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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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아시아 선교호대 참관기<하>- 배경민 신부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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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크레센지오 세페 추기경(앞줄 왼쪽에서 네번째, 현 이탈리아 나폴리대교구장)과 함께 한 한국교회 참가단
 
 대회 셋째날은 `아시아 문화에서 예수님 이야기 하기`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문화를 통해 영성과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생각해 보는 뜻 깊은 자리였다.

 모든 이야기에는 그와 연관된 질문이 있게 마련이다. `예수님 이야기 하기`에서 자연스럽게 부각되는 질문 몇 가지를 다음과 같이 꼽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에게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는 누구인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좋아한다면 그 이유는?`, `내 인생길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섭리해 오셨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장차 어떤 인생 여정을 가길 원하시는가?`

 예수님 이야기는 궁극적 진실을 담고 있기에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온갖 유형의 경계와 장벽을 넘어서게 한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마음 속 깊이 첫째 자리에 모시고 인생의 바다를 항해해야 하는 것이다.

 대회 일정이 진전되면서 5시간만 자고 이른 아침부터 프로그램에 참가해야 하는 날도 있어 피곤하고 힘든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말과 사고방식, 문화가 다른 형제자매들 안에서 섭리하시는 하느님 체험 이야기를 듣노라면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와 역사하심을 또 한번 강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요한 5, 17)라고 하신 말씀을 실감하는 순간이라 하겠다. 곧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시면서 동시에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그리고 우리를 위하시는 하느님으로 늘 삼라만상을 주관하시며 다스리시는 분으로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선교대회에는 교회 각 분야(사목, 성경, 교의, 역사, 사회, 철학, 인류, 심리 등)에서 전문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전문가들도 많이 참여했다. 일생을 통한 연구 업적을 반영하는 그들의 발표와 강연은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자신들이 묵묵히 경주한 연구의 결실을 맛보게 하는 것 같아 대단히 감동적이었다. 특별히 현대 소비주의, 대중 매체의 횡포, 이주민들의 적응, 젊은이들 문제, 이웃 종교간 대화 등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을 제공했다.

 이러한 주제들 안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여성 인권 신장, 만연하는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를 극복하는 심오하고 돈독한 영성 회복, 이웃 종교와 공존 및 대화 등이었다. 거부하기 어려운 세계화의 물결 속에 가톨릭교회 역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세속적 조류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가톨릭교회는 복음적 가치관과 인내심을 갖고 응답하려 애쓰며 순교자 열정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다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 15)고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는 인류에 대한 복음 선포라는 지대한 사명을 갖고 있다. `어둠 속`(마태 4, 16)에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 복음 선포는 그들의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게 한다.

 재물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더라도 하느님과 복음을 모르면 참 행복을 얻을 수 없고 구원의 문으로부터 점차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복음을 알았더라면 생명을 지킬 수 있겠지만 하느님과 복음을 알지 못해 세속적 가치관에 따르다 보면 어느새 후회할 일만 저지르고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생명의 복음은 자포자기하고 쓰러져가는 생명과 가정을 지키고 다시 일으키며,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게 이끌어준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 중에는 복음 정신이 실제 삶에서 구현되는 분위기였다면 미연에 방지하기 쉬운 것들이 참으로 많은 것이다.

 복음 말씀에 목말라하고 있는 영혼들이 대단히 많다. 신자들은 그러한 영혼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올바르게 이끌어 줄 의무가 없다고 강변할 수 있을까? 이런 의미에서 세례받고 참되게 생활하면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 인도하는 일은 역시 중요한 사명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곳에서 익힌 태국어 한마디, 푸질라 예수스!(찬미 예수님!). <끝>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6-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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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오묘하게 지어졌으니 당신을 찬송합니다. 당신의 조물들은 경이로울 뿐. 제 영혼이 이를 잘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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