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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시복된 스테피나츠 추기경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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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당시 독재에 맞서 인권수호 60년 2월 사망…80년 공식 시복조사
지난 5월8일 탄생1백주년을 지낸 크로아티아의 알로지제 스테피나츠 추기경은 10월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마리자 비스트리카 성당에서 새 복자로 탄생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자그레브의 대주교로서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싸워 독재자들의 총칼에 고통받고 60년 2월10일 가택 연금 중 사망한 그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어떤 위협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다소 늦은 나이에 로마 그레고리안대학에서 신학과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30년 10월 서품됐다. 1934년 5월29일 그는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승계권을 가진 부주교로 임명됨에 따라 가톨릭교회사상 최연소인 36세의 나이로 주교가 됐다. 1937년 12월7일 교구장으로 임명된 그는 특히 자선 사업과 이주민과 난민들을 지원하는데 깊은 관심을 갖고 1938년 유다 피난민을 지원하기 위한 공식 기구를 설립하고 수많은 유다인들을 성당과 교회 기관에서 보호했다. 1941년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하고 45년 다시 공산 유고슬라비아의 통치하에 들어가면서 그는 사제들을 추방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반대하는 서한을 발표해 처음으로 공산정권에 의해 체포된다. 유고슬라비아의 새 지도자 티토는 그에게 크로아티아 가톨릭교회가 로마와 결별하기를 종용했으나 거절했다.
교회와 국가간의 긴장 관계 속에서 1945년 9월22일 사목교서를 발표한 그는 양심과 종교의 자유 사유재산권의 보장을 약속한 이전의 정부 약속을 지적하고 이를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이듬해 결국 16년간의 강제노동형에 처해지고 시민권이 박탈된다. 죄목은 크로아티아 가톨릭교회 연맹을 운영하고 교황청과의 관계를 유지했다는 이유 그리고 나치에 협력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선고 이틀후 미국의 유대교 공동체는 이런 이유에 대해 우리는 그가 나치에 협력했다는 주장에 대해 단연코 부인한다 고 말했다. 1951년 12월5일 감옥에서 집으로 옮겨진 그는 여전히 가택 연금 상태였으나 약간의 방문객과 편지의 교환은 허락됐다. 그는 여기서 크로아티아의 모든 사제들에게 정부 통제하의 성직자 연맹에 가입해서는 안된다 고 당부했다.
1953년 교황 비오 12세는 그를 추기경에 서임하고 극찬함에 따라 유고슬라비아는 바티칸과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1960년 그는 세상을 떠났다. 물증은 없지만 누군가에 의해 독살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스테피나츠 추기경의 시복을 위한 조사는 80년 12월5일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92년 크로아티아가 독립하면서 새 정부는 그에 대한 이전의 판결을 비난했고 2월8일 슬로베니아 우크라이나와 함께 크로아티아는 교황청과의 외교관계 회복을 발표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199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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