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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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토크 & Talk] 12년 만에 신작 시집과 함께 돌아온 박노해 시인

“거짓 희망에 지친 이들에게 진실 전할 수 있길”, 1980~90년대 노동운동가 겸 혁명가, 젊은 시선·목소리 반영한 시집·사진전, “나를 돌아보는 기회”… 20~30대 호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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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신작 시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中


▲ 박노해 시인

박노해(가스팔·53) 시인이 12년 만에 침묵을 깼다.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걸음/560쪽/1만8000원)를 통해서다.

14일 시집이 시중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서울의 한 서점에서만 하루만에 100여 권이 팔려나갔다. 시집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판매량이다. 게다가 시집을 구입한 이들의 80가 20대인 것으로 집계됐다. 1980~90년대 노동운동가이자 혁명가로 일컬어진 시인이 요즘 젊은이들에게 더 인기라는 사실을 의아해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요즘 10~30대에게는 ‘가수 윤도현의 주례사를 쓴 사람’ 정도로만 알려졌다는 선입견도 급수정해야 했다.

박 시인은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펴내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리면서 80년대를 관통하는 실천 노동자의 전범으로 떠올랐던 인물이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무기징역형을 받은 시인은 7년 5개월을 복역 후 1998년 석방됐다. 시인의 시선은 자신보다 더 고통받고 아픈 이들에게로 돌려졌다.

자연스럽게 12년간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의 전쟁터와 분쟁지역 등을 돌면서 평화운동을 펼쳐왔다. 그러는 가운데 찍은 사진이 대략 13만여 점. 카메라로 시를 써온 여정이었다. 이 사진들은 7~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에서 ‘나 거기에 그들처럼’을 주제로 선보이고 있다. 이 사진전에도 많게는 하루 평균 1000여 명에 육박하는 관람객이 오간다. 관람객 중 과반수가 10~30대 젊은이들이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저에게 와서 토로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어른이 없다고. 좋은 말만 난무하고, 헛된 위안과 거짓 희망이 끝없이 쏟아진다고. 하지만 젊은이들의 영혼에 회초리를 대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잉여인간, 루저라고 불리는 자신들을 야단치고 끌어줄 사람을 찾고 있는데, 정작 자신의 삶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제 시와 사진을 통해 아마도 자신을 돌아보고 묵상하는 기회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사진 전시장은 마치 삶의 고해소와 같아졌어요.”

뭇사람들이 ‘시인이 펜을 놓고 카메라만 잡는다’ ‘시인이 침묵한다’고 수군댈 때도 사실 그는 펜을 놓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12년 간 쓴 시가 무려 5000여 점. 모두 만년필로 꼭꼭 눌러 쓴 시다. 이 중 304점만이 신간 시집에 수록됐다.

“시를 쥐어 짜내려 한 적도, 좋은 사진을 찍으려 안달한 적도 없습니다. 그림이 좋아서 찍은 사진이 아니라 사연이 절절해 찍었고, 그렇게 만난 이들의 말씀이 흘러들어 시가 되어 나온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시와 사진에 세계화의 몸부림, 참혹한 세계 분쟁 현장과 험난한 토박이 마을의 울부짖음과 고통을 그대로 담아냈다고 자평했다.
 

 
▲ “시를 쥐어 짜내려 한 적도, 좋은 사진을 찍으려 안달한 적도 없습니다.
그림이 좋아서 찍은 사진이 아니라 사연이 절절해 찍었고, 그렇게 만난 이들의 말씀이 흘러들어 시가 되어 나온 것입니다.”
 

시인은 “폭음과 전쟁, 총성 속 폐허 안에서 죽지 않기 위해 쓴 시가 키높이를 넘어섰다”며 “목에 칼이 들어오고 가슴에 총알이 박혀도 억압받는 사람들 편에서 진실을 절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특히 이번 시집과 사진전 또 사진집에는 젊은이들의 시선과 생생한 목소리도 담겼다.

“20~30대 젊은 친구들에게 제 사진과 시를 모두 맡겼습니다. 그들은 서로 모여 토론하면서 5000여 편의 시 중 304편을, 13만여 장의 사진 중에서 160여 점을 선택하는 방대한 작업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를 회고하고 486세대의 추락 등을 담은 100편의 시는 수록되지 못했다. 자신은 각별한 애정을 가진 시였지만, 머리만 움직이고 가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젊은 친구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따랐기 때문이다.

시인이 지난 12년간 전 세계 가난한 지역을 다니며 얻은 것은 시와 사진만이 아니다. 박 시인은 “내면의 가장 큰 변화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언제든 하느님 곁으로 떠날 준비가 됐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는 동인은 사랑임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말한다.

“어머니가 저에게 물려준 유산은 신앙과 가난 딱 두 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유산을 바탕으로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예수님처럼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를 끝내자마자 시인은 또다시 젊은 독자들을 위해 친필 서명을 시작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다. 사랑한 만큼 보이는 것이다. - 박노해”

박노해 시인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가톨릭신문  201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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