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한 신자 청년이 쓴 글이 필리핀 지식인과 현지 젊은이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필리핀 유력 일간지 마닐라 타임즈 7월29일자 여론면에 실린 필리핀 유학생 출신 김재연(사진 베드로 27 서울 면목동본당)씨의 필리핀에 대한 단상(斷想) 이란 제목의 기고문이다.
김씨는 이 글에서 필리핀의 진짜 문제는 가난이나 부정부패가 아니라 애국심 부족 이라고 지적하고 필리핀보다 훨씬 더 가난했던 한국을 아시아 경제강국으로 발전시킨 한국인의 애국심을 소개했다.
김씨는 필리핀을 위해 여러번 울었다 한국에 있을 때 신부가 되려고 했다 는 등 필리핀에 대한 애정과 굳은 신앙심을 글 곳곳에 드러내 더욱 눈길을 끈다.
예수회가 설립한 아테네오 데 마닐라대학에서 신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김씨는 한때 신부가 되려고 했으나 귀국해서 더 큰 하느님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 꿈을 접었다.
지난해 봄 귀국해 정보통신부 산하 인터넷진흥원에 근무 중인 김씨는 유학시절 내 에세이가 현지 중앙지와 지방지에 20여편 소개됐다 며 그뒤 교수님 권유로 여러 편의 글을 멘사(IQ 148이상 천재들 모임)클럽 홈페이지에 올려놨는데 잊을만하면 (편집자들이) 그 글을 신문에 소개해 당황스럽다 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다음은 에세이 요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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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인들은 부정부패에 대해 불평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애국심 부족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한국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전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다. 모든 것이 파괴된 데다 자원이 없어 맨주먹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한국인들은 아시아의 부국 필리핀을 부러워했다. 필리핀처럼 잘 살고 싶었던 것이다.
한국은 마침내 극적 발전을 이뤘다. 불타는 애국심 하나로 공공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했을 당시 한국에는 공장이 단 3개밖에 없었다. 외국에서 차관도 도입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수출했다. 이들이 부쳐온 돈은 고스란히 공장짓는 데 사용됐다. 1964년 박 전 대통령이 차관 도입차 독일을 방문했을 때 박 대통령과 환영나온 광부 간호사는 함께 울었다. 독일 정부는 이 장면에 강한 인상을 받고 차관을 제공했다.
미국에 체류하던 한국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은 조국을 부국으로 만들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귀국길에 올랐다. 그들은 미국에서보다 훨씬 적은 급여를 받았지만 최선을 다했다. 자식들만은 반드시 잘 사는 나라의 국민이 돼야 한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필리핀인들이여. 당신들은 과연 조국을 위해 울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내 조국을 위해 여러 차례 울어본 적이 있다. 필리핀을 위해서도 여러 번 울었다.
언젠가 찾아간 적이 있는 뉴 빌리비드(New Bilibid) 교도소에서 나를 슬프게 한 것은 수형자들이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봉사활동을 하지만 조국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면회한 두 명의 수형자들은 출옥하는 즉시 필리핀을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가톨릭 국가지만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람들은 매주 일요일 성당에 나가 기도하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내 부모님은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불쌍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 나를 자주 데려갔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가르쳐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며 산다. 그리고 여전히 조국을 사랑한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기에 신부가 될 꿈을 꾼 적도 있다. 내 어머니는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하느님 자식인 만큼 필리핀인들을 사랑하라고 강조하셨다.
필리핀인들이 잘 살려면 하느님을 사랑하듯 이웃과 조국을 사랑해야 한다. 타인을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란 사실을 여러분은 더 잘 알지 않는가. 자녀에게 조국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라. 누가 여러분의 조국 필리핀을 위해 울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