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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 리치 신부를 다시 보다

유럽과 중국 대륙 사이의 ''진정한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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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베이징 성모의 원죄없으신 잉태성당 앞에 세워진 마태오 리치 신부 동상.
 

 
  교황청이 세상을 떠난 지 400년이 되는 한 선교사를 기억하는 전시회를 10월 30일 성베드로 광장 브라치오 디 카를로 매그노홀에서 개막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사제로 `중국교회 창설자`라 불리는 마태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 신부를 기리는 특별전이다. 16세기 말 예수회 중국 진출 역사와 마태오 리치의 과학적 업적을 소개하는 전시관에는 관람객이 줄을 잇고 있다.

 교황청이 마태오 리치 서거 400주년(2010년)을 앞두고 특별전을 기획한 이유는 그가 17세기 유럽과 중국 사이에서 소통과 교류의 `진정한 다리(true bridge)`가 돼주었기 때문이라고 관계자들이 밝혔다. 또 서양 선교사지만 28년 동안 중국인보다 더 중국인처럼 살면서 명나라 과학발전에 기여해 지금도 중국인들 마음 속에 그에 대한 존경심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중국 선교시대 도래에 대비하고 있는 바티칸으로서는 선교 토착화와 문화간 소통 면에서 그를 중국 선교사 모델로 삼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전시회 타이틀도 `역사의 정점에서, 마태오 리치: 로마와 베이징 사이에서`라고 정했다.

 마태오 리치는 1601년 베이징에 도착했다. 당시 명나라는 조공을 바치던 주변국들이 스페인과 포르투갈 손에 넘어가자 서양인들 입국과 체류를 불허했다. 그래서 마태오 리치는 명나라 황실에 자명종 시계ㆍ세계지도ㆍ천문학ㆍ수학 등을 전하는 궁중학자로 살아가며 선교 발판을 마련했다. 그가 직접 제작한 세계지도 만국여도(萬國輿圖)는 세계 정보에 어두웠던 중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특히 중국 전통사상인 유학을 수용하면서 낯선 천주교를 전달한 보유론적(補儒論的) 선교방식은 지금도 문화 적응주의 선교의 전형이 되고 있다. 그의 선교관과 대륙 복음화 비전이 편지에 담겨 있다.

 "우리는 여기서 중국 옷을 입고 중국 음식을 먹으며 중국식 가옥에서 중국말을 하고 삽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선교를 위한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선교는 파종이나 수확 시기가 아니라 황무지를 개간하는 단계입니다. 중국은 외국인에 대해 늘 의심을 품고 두려워합니다. 천천히 신복(信服)시켜 의심을 풀게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동료 코스타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최근 마태오 리치의 출신 교구인 마체라타교구에 보낸 서한에서 "그가 중국 전통과 문화를 존경한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리스도교와 중국 전통간의 조화를 모색했다"고 말했다.
 특별전은 내년 1월 24일까지 열린다.
【외신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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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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