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로 가보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년 연속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네요?
▶그렇습니다. 윤 대통령, 지난해 약속한 적이 있거든요. 한 번이 아니라 매년 오겠다고 했었는데요. 올해도 참석을 했습니다. 보수 정권의 대통령이 2년 연속 5·18 기념식에 참석한 건 윤 대통령이 처음입니다.
▷기념사 주요 메시지도 살펴볼까요?
▶크게 보면, 유공자 유가족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한 부분이 있었고요. 5·18 민주화운동이 갖는 의미, 오월 정신의 의미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오월 정신의 계승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오월의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고 말한 부분입니다.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오월의 정신은 우리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이고, 우리가 반드시 계승해야 할 소중한 자산입니다. 우리를 하나로 묶는 구심체입니다."
이어 오월의 정신을 계승한다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5·18 유공자, 오월 어머니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어요. 그 부분도 들어보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오늘 이 자리에 ‘오월의 어머니’들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남편, 자식, 형제를 잃은 한을 가슴에 안고서도 오월의 정신이 빛을 잃지 않도록 일생을 바치신 분들입니다. 애통한 세월을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시는 분들의 용기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오월의 정신 아래 우리는 모두 하나"라면서 "민주 영령들의 안식을 기원한다"고 밝혔습니다.
▷오늘 기념식 보니까, 오월 어머니들과 함께 민주의 문으로 입장을 하더라고요. 눈에 띄는 장면이었죠?
▶보통 주요 인사들과 함께 입장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요. 오늘은 윤 대통령이 오월 어머니들 15명을 민주의 문에서 직접 맞이한 뒤 동반 입장했습니다. 이어서 오월 어머니들과 함께 헌화와 분향을 했습니다.
43년이 흘렀는데도, 슬픔은 여전했습니다. 남편이나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 눈물 보이는 분들 많이 있었고요. 서로 손을 잡고 위로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윤 대통령도 애달픈 표정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직접 묘역을 참배하기도 했습니다. 전영진, 김재영, 정윤식 열사의 묘역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습니다.
전영진 열사의 경우 시몬이라는 세례명을 가진 당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죠. 머리에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난 분입니다. 제가 부모님 인터뷰를 한 적도 있는데요. 그때 취재를 지시한 사람이 김 반장이죠. 당시 들었던 얘기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돼서 집에 들어왔고, 전영진 열사가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인가 모르겠다고 화를 내면서 거리로 나갔다고 합니다.
이미 계엄군에 폭행을 당해서 집에 들어왔던 거죠. 그때 어머니가 말렸는데, "조국이 저를 부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고, 그게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됐던 겁니다. 그 말이 여전히 묘비에 새겨져 있습니다.
▷저도 기억 납니다. 오늘 윤 대통령과 전영진 열사의 부모님이 만났죠?
▶그렇습니다. 제가 기념식 후에 고 전영진 열사 아버지 전계량 씨와 잠시 통화를 했거든요. 윤 대통령을 만나면 꼭 5·18 정신을 헌번 전문에 넣어달라는 요청을 하려고 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아내 분은 아들 생각에 감정이 올라와서 눈물을 훔치고 있고 비도 오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갑자기 들렀다가 인사만 짧게 나누고 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어달라는 말을 하지도 못하고 넘어가서 아쉬운 마음을 저에게 보이더라고요. 전계량 씨의 목소리 들어보겠습니다.
<전계량 안셀모 /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출마할 당시부터 5·18을 헌법에 넣겠다고 하기 시작했어요. 개인의 입장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것은 나라를 위해 군사 독재에 항거하다가 산화해 간 열사들의 정신이 헌법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 대통령 공식적인 기념사에 유가족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말들이 더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5·18 정신 헌법 전문에 수록하자, 이런 얘기가 나오고 있죠? 약간의 신경전도 있는 것 같네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포문을 열었습니다. "5·18 정신 헌법 수록은 대선 당시 여야 할 것 없이 약속했던 대국민 공약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 총선에서 원포인트 개헌으로 약속을 지키자"며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촉구했습니다.
