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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독립국가인 아이티는 180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당시 국교가 가톨릭으로 정해졌지만 교황청과의 관계는 1860년에 이뤄진다. 교황청은 1860년 아이티와 수교를 맺고 교황 대사와 사제를 파견했다.
이후 100년 뒤인 1960년 두발리에 독재정권이 가톨릭 교회를 탄압하면서 가톨릭 교회와 국가 간 관계는 위기를 맞게 된다. 두발리에 대통령은 포르토프랭스대교구장을 추방시키고 연달아 사제들을 내쫓았다. 또 정권 유지를 위해 국민 1만여 명을 살해하기도 한다.
아이티 교회는 갖은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정부와 대치하는 대신 정부가 미처 손쓰지 못한 국민들의 가난과 인권, 사회복지에 눈을 돌린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3년 포르토프랭스를 방문했고 이때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이티 정부를 비판하며 폭력과 살인, 정쟁없는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을 주문했다.
1991년에는 가톨릭 사제 출신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처음으로 민주적 선거로 당선된다. 하지만 곧 군부 쿠데타에 의해 축출된다. 2004년까지 복귀와 축출을 반복하며 정치적 불안이 계속된다. 현재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남아프리카에서 망명 중이다.
아이티 국민 70는 가톨릭 신자지만 토착신앙인 부두(Voodoo)교가 저변에 깔려 있다. 개신교회는 부두교 의식을 전면 금지하고 있지만 가톨릭 교회는 토착화 일부로 부두교 의식을 받아들이고 있다. 마치 한국 교회가 제사를 받아들인 것과 같은 셈이다.
20세기 들어서면서 개신교회가 선교에 매진하며 가톨릭 신자 비율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