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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회 지하교회 궁금증 풀어보기

'하나'로 가는 중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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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여성신자가 베이징 시내 한 성당에서 기도서 「성교일과(聖敎日課)」를 앞에 놓고 기도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본보 부활대축일 특집호(4월16일자)에 새 봄을 기다리는 중국교회 가 보도된 뒤 애국회와 지하교회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독자들은 애국회는 어용조직이고 지하교회가 진짜 교회냐 지하교회 신자들은 구한말 박해시대처럼 숨어서 미사를 봉헌하는가 등 다양한 질문으로 중국교회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애국회와 지하교회에 대한 궁금증을 문답으로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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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공산당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그리스도교 개조작업에 착수했다. 서양 제국주의에 짓밟혀 고통을 당할 때 그리스도교가 인민 편이 아니라 침략자 편에 서서 특권을 누렸다는 이유 때문이다.

 정무원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는 일부 지역 개신교와 천주교회에 제국주의 첩자가 섞여 있고 그들은 국제적 연계망을 갖고 있다. 신앙의 자유는 보호하겠으나 종교가 제국주의와 연계되는 것은 반대한다. 예를 들어 천주교회가 바티칸 지휘를 받는 것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 며 중국 종교는 3자 정신 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3자 정신이란 △자치(自治ㆍ교회를 스스로 관리) △자양(自養ㆍ외국 도움없이 자급자족) △자전(自傳ㆍ스스로 전교)을 말한다.

 이에 따라 개신교는 1954년 미 제국주의와 영원히 단절하겠다 고 선언하고 가장 먼저 애국회를 설립했다. 불교ㆍ도교ㆍ이슬람교가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천주교는 교황청과 관계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정부 시책에 호응하는 3자(三自)애국운동과 이를 저지하려는 움직임이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1957년 7월 베이징에서 중국 천주교 애국회가 출범했다. 이때 통과된 중국 천주교우 대표회의 결의안 은 중국 이익과 교회 미래를 위해 독립자주를 실행하며 신부 및 교구장 임명권 등을 스스로 행사하고 독립과 존엄을 위배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교황청과 순수한 종교 관계를 유지하되 정치적ㆍ경제적 관계는 철저히 단절한다 고 명시하고 있다. 신권은 로마에 속권은 중국 정부에 라는 입장을 택한 것이다.

 이때부터 애국회에 동의하지 않은 성직자와 신자들은 극심한 고난의 길을 걷는다. 그들은 교황에게 끝까지 충성을 맹세하고 정부 정책과 무관하게 오늘날까지 교회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렇지 않다. 애국회는 교회행정을 정부가 관장하는 지침에 따라 설립된 조직으로 이해해야 한다. 애국회는 그동안 공산정권하에서 교회 일을 도맡아 해왔지만 스스로 자신을 교회 라고 밝힌 적이 없다. 정부가 내리는 지시를 교회에 또 교회 필요사항을 정부에 전달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교회 내 한 조직(association)으로 봐야 한다. 애국회는 교회와 국가 지역교회와 보편교회 사이의 갈등으로 생긴 역사의 산물이다.

 외국에서 애국회를 보는 시각은 두가지다. 하나는 그리스도교 정통 신앙을 잃고 정권에 충성하는 조직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교회의 복잡한 상황을 이해한다면 문제 본질은 애국회가 아니라 종교를 정치에 예속시키는 정부 정책이라는 것이다.

 한국교회 신자들 시각이 전자에 기우는 이유는 한국이 수십년간 중국과 적대적 관계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교회 안팎에 퍼져있는 반공주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처음에 지하교회를 말살하기 위해 강경책을 썼다. 성직자들을 체포해 고문하고 활동 거점을 폐쇄했다. 종교서적도 눈에 띄는대로 빼앗아 불살랐다.

 그러나 지하교회가 탄압에 소멸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정부 당국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지하교회 신자 수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1989년 새로운 형세하의 천주교 공작의 강화에 관한 보고 문건을 발표 지하교회에 강온 정책을 병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즉 인내와 세심한 공작으로 지하교회 신자들이 (인민과) 단결할 수 있도록 하되 문제가 발견되면 엄벌에 처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비하면 압박 수위가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신자들은 성당에 모여 자유롭게 미사를 봉헌한다. 종교 활동도 한결 자유로워졌다. 일부 지하교회 성당은 시내 중심가에 번듯하게 세워져 있다. 일부 현상이지만 지하교회의 한 주교는 애국회 신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그렇다고 감시와 견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요즘도 지하교회 성직자 체포ㆍ구금 소식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거나 노골적으로 따르지 않는 성직자들이 주된 표적이다. 정부가 지하교회 현실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하고 회유정책을 펼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일치와 화합을 위한 대화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50여년간 정치적 종교적 신념을 달리하고 살아온 두 주체가 하루 아침에 갈등의 골을 메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도 시련을 겪고 있는 지하교회 일부에서는 중국 천주교는 두개의 교회다 며 상대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애국회에 대한 교황청 시각이 한결 완화된 것도 사실이다. 교황청은 애국회와 지하교회가 하나가 되길 기원하고 있다. 또 화합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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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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