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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쥔민 주교 주례로 교구 사제단이 함께한 가운데 전 랴오닝교구장 진페이셴 주교 장례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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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중국 동북부 랴오닝(遼寧)교구장직에서 물러난 진페이셴(金沛獻, 비오) 주교가 4일 숙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85살.
북녘 의주 근처 중국인이 절반, 한국인이 절반인 마을에서 나고 자란 진 주교는 특히 한국인들에게 친근한 성직자로 기억되고 있다. 진 주교 가문은 안중근(토마스, 1879~1910) 의사 집안과 절친,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를 처단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떠나기 직전 진 주교 부친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진은 1960년대 중반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 공산당에 박해 빌미가 될 우려가 있어 불태워진 것으로 전해졌다.
연길교구 출신인 고 김남수(전 수원교구장) 주교와도 친분이 깊었던 진 주교는 1994년 6월 말 중국천주교 주교로는 처음으로 랴오닝성교구 성직자와 수도자, 종교국 관계자 9명과 함께 방한,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을 예방해 중국교회 지원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고인은 1924년 3월 16일 랴오닝성 개주시 사강촌 유림보둔에서 태어나 1936년 순방제(順方濟)소신학교에 입학, 1942년 이후 선양시 덕뢰신학원(현 심양신학원)과 창춘 신철학원, 베이징 문성학원 등에서 수학했다.
하지만 1948년 중국 대륙이 공산화돼 박해가 일어나자 1949년 홍콩으로 건너가 화남대신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51년 1월 29일 상하이 예수회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수품 직후 베이징 경신중 교사로 임용돼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이듬해부터 4년간 공장에서 회계원으로 일했으며, 1955년 푸순(撫順)본당 주임으로 부임해 사목했다.
그러나 1957년 동북3성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 일부가 진 주교를 `우익분자`로 비난하면서 1958년 6월 17일 반혁명 분자로 체포돼 10년간 도형(徒刑, 강제노역)을 선고 받고 복역했다. 1968년 제3차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三中全會) 결정으로 노역에서 풀려나 농장으로 보내졌으며, 중국이 개혁ㆍ개방된 이듬해인 1980년이 돼서야 다시 푸순본당으로 돌아와 10년간 사목했다.
1989년 5월 21일 랴오닝교구장 주교에 임명돼 20년 가까이 교구를 이끌다가 지난 6월 29일 교구장직에서 물러났다. 랴오닝성 전체를 관할하는 랴오닝교구 교세는 신자 10만여 명에 성직자 80여 명, 수도자 150여 명이다.
고인의 장례미사는 8일 선양(瀋陽)주교좌성당에서 현 랴오닝교구장 페이쥔민(裵軍民, 바오로) 주교 주례로 교구 성직자와 수도자, 신자들이 참례한 가운데 엄수됐으며, 이어 랴오닝성 관계자와 일반인들이 함께 한 가운데 고별식이 진행됐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