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발언)
- "세례 받은 지 1년…세례명은 유딧"
- "세월호 있고 나서 운명처럼 안산 가게 돼"
- "김남국 의원, 10월에 2024 총선 불출마 선언"
- "정치 입문 35년...24살에 학생대표로 평민당 입당"
- "여성 최초이자 최연소 청와대 춘추관장"
- "공식 임명장 받고 대변인 맡은 건 5번"
- "기자들 콜백은 당연…토론 논쟁 쫄지 않고 해"
- "대통령 직속기관과 소속기관은 완전 다른 것"
- "방통위, 독립기구로서 대통령 소속기관"
- "尹, 방통위를 직속기관처럼 좌지우지…우려스러워"
- "정권 뺏기면 안 되니까 무소불위 검찰 권력 휘둘러"
- "이낙연계 의원들도 신당 창당 반대…이낙연, 멈춰야"
- "원칙과 상식 모임, 비대위 주장, 상식 없는 제안…동의 못해"
- "원내 입성하면 방송장악 금지법 개정 추진할 것"
뉴스공감이 총선을 앞두고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총선 출마자를 미리 만나보고 검증해 보는 국민면접 시간입니다.
오늘 면접자는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언론특보를 맡고 있는 김현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저희가 방통위 계실 때 몇 번 모셨는데 현안이 많았잖아요. 이제 퇴임하신 후로 모시게 됐는데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사전에 받은 간단 이력서부터 들어보겠습니다.
‘간단이력서.
이름 김현, 나이 65년생, 58세. 소속 더불어민주당, 선수 초선, 지역 안산시 단원구, 종교 천주교, 세례명 유딧, MBTI ISTJ.
▷간단이력서 들어봤는데 저는 당연히 MBTI E 유형이실 줄 알았어요. 대변인도 많이 하시고 워낙 외향적인 성격이셔서 I, 맞게 나온 거 맞습니까?
▶제가 사실은 현장에 출입하는 기자가 한 번 해보자고 방통위 있을 때 해봤어요. 그게 아마 올 3월이었어요. 얼마 안 됐어요. 그 친구도 굉장히 의아해 하면서 이런 면이 있구나. 그래서 대변인 하면서 오래 할 수 있었던 배경 중의 하나가 I 때문인 것도 있고 J 때문이라고도 얘기를 하더라고요. 오늘 이 보도국에 있는 기자가 본인하고 같다고 박수쳤어요.
▷종교가 천주교이신데 세례 받으신 지 얼마 안 되신 거로 알고 있거든요. 어떻게 신자가 되신 겁니까?
▶지난해 3월 9일 날 설마 우리가 지겠냐. 이런 생각을 갖고 그때는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었습니다. 정말 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옛날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일어났던 일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이번에 윤석열 정부가 등장하면 방송장악하려는 시도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이겨야 하는데 그때는 제가 정치인이 아니고 공무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잖아요. 지고 나서 제가 안산에 2015년도에 갔는데요, 서울에 있다가. 가게 된 배경이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다음 해 안산으로 집을, 서울에 있을 때는 월세를 살았는데 안산에 빚을 내서 융자를 내서 아파트를 얻어서 최초의 자가 주택을 갖게 된 건데 그래서 안산을 갔어요. 갔는데 다른 종교는 세월호 관련해서 3년, 4년 됐을 때 거의 안 했는데 안산의 성당에서는 매일 주보에 마지막까지 실종됐던 단원고 학생이 찾아질 때까지 매주 기도를 해주셨고 정부 합동 분향소가 마지막 추모제 할 때 그때까지도 천주교는 매주 미사를 거기에서 했어요. 제가 지역에서 교회를 다니다가 코로나가 생기면서 문을 닫았잖아요. 대선 지고 마음의 평정심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변 선배님들하고 의논했는데 성당에 가서 예비신자 교리공부를 받고 그러면서 마음을 하는 게 좋겠다. 그게 오래 사는 방법이겠다고 해서 신부님을 만나서 교리공부를 시작하고 12월 18일 날 크리스마스 전주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신자가 된 지 1년 정도.
