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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티니 추기경이 10월 31일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오른쪽) 대주교와 함께 정부종합청사 내 국무총리실을 예방, 한승수(왼쪽에서 세 번째) 국무총리 등 정부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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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티니(오른쪽) 추기경이 1일 한홍순 한국평협 회장에게 한복 차림 성모자상을 선물받고 기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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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처음으로 찾은 레나토 라파엘레 마르티노(교황청 정의평화ㆍ이주사목 평의회 의장) 추기경은 마치 할아버지처럼 `푸근하고 자상한` 인상이었다.
우리 나이로 77살이라는 나이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무색할 만큼 젊어 보였고, 3박 4일간(사실상 이틀) 짧은 방한 일정 중에도 한승수(다니엘) 국무총리와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을 만나고,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와 절두산순교성지를 찾은 데 이어 한국교회 주교단과 오찬, 한국 평협 회장단과 간담회를 갖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여줬다.
두 차례 간담회에서 여러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의 갖가지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하고, 6년간 작업 끝에 자신이 출간을 주도한 「간추린 사회교리」 한국판에 기꺼이 서명을 해주고, 개별적으로 요청해오는 기념촬영에도 기꺼이 응하며 `소탈한` 면모를 보여줬다.
유엔(UN) 주재 상주대표 시절에 돈독한 교분을 쌓은 한 총리 초청으로 내한한 마르티노 추기경은 방한 내내 「간추린 사회교리」 보급에 관심을 쏟았다. 10월 31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들과 간담회에서 사회교리를 `교회에서 가장 잘 지켜져온 비밀`이라고 표현한 마르티노 추기경은 "이 문서는 교회 안 다양한 구성원들이 각기 다른 은사에 따른 사회복음화 소명을 재발견하는 동기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마르티노 추기경은 이어 "사회교리에는 사회를 건설하고 조직하고 운영하는 일과 관련된 책임, 곧 정치와 경제, 행정 등에 관한 의무가 포함돼 있고, 이러한 세속적 성격의 의무는 평신도들에게 속한 것"이라고 못박았다. 특히 "사회교리는 단순한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실천해야 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평신도는 교회 사회교리에서 부차적인 부분이 아니라 바로 `중심`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제는 사회 활동이나 경제 활동에 직접 참여해 교회의 사회교리에 기여하지 않는다"며 "사제는 `교회공동체 안에서 다른 역할과 은사와 직무들을`(「현대의 사제 양성」 18항) 사회교리 선포와 관련시켜 촉진해야 할 사명이 있다"고 밝혔다.
또 「간추린 사회교리」 결론인 `사랑의 문화를 위하여`와 관련, "인간관계는 정의의 법칙으로만 지배될 수는 없다"며 "사랑은, 또 사랑만이 인간 자신에게 인간을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1일 마르티노 추기경의 발길은 절두산순교성지로도 이어졌다. 관심 있게 한국교회 유물을 둘러본 뒤 변우찬(절두산순교성지 주임) 신부에게 성모승천상을 선물 받은 마르티노 추기경은 성지 특전미사에서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 신앙의 뿌리"라며 "절두산에서 흘리신 순교자의 피를 공경하며 이룩한 한국천주교회의 성장은 세계 교회의 위안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부디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에 자부심을 갖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겠다는 마음을 갖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이뤄진 한국 평협 임원진과 각 교구 평협 회장단과 만남도 훈훈한 분위기였다. `평신도와 「간추린 사회교리」`에 대해 30분간 연설을 한 마르티노 추기경은 "이 문서는 평신도들에게 양성을 위한 소중한 도구로,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으로 제시된다"며 "사회교리는 창의적으로 적용되고 능동적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또 한국 성모상을 선물 받은 마르티노 추기경은 세계 각국 성모상 수집이 자신의 취미라며 기뻐했다.
1932년 이탈리아 나폴리 근처 살레르노 태생인 마르티노 추기경은 1957년 살레르노-칸파냐-아체르노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으니 올해로 사제수품 51주년을 맞고 있다.
사제품을 받은 지 6년만에 교황청 외교관학교에 입학, 졸업한 뒤 니카라과와 필리핀, 레바논, 캐나다, 브라질 교황대사관에서 근무하다가 1980년 9월 대주교로 승품, 태국ㆍ싱가포르 주재 교황대사와 라오스ㆍ말레이시아 주재 교황사절, 브루나이 다루살람 주재 교황사절 등을 지냈고, 1986년부터 16년간 유엔 주재 상주대표로 활동했다.
그 때 한국 신자들과 인연을 맺었다. 태국 주재 교황대사 시절,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 생일(12월 5일) 만찬에서 권병현(70) 당시 태국 주재 한국대사와 만난 게 계기였다. 태국 한인공동체가 성탄 미사를 봉헌할 성당을 찾는다는 권 전 대사 부인의 요청에 흔쾌히 교황대사관 경당을 쓰라고 허락한 마르티노 추기경은 이후 한인공동체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고, 권 전 대사는 마르티노 추기경(당시 대주교)을 대부로 세례성사를 받기도 했다.
한국 신자들과 인연은 유엔으로까지 이어진다. 뉴욕 유엔본부 근처 성가정성당에서 한인공동체를 위한 견진성사를 해마다 집전했고, 뉴욕을 떠난 뒤에도 지금껏 해마다 뉴욕을 찾아가 한인들을 위해 견진성사를 집전하고 있다.
이같은 한국 신자들과 인연을 마르티노 추기경은 어떻게 기억할까.
"가는 곳마다 예수님을 향해 불타오르는 한국 신자들의 신앙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한인 가톨릭공동체를 위해 견진성사를 집전했지요. 늘 경탄하는 마음으로 한국 신자들의 열심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