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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메로 대주교 시복시성 시동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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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시티=CNS】 로마에서는 작은 기미만 보여도 곧잘 큰 표징으로 읽히곤 한다. 1980년 괴한 총탄에 쓰러진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1917~1980년)의 시복시성 추진자들을 미소짓게 하는 일이 최근 이 도시에서 생겼다.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는 한면의 3분의 2를 할애 로마에서 현대사를 가르치는 로베르토 모로초 델라 로카 교수가 이탈리아어로 쓴 「하느님이 첫째: 오스카 로메로의 생애」에 대한 긍정적 서평을 실은 것이다.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지난 7월 중순에 게재한 이 서평에서 로메로 대주교가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고 영적인 것을 무시하고 현세적인 것에 지나치게 초점을 두는 형태의 해방신학을 포용하지도 않았으며 언제나 교황의 가르침에 충실했다는 모로초 교수의 관점을 부각시켰다.

 모로초 교수는 로메로 대주교에 대한 기억이 교회 안에서 전적으로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상황에서 교황청 신문이 서평을 실은 것은 중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서평은 진지할 뿐 아니라 로메로가 가톨릭교회를 사랑했고 교황들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의무를 깊이 느끼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고 말했다.

 로메로 대주교 시복시성 청원인 이탈리아의 빈센초 팔리아 주교의 한 측근도 이 책의 출판은 시복 추진 과정이 답보 상태를 마치고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 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로메로 대주교의 시복 안건은 지난 2000년부터 시작된 신앙교리성 차원의 검증을 거쳐 이제는 시성성으로 넘어가고 있는 단계다.

 모로초 교수는 신앙교리성이 로메로 대주교의 정통 신앙과 관련한 의혹들을 모두 해소시켰기에 그의 시복 안건이 다시 시성성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면서 로메로의 시복 과정에서 넘어야 할 다음 장벽은 그가 신앙을 위해 순교했느냐 아니면 정치적 입장으로 인해 살해당했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모로초 교수는 이와 관련 로메로 대주교는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함으로써 살해당했지만 그것은 사랑과 자비와 정의를 촉구하는 그의 신앙을 드러낸 것이라면서 그가 공개적으로 발언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신앙 때문이었다 고 강조했다.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로메로 대주교는 중남미 엘살바도르의 산 미구엘 출생으로 1942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교구장 비서 교구 신문 편집장 소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다 1967년 주교품을 받았다. 1970년 산살바도로 보좌주교로 임명됐으며 1977년 2월 산살바도르 대교구장으로 착좌하면서 정치적 주목을 받았다.

 당초 로메로 대주교는 보수적 성향이었지만 교구장 취임 후 한 신부와 농민이 군부정권에 의해 사살되는 사건을 계기로 사상의 전환기를 맞는다. 그때부터 로메로 대주교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데 나섰으며 사회적 폭력을 서슴없이 사용하는 군사정권을 비난했다. 가난한 사람들과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대변자로 나섰던 로메로 대주교는 여러 차례 살해 위협을 받았으며 결국 1980년 미사 집전 도중 괴한이 쏜 총탄에 맞고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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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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