▶1년 됐습니다.
▷종교를 바꾸는 결정이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예비신자 교리공부가 짧았어요. 신부님이 원래 6개월인데 3개월로 그때 처음 저희 본당 신부님이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에 계셨어요. 공부를 11년 동안 하고 오신 분이고 처음으로 본당 신부님으로 오셔서 예비 신자 교리 공부를 직접 해주셨어요. 기간이 좀 짧았습니다.
▷세례명이 유딧이신데 주변에 이 세례명 가지신 분 처음 봤어요.
▶성당에서도 유딧, 저도 자매님 한 분 계세요. 보면 되게 드문 세례명이긴 한데요. 그때 10월 달에 제가 세례명을 정할 때 임수경 의원하고 제가 친하게 지내는데 부탁을 했죠. 그분은 원래 천주교였다가 개종을 한 케이스인데 함세웅 신부님 통해서 세례명을 부탁했어요. 신부님이 당시에 책을 쓰고 계셨는데 그때 ‘역사의 기도’라는 책이었어요. 그때 유딧 얘기가 나옵니다. 우리 민족이 어려운 시기인데 민족을 구하는 나라를 구하는 그런 일이 필요할 것 같다고 저한테 유딧 세례명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사실 조금 고민스러웠던 게 알려진 세례명을 보통 하는데 세례명이 워낙 세다 보니까 고민을 했는데 그 와중에 이태원 참사가 생겨서 이거는 도저히 제가 이 나라의 운명도 걱정스럽고 세월호 이어서 이태원 참사까지 그때도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언론에서 보수언론에서 논란이 있었고 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해서 민들레에서 이름만 공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가지고 압수수색당하고 기자들 고초를 겪고 있는데 그래서 하는 거로 유딧을 받겠다고 해서 쓰고 있습니다.
▷고향이 강릉이신데 세월호를 기점으로 해서 집도 옮기고 여기서 출마도 준비 중이신 거죠.
▶그렇습니다. 제가 사실은 안산은 한양대가 있는 도시예요. 서울에도 있고 안산에도 있어요. 한양대 출신인데 저희 오빠가 안산 한양대, 에리카라고 학교 이름인데 에리카 1979년도에 개교했는데 그때 1학년으로 입학을 했습니다. 제가 안산을 오빠 대학교 입학할 때 처음 가봤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저렇게 발전되기 전이었습니다. 안산은 입력이 된 거죠. 제 머리에. 그리고 세월호가 있고 나서 운명처럼 안산을 가게 된 겁니다.
▷안산 단원구 예비후보 등록까지 하셨더라고요.
▶했습니다. 저하 당은 후보 검증을 통과해야지 예비 후보를 등록할 수 있게 만들어 놨거든요. 그래서 지난 12월 4일 날 검증 서류를 냈고 금요일 날 통과가 돼서 12월 12일 날 벌써 까마득한데 화요일 날 12월 12일 등록하고 사무실 외벽에 현수막 걸고 아침부터 보통은 10월 13일부터 두 달가량은 혼자만 저만 명함을 돌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선거운동원으로 등록한 사람 그리고 저와 함께 동행할 경우는 할 수 있어요. 저하고 저는 판넬 부착하고 인사하고 두 분이 자원봉사자 두 분이서 아침에 수고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명함을 사실은 안 해 보였죠, 김혜영 앵커님.
▷요즘 날씨가 추워서.
▶추우니까 받기가 더 어려운데 잘 받는 분도 있지만 안 받는 분도 있고 또 손사래 치는 분도 있고 명함을 줄 때는 저분이 받을까 안 받을까 걱정합니다. 그런데 외면하시는 분들 만나면 속이 안 좋잖아요. 그런데 제가 명함은 지금은 판넬 들면서 인사를 하고 오늘 안산에 비가 많이 왔는데 ‘빗길 조심하시고 안전한 하루되세요. 더불어민주당 김현입니다.’ 인사하면 옆에서 명함을 돌리는데 잘 받는 분이 안 받는 분이 있잖아요. 제가 얼마나 웃는지 몰라요. 이동하는 분이 안 계시면 안 받는 분 수행하시는 분한테 제가 ‘힘들죠.’ 합니다. 아마 예비후보들 현역의원들은 인지도가 높아서 인사하면 알아봐주시는 분도 많아서 좀 덜 불편한데 신인들은 힘들 겁니다.
