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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운동' 주역 뉴먼 추기경 유해 발굴된다

가톨릭 전통으로 영국 국교회 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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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 전통으로 영국 국교회 쇄신을 주도한 19세기 옥스퍼드 운동의 주역 존 헨리 뉴먼(1801~1890) 추기경의 유해가 시복시성운동 차원에서 발굴된다.


 
▲ 존 헨리 뉴먼 추기경 초상화
 

 영국 사법 당국은 6일 버밍햄 외곽 작은 공원묘지에 있는 뉴먼 추기경의 유해 발굴 및 이장을 예외적으로 허가했다. 사법 당국은 공원묘지에서 교회묘지로의 이장을 금지한 19세기 법률 때문에 몇 달간 고심한 끝에 특별 예외조항을 신설해 허가증을 발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밍햄대교구 대변인 피터 제닝씨는 "이번 특별 허가는 뉴먼 추기경을 중요한 국가적 인물로 인정함과 동시에 그리스도교 일치운동에서 그가 갖는 상징성을 고려해 내려진 것으로 안다"며 사법 당국에 감사인사를 전했다.

 버밍햄대교구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뉴먼 추기경의 시복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12월 이전에 유해를 발굴, 보존작업을 거쳐 대리석관에 안치한 뒤 순례자들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교황청 시성성은 성인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뉴먼 추기경의 유해가 위상에 맞게 보존, 안치되길 원했다.

 영국 성공회 사제였던 뉴먼 추기경은 성공회가 1830년대 내부 갈등과 국가 간섭으로 내우외환에 봉착하자 젊은 신학자들과 함께 쇄신 및 개혁운동을 전개했다. 옥스퍼드 운동 지도자들은 설교와 저술, 특히 「시대를 위한 소책자」를 발행해 사도 계승의 교회론과 성사적 교회를 주장해 큰 호응을 얻었다.

 뉴먼 추기경은 특히 "교회의 참된 권위는 사도로부터 전해진 것이며 교회 통치권은 국가가 아니라 하느님이 사도들에게 부여했고, 사도들은 주교들에게 전승했으며, 주교들은 사제들과 함께 그 권한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도계승의 교회론을 옥스퍼드 운동의 근본 정신으로 삼았다.

 그는 44살에 `친구들을 떠나면서`라는 제목의 고별 강론에서 "가톨릭 교회가 유일하고 참된 교회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한 뒤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의 개종은 가톨릭 성향 동료들의 개종으로 이어졌다.
【런던(영국)=CNS】

▨ 옥스퍼드 운동(Oxford Movement)

가톨릭 전통 회복을 통한 영국 국교회 쇄신을 목표로 1833년부터 1845년 사이에 전개된 운동. 옥스퍼드 대학교내 오리얼대학(Oiel College)의 젊은 교수들이 주도해 옥스퍼드 운동이라고 불린다.

산업혁명 영향으로 사회 전반에 변화 바람이 불던 19세기 초반, 성공회는 교회 수입의 불공정한 분배로 인한 갈등에 휩싸이고, 휘그당이 프랑스혁명 영향을 받아 급진적 교회개혁을 시도하려는 통에 홍역을 앓고 있었다.

옥스퍼드 운동 지도자들은 사도계승의 교회론을 기본정신으로 △비(非)교회인의 교회 내정간섭 배격 △국교회 폐지 가능성 고찰 △교회 민주화 등을 전개했다. 교회 내부에서도 수도원 부활 등 가톨릭 전통에 회귀하는 가시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성공회와 프로테스탄트 성향 학자들로부터 강한 저항을 받았다. 성공회를 자각시키고 성직의 권위를 확립하는데 기여한 이 운동은 뉴먼을 비롯한 운동 지도자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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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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