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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마테오 리치 서거 400주년 기념 특집, 현대 복음화의 사표 마테오리치를 조명한다(1)

중국 문화 받고, 복음 주고, 유교문화 존중하며 가톨릭과 서양학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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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상하이교구는 11일 마테오 리치(1552-1610, 예수회) 신부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마테오 리치의 해(12월 11일까지)`를 선포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마테오 리치는 동양 선교라는 원대한 꿈을 안고 중국에 도착, 적응주의 선교방법으로 중국 복음화 발판을 놓은 선교사다.
 그의 삶과 선교방법을 조명하고, 이를 통해 아시아 선교사명을 안고 있는 한국교회가 배워야 할 점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중국 상하이교구장 진루셴 주교는 11일 `마테오 리치의 해`를 선포하는 자리에서 "마테오 리치는 제사와 같은 중국문화를 인정하면서 중국에 서구 가톨릭 신앙을 전파했다"며 "중국문화를 존중하면서 하느님을 알린 마테오 리치 신부에게서 현재 우리가 나아가야 할 복음화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선포 배경을 설명했다. 상하이교구는 이 기간에 세미나와 성가대회, 기도회 등 그의 선교업적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를 연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16세기 중국에 진출해 가톨릭을 알린 선교사로 `중국을 빌어 중국을 변화시키는`(以中化中) 선교전략을 택했다.
 그는 유교문화를 깊이 이해하며 가톨릭 교리와 접점을 찾아냈다. 그가 제사를 유교의식이 아닌 효사상으로 받아들여 관대한 입장을 취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는 사제복을 벗고 유학자 옷을 입었고 중국이름(이마두, 利瑪竇)을 쓰며 유창한 중국어로 중국인들에게 다가갔다. 수학과 천문학, 역법에도 능통했던 그는 중국 황실에 서양과학과 기술을 전해줬다. 중국인들은 자명종과 천문기계 등 새로운 서양 문물에 열광하며 마태오 리치 신부를 받아들였다. 또 마테오 리치 신부는 온화한 성품과 겸손한 태도로 중국 유학자들에게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당시 명나라가 절대 군주체제를 바탕으로 폐쇄적 대외정책을 펼치며 서양인 입국과 체류를 막았던 시기임을 감안하면 그의 선교방식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후 예수회보다 늦게 중국 선교에 나선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는 이같은 예수회 선교방식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조상제사를 미신으로 주장하며 교황청에 이의를 제기했고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예수회 선교방식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교황청은 1939년 종교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제사를 허용했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를 통해 "전통이나 지역적 풍습, 장례 등에서 좋은 점이 있다면 받아들이도록 한다"고 선포했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제안한 `상호존중, 상호이해, 상호협력`의 정신을 이미 400년 전에 실천하며 토착화에 앞장선 선구자였다.
 중국 가톨릭교회가 마테오 리치 신부를 `현대 복음화의 모범`으로 칭송하며 `마테오 리치의 해`를 선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선교 방식을 본받아 지역 복음화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중국교회뿐만이 아니다. 마테오 리치 서거 400주년을 맞아 전 세계 교회가 종교간 대화와 문화적 융화를 바탕으로 한 그의 선교를 재조명하고 있다. 올해만도 벌써 3차례에 걸쳐 대만과 프랑스, 미국에서 마테오 리치 신부와 관련한 국제 학술회의가 열렸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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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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