▷이미 선수도 있으시고 활동하셔서 알아보시는 분이 더 많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습니다.
▷경기 안산 단원을이 김남국 의원 지역구입니다.
▶김남국 의원이 지난 10월 달에 불출마 선언을 하고 다음 2024년 총선에는 나오진 않고요.
▷정치인 김현의 정치 이력서를 살펴보겠습니다. 선수는 초선이시지만 정치하신 지 꽤 됐어요.
▶정치권에 입문한 지 35년 됐습니다.
▷선수만 초선. 어떻게 정치에 입문하게 되셨습니까?
▶1987년도에 대선이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1987년도에 대선이 있었는데 그때 김대중 대통령이 3등으로 성적이 어마어마하게 안 좋았잖아요. 정계은퇴를 선언합니다. 다음 해에 총선이 있었어요. 김대중 대통령이 당신이 정계은퇴 하는 것은 그리고 스스로가 책임지는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호남을 기반으로 한 평민당마저 제도권에서 몰락을 하면 대통령도 영남 그 정당도 영남 김영삼 대통령 쪽도 영남 모두 다 영남이기 때문에 호남이 그래도 민주주의의 원칙과 기백을 지켜 왔는데 그게 몰락하면 대한민국은 파시즘으로 가니까 재야 어른들에게 찾아가서 입당해 달라. 영입을 하신 거죠. 그때 대선 지고 나서 정말 형편없을 때인데 대선 책임에 대한 두 분이 단일화를 못했기 때문에 DJ, YS가 단일화가 안 됐기 때문에 6월 항쟁의 성과를 전두환, 노태우가 집어삼킨 꼴이 됐지 않습니까? 거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미래가 초토화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때 이해찬 전 대표 임채정 전 국회의장 이런 분들과 그분들이 30, 40대 젊은 시절이었는데 그분들은 설득이 안 되니까 이미 다 작고하신 문익환 목사님, 문동환 박사님, 안병우 교수님 이런 분들 찾아서 설득을 하신 거예요. 그래서 이분들도 그러면 내가 앞장서서 들어갈 테니 후배들도 들어와라. 98명이 당시 평민당에 2월 3일에 입당합니다. 그래서 영입 98명으로 해서 제가 학생 대표 5인 중 한 명으로 해서 평민당 입당해서 그때부터 제도권에서 활동하게 됐습니다. 24살이었어요.
▷원래 정치에 생각이 그 전에도 있으셨습니까?
▶아니죠. 그때는 학생운동하고 바로 직후라서 제도권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을 안 했는데 제가 그때 전대협 활동을 할 때니까 5개 대학교 학술부장이 모여서 심포지엄을 했는데 그때 주제가 필리핀 2월 혁명이었어요. 2월 혁명이 86년도에 있어서 저희보다 1년 먼저 해서 대통령이 민간의 힘으로 정부를 만들어서 제도적으로 바뀌는 그런 것이 되게 제가 볼 때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연구했던 내용을 기반으로 해서 제도권으로 들어가서 정권교체를 반드시 이뤄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해서 제안을 받아들인 거죠.
▷저는 이력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이력이 여성최초이자 최연소 청와대 춘추관장, 노무현 정부 때셨어요.
▶그때 2002년도에 대선 때 대변인실에 부장으로 있었어요. 그때 대변인이 지금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이낙연 대변인님이 당시 대변인이셨고 제가 대변인실 부장으로 그 전에는 정동영, 김한길 대변인, 박병석 대변인 이런 분들이 대변인실에 계셨는데 그때 부장으로 하면서 대선 후보 경선을 전국으로 순회할 때 같이 활동을 했고 그리고 후보가 된 뒤에 대선을 같이 치루고 인수위 때 행정관으로 파견됐다가 청와대로 가서 행정관으로 시작을 했었고 그리고 1년 만에 비서관으로 승진하게 된 겁니다.
