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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 나치시대 독일 군종사제, 시복 코앞

교황청, 지옥의 대천사 스톡 신부 시복 위한 기적 검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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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프란시스코=CNS】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파리에 설치한 포로수용소에서 사목한 한 독일 군종사제의 삶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 사제에게 전구를 청한 한 말기암 환자의 치유 사례를 교황청이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이 독일 사제는 1948년 2월 24일 폐수종으로 43살에 선종한 프란츠 스톡 신부다. 스톡 신부는 조국 독일뿐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화해의 상징이다. 프랑스는 스톡 신부 선종 50주기를 기념해 1998년 기념 우표를 발행했을 정도다. 파리 포로수용소에서 희생된 수백 혹은 수천 명 포로가 처형 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대면한 `인간적 얼굴`이 스톡 신부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인들은 스톡 신부를 `지옥의 대천사`라 불렀다. 독일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수용소의 포로들에게 보여준 영웅적 자비와 친절 때문이었다. 증인들 증언에 따르면, 스톡 신부는 목숨을 무릅쓰고 포로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전하고 초콜릿, 옷, 종이, 펜, 편지 같은 포로들에게 금지된 물품이나 생필품들을 몰래 제공했다. 포로들은 스톡 신부의 도움에 힘을 얻어 절망과 고문, 가족에 대한 위협 등을 극복해 낼 수 있었다.
 1941~1944년 사이에, 스톡 신부는 700명이 넘는 전쟁 포로가 처형당하는 것을 지켜봤고, 수천 명이 나치의 총살로 쓰러지는 것을 목격했다. 한 번은 일주일 동안 72명에게 죽음을 준비시키면서 그들의 시신을 직접 묻어주기도 했다고 스톡 신부는 베네딕토 수도회에서 발행하던 한 잡지에 썼다.
 프랑스가 나치 점령에서 해방되면서 스톡 신부는 미국인들에게 잠시 투옥당하기도 했지만, 석방되자마자 독일 전쟁포로들을 위한 신학교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신학교 운영은 프랑스 당국과 당시 프랑스 주재 교황사절인 안젤로 론칼리 대주교가 제안한 것이었다. 론칼리 대주교는 나중에 요한 23세 교황이 된 바로 그 인물이다.
 이에 따라 스톡 신부가 1945년에 시작한 `철조망 신학교`는 1949년까지 운영됐는데, 사제 수도자 신학생 등 모두 949명이 이 신학교를 거쳐갔다.
 스톡 신부는 일찍부터 평화, 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를 주창했다. 그래서 그는 철조망 신학교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프랑스에서 독일 전쟁포로를 위한 신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전후 유럽의 가톨릭을 쇄신하고 평화를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여겨 받아들인 것이다.
 론칼리 대주교는 교황사절로 있으면서 모두 4차례나 이 전쟁포로를 위한 철조망 신학교를 방문했으며, 스톡 신부가 선종했을 때 장례미사를 집전했다.
 그런데 말기암 선고를 받은 33살의 한 샌프란치스코 시민이 스톡 신부에게 전구를 청한 후 3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완치된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1997년 10월의 일이었다. 당시 이 환자에게 말기암 4기 진단을 내리고 앞으로 3개월 밖에 살 수 없다고 밝힌 담당 의사는 3개월 후에 암이 깨끗이 사라진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환자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혀 암 증세를 찾아볼 수 없다.
 샌프란치스코 대교구는 이 기적적 치유 사실에 대한 보고서를 지난 3월 교황청에 제출했으며, 교황청은 현재 이 치유 사실의 진위 여부를 검증하고 있다. 교황청이 이 치유 이적을 인정한다면, 스톡 신부는 시복될 수 있다. 스톡 신부의 시복 추진은 이미 선종 10년 후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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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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