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서 추모 물결, 한국교회도 동참
사랑과 일치 위한 포콜라레 영성 운동 창시
개신교ㆍ성공회 등 종교 간 친교에 특히 힘써
14일 선종한 끼아라 루빅 여사 추모 물결이 로마는 물론 한국과 전 세계로 이어지고 있다. 평화의 씨앗으로 인류의 일치를 꿈꾼 포콜라레 운동 창시자 끼아라 루빅 여사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면서 포콜라레 회원들은 `작은 끼아라`가 돼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는 여성 평신도로서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요한 17, 21)라는 성경구절을 마음에 품고 일치의 삶을 살았다. 10개가 넘는 `~평화상`은 일치와 친교를 향한 그의 삶의 여정을 잘 보여준다.
▨ 곳곳에서 추모 물결
끼아라 루빅 여사의 임종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 종교계ㆍ정치계ㆍ학계ㆍ문화계와 포콜라레 회원들로부터 추모 메시지가 쏟아졌다.
고인의 분향소가 마련된 포콜라레 총본부(이탈리아 로카 디 파파)에는 전 세계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18일 로마 성밖 바오로 대성전에서 봉헌된 고인의 장례미사는 위성방송 및 인터넷 채널을 통해 중계됐다. 이에 앞서 이탈리아 공영방송 `라이 우노`(RAI UNO)는 13일 끼아라 여사의 생애와 포콜라레 운동의 발전사를 다룬 영상물을 방영했다.
포콜라레 한국본부(남자대표 카를로스 아단, 여자대표 엄선자)는 경기 의왕시 마리아폴리 센터와 대구 여자 포콜라레 센터에 각각 분향소를 마련, 추모미사를 봉헌하고 고인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했다. 사제ㆍ수도자들과 청소년 및 청년, `일치를 향한 정치인 모임`의 국회의원 등 포콜라레 회원 2000여 명의 뜨거운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17일 마리아폴리 센터에서 추모미사를 집전한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끼아라 여사의 영성은 남과 북이 갈라지고 단절과 분리가 심한 우리나라를 치유하는 희망의 징표"라면서 "여사는 항상 성령의 안테나가 맞춰져 있어 그 분이 하는 대로 따라하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랑 그 자체이셨다"고 말했다.
이어 유 주교는 "하느님이 교회와 인류를 위해 보내준 소중한 선물을 하느님께 다시 돌려 드린 것"이라며 "십자가를 통해 일치의 삶을 산 그 분의 죽음은 부활의 기쁨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수원교구 이용훈 주교는 추모미사에서 "끼아라 루빅 여사는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자, 인류의 작은 성모님"이라며 "평생을 일치 운동을 위해 사신 그 분을 닮아 우리 모두 지금 이 자리에서 복음을 실천하는 작은 마리아가 될 것"을 당부했다.
포콜라레 회원으로 매달 가톨릭 신자들과 함께 생활말씀을 나누는 새길교회 정민 목사는 "끼아라 여사는 내 신앙의 눈을 뜨게 한 분"이라며 "포콜라레 운동에 동참하는 개신교 신자들도 가톨릭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추모미사에 참례한 권미옥(아마다, 56, 일산 대화동본당)씨는 "끼아라 여사를 통해 인생의 해답은 사랑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스스로가 작은 끼아라가 돼 일치의 영성을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
▨끼아라 루빅의 삶과 포콜라레 운동의 영성
이탈리아 트렌토에서 태어난 끼아라 루빅 여사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전쟁의 폭격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하고 포콜라레 운동을 창시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른 `복음적 삶`만이 가치있는 삶임을 깨닫고, 주위 친구들과 함께 `서로 간 사랑과 모든 이의 일치`를 목표로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23살로 학구열이 넘치는 철학도이자 초등학교 교사였다.
전쟁으로 미움과 분열이 팽배한 상황에도 이들의 영성 운동은 벽난로처럼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전했다. 이들의 영성 운동은 도시 곳곳으로 확산됐다. 주변 사람들은 이들을 보며 "마치 벽난로에 모인 단란한 가족 같다"며 이탈리아어로 벽난로를 뜻하는 `포콜라레`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포콜라레 운동은 세계로 퍼져 나가며 어린이부터 어른, 성직자와 수도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참여하는 공동체로 성장했다. 포콜라레 운동은 1943년 12월 7일 끼아라 루빅이 동정으로 살 것을 서원함으로써 본격 시작됐다. 1952년 유럽을 시작으로 북미와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등으로 진출했다. 포콜라레 운동은 1962년 마리아 사업회(Work of Mary)라는 명칭으로 교황 요한 23세로부터 공식 인준을 받았다.
끼아라 여사는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개신교와 성공회, 불교, 동방정교회, 이슬람교 등 수장들과 함께 종교 간 친교의 다리를 놓으며 인류 평화를 위해 힘썼다.
현재 한국을 비롯 182개국에 확산된 포콜라레 운동은 전 세계 650만 명 회원들이 보편적 형제애의 삶을 살고 있다. 이들 중에는 타 종파 그리스도교인ㆍ타 종교인 등 15만 명의 회원도 포함돼 있다. 이탈리아 로피아노를 비롯한 전 세계 30여 개의 소도시에는 가톨릭 성직자와 수도자를 비롯한 타 종교인들이 포콜라레 정신으로 일치의 삶을 체험하고 있다.
특히 1969년 한국에 진출한 포콜라레 운동은 당시 대학생 사이로 확산되면서 신앙의 생활화 운동을 촉발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인류 평화를 위한 공로로 전 세계 대학으로부터 13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7년에는 인류 평화를 위해 이바지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 격인 `템플턴 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고인이 삶을 통해 보여준 일치와 평화의 발자취는 보편적 형제애를 불러 일으켜 인류를 한 가족으로 일치시키려는 데 있다.
한국 포콜라레 새 인류 운동 대표 권길중(바오로, 69)씨는 "끼아라 여사는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 예수님이 겪은 고통을 살다 가신 분"이라며 "한 평생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랑의 삶을 사셨다"고 말했다.
세계 곳곳에서 평화의 중재 역할을 하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 성 에디지오 공동체의 안드레아 리까르디 회장은 조문을 통해 "끼아라 여사는 갈갈이 찢긴 세상에서 한 가지 거대한 꿈을 위해 자신을 헌신했다"면서 "그것은 하느님과의 일치였다"고 말했다.
김민경 기자 sofia@ 이지혜 기자 bonaism@
![]() ▲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가 17일 끼아라 루빅 여사의 분향소가 마련된 경기 의왕시 마리아폴리 센터에서 고인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전대식 기자 jfac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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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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