▷대변인 너무 많이 하셨잖아요. 업무의 연장선상으로 연계되기도 해서.
▶부대변인부터 했습니다. 서울시장 2002년도에 서울시장 선거인데 이명박 대 김민석 할 때 부대변인하면서 수행 현장을 주로 기자들하고 다녔었어요. 부대변인 하다가 대변인은 2012년도 초선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될 때 한명숙 당대표 때 대변인, 이해찬 당 대표 때 대변인, 문희상 비대위원장 때 대변인, 추미애 대표 때 대변인, 문재인 대통령 선대위 대변인 그리고 방통위에 가게 된 겁니다. 대변인은 공식적으로 임명장 받은 대변인은 5명의 대표를 모시고 대변인을 했었습니다.
▷많이 할 수 있는 비결, 지난번 박수현 전 수석은 나와서 늦어도 기자들 전화는 꼭 콜백은 한다고 얘기하셨는데요.
▶그분이 원내 대변인할 때 제가 대변인이었거든요. 고민을 하시기에 꼭 하시라고 천거를 했는데 비결은 사실은 첫 번째는 부지런함일 것 같아요. 저희가 노무현 대통령이 인수위 때 기자들을 대하는 원칙을 수립을 하셨는데 문화를 좀 바꿨는데 양폭 안 먹는다. 양주를 넣은 폭탄주를 못 먹게 하셨죠. 그래서 소폭으로 갔는데요. 그게 술 문화를 바꿨고 두 번째로는 가판 이라고 미리 전날 신문을 만들어서 불리한 기사를 없애기 위해서 공무원들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정치인들도 그렇고 동아일보 사옥 앞에 보면 가판 지금도 몇 개가 나오는데 거기로 쫓아가서 하지만, 그때는 가판이 배달이 됐었습니다. 대변인실에 배달되면 그걸 가지고 기사를 빼고 넣고 기자들하고 언쟁도 하고 부탁도 하고 하는 건데 그때부터 시작된 훈련이 몸에 배서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가판을 없애야지만 청탁문화가 사라진다. 가판을 못 보게 했고 나왔는데 못 보게 했어요. 사실은 제가 봤어요. 집에서 따로. 그래서 저는 대통령이 하지 말라고 했는데 기자들한테 불리한 기사 사실이 부합하지 않는 기사를 정정요청하고 그거를 대변인실에 있을 때 부장으로 있을 때 부국장으로 있을 때부터 했었고 청와대 가서도 그거를. 사실은 언론중재까지 가면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요. 부지런함은 새벽 4시에서 4시 반에 신문배달이 되기 때문에 이미 보고 출근을 하고 기자들한테 그런 내용을 가지고 토론하기도 하고 언쟁도 하고 그러면서 그거로 끝났으면 제가 오랫동안 공보 파트에서 일을 못했는데 점심, 저녁을 먹고 그래서 춘추관에서 나올 때 엄마라고 부르는 마지막 춘추관장이라는 감사패도 받았고 그러고 나서 다시 국회의원하면서 대변인을 맡았는데. 박수현 대변인도 얘기하지만 사실은 전화를 받고 안 받고 하늘과 땅차이인데 저도 무조건 콜백도 하고 토론논쟁 그리고 쫄지 않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당시에 인연을 맺었던 기자들이 사장도 하고 편집국장, 편집인, 방송사 사장으로 계신 분들이 많은데 20년 됐잖아요. 그렇게 했던 거로 평가를 해주시는 것 같아요.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당선돼서 초선을 지내셨고 문재인 정부시절에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 또 상임위원까지 활동을 하셨습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올해 8월 23일에 퇴임했는데 퇴임 메시지가 강하기도 하고 인상 깊었어요. ‘방송은 물과 공기 같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존재감이 없지만 오염되고 나서야 불편함과 위험을 느끼게 되고 개선을 위해서는 몇 곱절의 노력을 하게 된다.’ 방통위 굉장히 부침이 많습니다. 바람 잘 날 없고 지금 후보자가 임명돼 있는데 위원장이. 5명 체제인데 1명만 남아있고 여러 가지로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상황 어떻게 지켜보고 계세요.
