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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는 개인이든 단체로든 「간추린 사회교리」의 가장 좋은 동반자입니다. 이 문서가 평신도들에게 양성을 위한 소중한 도구로, 또 영감의 원천으로 제시된다는 뜻입니다.
평신도는 자신이 받은 세례 덕분에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시고 역사 속에서 교회를 통해 지속되는 세상을 향한 하느님 사랑의 신비 안에 자리하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교회 안에서 발견되는 그 신비와 친교, 사명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성격, 그들의 세속적 차원에 따라 그리하는 것입니다.
평신도들은 세속적으로 사회생활이 이뤄지는 곳에서 직접 살아갑니다. 결정과 선택을 통해 시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구조가 형성되는 경제, 정치, 노동, 사회 커뮤니케이션, 법, 제도, 조직 분야에 몸담고 살아갑니다. 평신도는 다른 교회 주체들보다 세상에 더 깊이 몸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세상 속에 있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평신도는 직접 세속 실재를 다루며 정치 사회공동체의 구성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수립하고, 활동을 통해 세상 흐름에 일정한 영향을 끼치며, 세상의 구조적이고 조직적 측면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평신도들은 그들의 전문적 역량과 특성을 통해, 또 구체적 상황 속에서 일해야 하는 임무를 통해 실천적 측면에서 교회 사회교리를 어느 모로든 실천하고 사회교리가 현실에 필요한 영향을 미치도록 합니다. 그래서 사회교리는 단순한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회교리는 삶을 지향하는 것으로, 창의적으로 적용하고 능동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평신도는 이 분야에서 그들에게만 속하는 역할은 아니어도 매우 특별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사회교리는 복음 진리와 인간 문제들의 만남이기에 평신도는 개인이든 단체이든 사회교리에 나타난 활동 지침이 구체적이고 효과적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평신도는 위험을 감내하고 새로운 경험을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입니다. 인간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이고 역사적 해결책을 추구하는 평신도는 교회 사회교리의 부차적 부분이 아니라 바로 `중심`입니다. 사회교리에는 심오한 `실천적`(「백주년」 59항) 차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신도는 한편으로는 사회교리에 나타난 성찰 원리와 판단 기준, 행동 지침 사이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행동하고 결정하는 구체적이고 독특한 상황들 사이에 `중개자`가 되는 이들입니다. 이러한 중재 역할에 용기 부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는 중재나 효과적 타협을 이루는 능력만도 아닙니다. 평신도가 세상의 소금과 빛, 누룩이 되려면 두려워하지 말고 열린 마음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지니고 사회 관계에서 참으로 인간다운 것을 더 분명히 드러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간추린 사회교리」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에 몸담고 있는 여러분과 진정한 신앙인으로서 중요 직무를 맡은 인사들의 성숙에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이 문서가 그들에게 영감을 줌으로써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증언을 하고 생각과 행동으로 현대 사회에 변화를 불러 일으키는 지도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회 분야에도 언제나 증인과 순교자, 성인들이 필요합니다.
「간추린 사회교리」에 관한 성찰을 마무리하며 `사랑의 문화`를 건설할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사제와 남녀 수도자 여러분은 사랑의 문화를 성취하는 데 소중한 기여를 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만일 정의가 객관적 선익을 공평하게 상호 분배하는 데 대한 인간들 사이 `중재`를 필요로 한다면, 사랑은, 또 사랑만이 인간 자신에게 인간을 회복시킬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 관계는 정의의 법칙으로만 지배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는 이유가 사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인간의 응답을 기다리시는 이유도 사랑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랑은 인간 사이에 맺을 수 있는 가장 지고하고 고귀한 형태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인간 삶의 모든 분야에 활력을 주고 국제질서에까지 확대돼야 합니다. `사랑의 문명`이 다스릴 때만 인류는 참되고 지속적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정리=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