오월 정신을 외치죠. 5월만 되면 되풀이됩니다. 하지만 또 시간이 조금 지나면 망언들이 나옵니다. 김재원 최고위원의 발언이 문제가 됐죠. 이제는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는 겁니다. 아예 5·18 정신을 부정하는 그런 시도 자체를 헌법 전문 수록을 통해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윤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잖아요. 김기현 대표는 어떤 얘길 했습니까?
▶김 대표는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하는 것은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고 우리 당이 갖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다. 그 뜻을 잘 실천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럼 추진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우리 헌법을 보면, 역사적 사건은 3·1운동과 4·19혁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여기에 5·18 민주화운동을 넣자는 거죠.
의지는 있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의 소신이기도 하다라고 말했어요. 다만 약간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원포인트 개헌 제안은 비리에 얼룩진 정치인들의 국면 전환용 꼼수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약간 온도 차이가 있죠. 다만 정당한 과정을 통해 헌법을 개정하는 계기에 반드시 반영하게 될 것이란 말도 덧붙였습니다.
쉽진 않을 것 같아요. 헌법 바꾸려면 국회의원 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고, 또 국민투표에서도 과반 넘는 찬성이 필요하거든요. 개헌 논의가 돌입하면, 5·18 정신 수록뿐 아니라 대통령제를 바꾸자, 지방분권도 챙겨야 한다 등 여러 요구들이 나오게 될 겁니다. 그러면 원포인트 개헌이 쉽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문재인 정부도 개헌안 발의했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이 사안을 해결함으로써 진정성을 보이면 될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이 약속을 어떤 방식으로 지키게 될 것인가, 진정성 보이는 길입니다.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 씨도 오늘 5·18묘지를 찾았거든요. 처음에 사죄를 하고 진정성에 대한 얘기들이 있었잖아요. 하지만 전우원씨는 반복된 행동으로 진정성을 표현하고 있어요. 국민의힘도 김재원 최고위원을 징계했고,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야 할 때가 아닌가. 윤 대통령도 "실천적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거든요.
▷"말 대신 실천할 때다" 여야 모두가 기억했으면 합니다. 어제 5·18 미사도 봉헌됐죠?
▶어제 5·18민주화운동 43주년 기념미사가 광주에서 봉헌됐습니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는 1980년 당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사제들의 활동을 기억했고요. 김성용 신부와 조비오 신부로 잘 알고 있는 조철현 신부의 증언을 다시 되새기기도 했습니다. 옥현진 대주교 목소리 들어보겠습니다.
<옥현진 대주교 / 광주대교구장>
"광주시민 학살을 명령했던 책임자가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나마 손자가 와서 사과를 해서 다행이었습니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정당은 끊임없이 5·18정신을 훼손하고 왜곡하는데 앞장서 왔습니다."
▷김성용, 조철현 신부의 당시 활동도 조금 짚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도 전에 김혜영 반장이 지시해서, 광주 내려가서 관련 자료를 다 찾아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억하시죠?
조철현 신부는 계엄군의 헬기사격 증언으로 많이 알려져 있죠. 이 두 분 사제는 탱크 앞에 섰던 사람들입니다. 증언록에 나오는 부분인데요.
1980년 5월 26일 새벽, 계엄군의 탱크가 광장으로 진입했습니다. 시민들을 향해 발포 태세를 취했고, 시민들이 피를 흘리고 쓰러집니다.
그때 김성용 신부가 한마디 말을 던집니다. "어른들이 총알받이로 나서자"는 말이었습니다. 김성용 신부와 조철현 신부를 비롯한 17명의 수습대책위원들은 맨손으로 탱크 앞으로 향합니다. 이른바 '죽음의 행진'이라고 불리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시민들의 요구를 전합니다. 탱크 동원 사과, 치안은 경찰에게 맡기고, 시민 자극하지 말라 등입니다. 하지만 요구는 묵살됩니다.
여기서 김성용 신부는 서울로 향하고,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에게 광주의 긴박한 상황을 전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계엄군은 작전을 개시합니다.
오월 정신이라는 게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이런 것들도 있지만 당시 광주 시민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음식도 나누고, 헌혈도 자발적으로 하고 이런 모습들을 다 포함하는 것이거든요.
당시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사제들이 체포되면서까지 진실 기록하고 알리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진실을 알리고, 희생자와 함께하며, 대화를 통한 사회정의에 나서는 모습, 헌법 전문에 수록되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