▶일단은 제가 3월 9일 앞서 얘기했던 정부가 넘어가고 사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 독임 제기구로 방통위원회를 개편하는 거였어요. 독임제 기구는 장관, 차관 옛날 정통부 시절인 거죠. 대통령의 직속기관,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관의 성격을 띠게 하는 형태로 바꾸려고 했는데 그거는 안 되는 거죠. 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저희가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개정안 되니까 시행령 통치를 했지 않습니까? 법무부도 그렇고 방통위도 텔레비전 수신료 문제를 시행령 개정해서 분리징수를 하는데 그다음에 할 수 있는 거는 상임위원을 우리가 추천한 것을 임명하지 않고 2명을 가지고 방송장악을 계속 시도를 했지 않습니까? 사실은 제가 있을 때도 있었던 일인데 3명인데 3명이서 2명이 찬성하고 1명이 반대하는 거를 강행한 거잖아요. KBS이사 둘 자르고 EBS 이사도 자르고 MBC방문진 이사도 권태선 이사하고 김기중 이사까지 해임시켰는데 이 두 분이 돌아오면서 MBC는 뜻대로 안 된 거죠. 막은 건데 그런 일들을 무도하게 하는 건데 이거는 방통위 설치법도 위반, 방송법도 위반이고 공무원에게 부당한 일을 행하게 한 것으로 볼 때 국가공무원법 위반을 사무처 직원들이 하게끔 만들었던 거잖아요. 2008년도에 방통위가 만들어진 거는 적어도 5명이 합의해라. 그리고 충분하게 논의를 통해서 사회적 합의, 그다음에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갈등 있는 과제는 5명이 있을 때 논의해서 결정하라는 건데 그런데 그거를 아예 깡그리 무시하고 제가 있을 때도 그렇게 해서 제가 나온 뒤에는 최민희 의원을 임명해야 하는데 임명을 미루면서 최근까지 한 게 YTN사업자변경하려고 했고 연합뉴스TV에 대해서 사업자 변경을 하려다가 그거는 무위에 그치고 이동관 위원장에 대해서 탄핵을 실행하려고 하니까 그날 그만두고 그 뒤에 지금 김홍일 위원장. 그 분은 겸임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권태선 이사에 대해서 권익위가 문제가 있다고 검찰에 수사의뢰를 해놓고 방통위로 오겠다는 거 아닙니까? 이와 같은 일은 2008년도 이후에도 없었던 거고요. 물론 그때는 본인들이 다수당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전횡을 했을 수 있어요. 지금은 국회의원 숫자가 안 되니까 대통령이 직할로 지금 이런 무도한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는 김홍일 위원장의 경우는 방송의 자유, 그다음에 이용자의 권익 증진을 위해서 일을 하기 위한 자리가 방통위원장이고 독립기구로서 대통령 소속기관입니다. 대통령 소속기관은 감사원 그다음에 국민권익위, 인권위가 그렇게 돼 있는데 직속기관과 소속기관은 완전 다른 거죠. 그런데 지금 방통위를 직속 기관처럼 용산에서 비서실처럼 좌지우지하고 있는 점이 우려스러운 상황입니다.
