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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마테오리치 서거 400주년 기념 특집, 현대 복음화의 사표 마테오 리치를 조명한다(2)

적응주의 선교방식이 적중, 탁월한 언어능력에 탐구정신 겸손 갖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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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 신부는 1610년 중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잊어버려 다시 공부할 정도로 철저히 중국인으로 살았던 그가 선종했다는 소식에 중국인들은 "진정한 성인이 떠났다"며 슬퍼했다.
 중국 황제는 리치 신부 묘지로 쓸 땅을 하사했고, 그와 가까이 지낸 유학자들은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했다.
 당시 유럽사회가 대 항해 시대를 맞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에 맞서 중국은 강력한 쇄국정책으로 서양인을 배척했다. 그런 상황에서 리치 신부가 이처럼 신임을 받았다는 것은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테오 리치는 1522년 이탈리아 중부 마체라타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는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에 다녔는데 특히 언어능력이 뛰어나 라틴어와 희랍어에 능통했다. 그가 6개월 만에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천재적 언어감각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마테오 리치는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아버지 뜻에 따라 법학을 전공했다. 그의 아버지는 시장과 주지사를 지낸 유능한 정치가였는데 장남인 그가 자신의 뒤를 이어 정치가로 성공해 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그의 유일한 낙은 예수회 수도원에서 수도자들과 영적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는 수도원을 드나들면서 하느님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1571년 부모 몰래 예수회에 입회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아버지는 격렬히 반대했지만 결국 아들의 뜻을 꺾지 못했다. 마테오 리치는 수도회에서 철학과 신학은 물론 기하학, 건축학, 수리학, 지리학, 천문학 등을 섭렵했다. 그가 중국에 전해 준 서구 학문은 모두 이 때 배운 것이다.
 그는 특히 아시아지역 선교담당 알렉산드로 발리냐뇨 신부 영향을 받았다. 알렉산드로 발리냐뇨 신부는 현지 문화를 적극 받아들이고 현지 실정에 맞게 선교하는 이른바 `적응주의` 선교방식을 가르쳤다.
 당시 대다수 서양 선교사들은 동양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미개한 문화로 취급해 서양의 사고방식과 문물을 강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존중과 화합의 정신을 바탕에 둔 적응주의는 시대를 앞선 발상이었다.
 마테오 리치는 적응주의 선교방식의 적임자였다. 탁월한 언어능력과 새로운 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탐구정신, 겸손한 성품을 갖춘 그는 편견과 선입관 없이 중국인들과 동화될 수 있었다.
 마테오 리치는 특히 현지인 수도자 양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1589년 로마 예수회 총장에게 중국인의 예수회 입회 허락을 받아내기도 했다. 또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중국에 가톨릭 교리는 물론 기하학, 천문학 등을 소개하는 책을 썼고 서양 사회에 중국 문화를 지배하는 유교사상을 소개했다. 오늘날 그를 동서양 문화에 다리를 놓고, 종교간 대화를 이끈 인물로 칭송하는 이유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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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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