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빈민들의 아버지’ 피에르 신부의 장례식이 1월 26일 파리 노틀담성당에서 거행됐다.
이날 장례식에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영화배우 장 르노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해 피에르 신부의 선종을 애도했다.
|
빈민구호 공동체 ‘엠마우스’ 설립
“프랑스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이웃의 가난은 나의 수치입니다.”
피에르 신부(사진)의 일생을 한 마디로 요약해주는 그의 신념이다. 그는 프랑스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결코 물질적 풍요와 안일한 정신이 주는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았다.
유산 상속을 마다하고 수도자로서, 레지스탕스로서, 그리고 국회의원이 됐다가 마지막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엠마우스를 창설하기까지 아베 피에르 신부의 생애는 하느님, 그리고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이 세상과 사람들을 위한 끝없는 사랑으로 가득했다.
‘빈민의 아버지’로 불리우며 평생을 노숙자와 빈민 구호 활동에 헌신해온 아베 피에르 신부는 지난 22일 향년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파파 피에르’라고 불리운 그는 1월 14일 노환으로 파리의 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오다가 일주일 뒤 세상을 떠났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추모 메시지를 통해 가난한 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그의 활동에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빈곤과 싸우기 위해 일생을 바친 이 사제를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한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을 드러내듯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발표한 조사에서 “프랑스 전체가 피에르 신부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애도했다. 대통령은 또 “그는 비참한 현실과 고통, 불의에 대항하는 프랑스의 정신을 대변한 분”이라며 “프랑스는 위대한 인물을 잃었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의 장례미사가 열린 1월 26일 파리의 노틀담 성당에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비롯해 도미니크 드 발팽 총리 등 정부 각료들과 영화배우 장 르노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해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뜻을 기렸다.
피에르 신부는 가톨릭교회와 프랑스 바깥에서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현대의 성인’으로 불리우며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아왔다. 매년 프랑스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존경 받는 인물’에서는 빠짐없이 1위에 뽑히곤 했다.
프랑스 주교회의 의장인 장 피에르 리카드 추기경은 피에르 신부의 선종 소식을 전하면서, “아베 피에르 신부는 성부께로 돌아가셨다”며 “엠마우스와 아베 피에르 재단은 그가 생전에 그토록 안타까워하고 사랑했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1949년 설립한 엠마우스는 현재 전세계 39개국에 걸쳐 총 327개의 공동체로 구성돼 있다.
1912년 프랑스 리용에서 태어난 피에르 신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활동했고 이 과정에서 그는 유다인들을 포함해 수천명을 스위스와 알제리로 피신시켜 생명을 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이후 가난한 노숙자들을 위한 활동에 매진했는데, 1954년 2월 1일, 라디오 방송을 통해 노숙자들을 위한 사람들의 관심과 자선을 촉구했다.
나치 독일에서 해방되어 안정을 찾아가고 있던 당시 프랑스에서는 절대 빈곤층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한 때 피에르 신부의 호소는 전국을 움직였고, 이후 엠마우스 본부로는 구호품이 물밀듯 쏟아졌다. 이후 아베 피에르 재단이 만들어졌고, 노숙자 수용 시설들이 속속 건립됐다.
베레모에 검은 망토, 오직 하느님의 손길에 의탁하고 사람들의 사랑에 의존해 빈민 구호에 평생을 바친 아베 피에르 신부의 삶은 마더 데레사 수녀가 실천했던 한없는 사랑의 삶과도 닮아 있으며, 사랑에 목마른 현대인들의 가슴을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적셔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