▷이런 비판 하시는 분들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 시절에 방송법 개정을 했으면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었냐는 비판하시는 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거는 만약에 했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이사들 업무추진비 카드 가지고 수사의뢰한 것만으로도 잘라내잖아요. 물론 좀 시간은 더디겠지만 이 정부가 하는 방식으로 한다고 보면 다 잘라낼 거다. 마찬가지라는 거고요. 그러면 뭐가 부족했냐고 하면 사실은 2017년도에 문재인 정부 들어섰을 때 그때 위원장이 임기가 종료가 돼서 저희가 인사청문회를 인수위가 없이 문재인 정부가 등장했지 않습니까? 그 당시 2, 3개월의 방통위가 공백이 있었어요. 2명 있을 때가 있었고 3명 있을 때가 있었는데 중요한 결정을 안 했어요. 5명 다 있을 때 했고 그 이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당시에 5명에서 2명이 있을 때 또는 3명이 있을 때 회의가 어떻게 되는지 법률 의뢰를 했는데 한 곳에서는 하면 안 된다는 결정이 있었고 세 군데에서는 할 수 있다는 소견서를 냈어요. 그러니까 2명이서 했을 때는 2명이 동의하면 의결되는 거고 3명 있을 때는 1명 반대하고 2명이 찬성하면 적용이 되는 거라는 유권해석을 한 거죠. 그런데 아닌 거거든요.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해서 당시 법제처 유권해석을 받아놓지 않았더라고요. 2017년도에. 그게 지적받을 사항인데 우리가 한상혁 위원장 있을 때 한상혁 위원장도 무리하게 쫓아낸 거지 않습니까? 한상혁 위원장 있을 때까지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위원장이 나가고 김효재 직무대행이 등장하면서 방망이를 함부로 휘두른 거거든요. 왜 안 그랬냐. 정권을 뺏기면 안 되는 거죠. 정권을 뺏기니까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가지고 이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재명 당대표 언론특보 맡고 계셔서 이낙연 전 총리 아까도 대변인 인연 언급해 주셨습니다만 신당 창당을 명확하게 거론했습니다. 여야를 아울러 여러 사람 만나고 행보 보폭이 넓어졌거든요.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그분이 선대 때부터 민주당 의원이었다. 2004년도에 열린우리당이 만들어질 때도 민주당에 잔류해 있었던 분입니다. 그때 하셨던 말씀은 나는 뼛속 깊은 민주당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민주당 나가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셨거든요. 저는 그 말씀을 지금 그분에게 꼭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야를 아우른다고 얘기하는데 정치가 물론 협상과 타협을 할 때는 여야가 같이 논의도 하고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그런 일들을 하지만 지금 같이 윤석열 정부의 무도한 검찰 폭정에 맞서 싸우고 있는 형국이고 당대표가 300여 차례가 넘는 400여 차례나 되는 압수수색과 무리한 검찰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고 그것을 한 목소리로 단결하서 싸워야 할 지점에서 그들과 부역한 사람과 손을 잡고 뭘 해보겠다고 하는 거는 성공할 수 없는 거고요. 이낙연계라고 얘기하는 사람, 의원들조차도 이낙연 대표의 탈당 및 창당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랑 할지. 그런 경우는 대개 경우 크게 성공하지 못한다고 보고 있고 이제라도 멈췄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낙연 전 총리하고는 별도로 약간 결이 다르게 원칙과 상식에 소속된 의원들도 이재명 당대표대신 비대위체제로 가자고 얘기하고 있거든요.
▶그 얘기는 대략 1년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난 9월 21일 날 체포동의안 발부됐을 때 가결했던 29명이 있고 그때도 그분들이 비공식적으로 공식적으로 요청했던 게 물러나고 비대위구성하자고 했는데 체포동의안이 발부됐고 기각이 됐잖아요. 지금 대표의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는데 여당이 혼선을 빚고 대통령 지지율마저도 떨어지고 있는 상황은 결국은 당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반영됐다고 보거든요. 그러면 우리는 안정적으로 당대표를 중심으로 총선 준비하는 게 맞는 거지 원칙과 상식처럼 정말 상식 없는 제안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어요.
▷국민면접 코너 공통질문입니다. 국회 다시 입성하시게 된다면 이것만은 꼭 지키겠다, 약속이나 다짐 있으실까요?
▶방송장악을 저지하는 데 가장 앞장서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앞서 얘기한 방송장악을 못하게 할 수 있는 법 개정을 또 하겠고요. 그리고 다음 대통령 저희가 반드시 정권교체를 통해서 무너진 민주주의, 통일, 인권 그다음에 사회적 약자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보다 보편된 복지를 추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에 앞장서서 싸우겠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