많은 물자를 보내 도와준 일들에 대해서도 감사했다. 교황청에서도 성직자들이 다녀갔다 했다. 그래서 나는 또 아마도 10월중에 교황청에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찾아오실 분이 계실 텐데 그때 교황님의 방북에 대해서도 조선의 책임있는 분과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이미 추진되고 있는 일이니 한달 안에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는데 남쪽의 7개 종단 대표들이 북쪽을 찾아올 때 우리 주교회의 의장이신 박정일 주교님과 내가 다시 올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따로 장군님이 초청하신 김 추기경님과 정진석 대주교님의 방문을 위해서도 힘쓰겠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면서 “그분들이 오셔서 무엇을 하셔야 하는지 또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이 점이 고민이라고 했다.
참으로 고민이다. 그러나 북한교회의 실상이 무엇이든 어떤 정치적 목적을 숨기고 있든지 추기경님과 우리 주교님들의 방북은 분명 그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기대에 찬 그들의 눈빛을 뒤로 하고 나는 장충성당 문을 나섰다. 10월13일 11시30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