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기를 불과 60여일 앞두고 바티칸에서 열린 세계 종교인대회는 참석자
들이 종교간 이해와 협력 없이 인류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는 공감대를 형성 21
세기 ‘사랑의 새 문명건설’을 한 목소리로 다짐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
다.
20여개 종교를 대표하는 230여명의 종교지도자들은 전쟁·인종차별·마약·
AIDS 등 지구촌의 심각한 사회 정치적 문제를 극복하고 인간 존엄성을 수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종교간 협력’이라는 점을 합의 선언문에서 분명히
밝혔다.
교황도 종교적 갈등에서 비롯된 분쟁과 무력충돌이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을 직시 “종교가 폭력의 구실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며
특히 젊은이들에게 종교간 이해와 협력의 중요성을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대회 분위기를 상징하듯이 지난달 28일 폐막식에서는 계획에 없던
감동적인 ‘화해의 드라마’가 펼쳐져 이목을 집중시켰다. 인도 힌두교를 대표
한 우샤 메타는 “최근 인도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힌두교도들의 만행을 깊이 사과한다”고 말한 후 교황에게 다가가 자신의 손을
교황의 뺨에 대고 용서를 청했다.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은 이달 5일 교황의 인도
뉴델리 방문을 앞두고 가톨릭 신자와 교회에 폭행을 가하거나 항의 거리행진을
하는 등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참석자들은 ‘평화의 사도’ 성프란치스코의 고향인 아씨시를 찾아가 자
신들의 전통 전례에 따른 평화기도회를 개최했는가 하면 미국 원주민 대표는
해질녘에 세계평화를 기원하며 성베드로 광장 한복판에서 지구의 네 귀퉁이를
축복하는 성스러운 의식을 거행했다.
교황청 ‘2000년 대희년 중앙위원회’ 위원장 로저 에체가라이 추기경은
“이번 대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면서 시작된 ‘평화의 길’을 가는 인류
에게 정확한 방향을 가르쳐 주었을 뿐만 아니라 2000년 대희년 경축의 막을 걷
어 올려 주었다”며 대회 성과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교황청이 주최한 86년 아씨시 대회와 이번 대회의 출발점은 종교간 대화와
협력을 강조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특히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Nostra
Aetate)’의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음은 이번 대회기간 동안 발표된 각
종교 대표들의 주요 강연과 연설 내용 요약.
▲프란시스 아린제 추기경(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종교는 사회의
영혼이며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누룩과 같다. 어떤 이들은 종교가 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긴장을 조성한다고 비난한다. 종교가 확고한 역
할을 다하지 못하고 또 협력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모는 것이며 현
세와 미래에서 역동적인 힘을 발휘하는 대신 역사적 연구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데레사 에 츄이 박사(국제가톨릭언론협회장)〓신앙인은 기도와 명상을 통
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명상을 통해 이뤄지는 초월자에 대한 자기개방은
곧 타인에 대한 개방을 가능케 해준다. 모든 종교인이 이를 실행할 때 증오와
폭력 부의 불균형 문제 등도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종교는 정치적
경제적 힘은 없지만 수십억에 달하는 ‘종교인’이라는 힘을 갖고 있다. 다만
이 힘은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협력할 때에만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
▲바르톨로메오 대주교(동방정교회)〓종교는 힘에 의한 지배의 원리를 포기
해야 한다. 종교간 협력은 광신적이고 근본주의적인 태도를 버리는 데에서 나온
다. 양심의 자유에 대한 존중과 설득 외에는 자신들의 신앙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알 샤리프 사무총장(국제이슬람협의회)〓13년 전 아씨시에서 열린 종교인
대회에서 우리가 이단자들과 자리를 함께했다고 비난하던 이슬람 형제들이 지
금 이 대회에 같이 참석했다. 아직도 종교간 대화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있
지만 대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사이에는 어두운 기
억들이 많다. 그러나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할 수도 없앨 수도 없다. 이제는 사
이좋게 지낼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