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0일에 개봉하는 영화죠. ‘길위에 김대중’ 제작에 함께하신 최낙용 시네마 6411 대표와 먼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대표님 어서 오십시오.
▶네, 반갑습니다. 최낙용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제작사 이름에 붙은 6411이라는 숫자가 궁금해요. 어떤 의미가 담긴 건가요?
▶제가 ‘길위에 김대중’ 전에 제작했던 다큐멘터리가 ‘노회찬6411’이라는 영화였고요. 노회찬 전 의원이 돌아가시고 3주기에 만든 영화인데. 노회찬 의원께서 당대표 수락연설을 할 때 6411번 버스에 타시는, 새벽에 타셔서 강남 출근해서 청소하는 노동자들 얘기를 하면서 버스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회에 존재하시지만 이름 없이 호명 없이 사는 분들에 대한 얘기라서 그런 뜻을 담은 영화를 좀 만들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제작사 이름을 그렇게 정했습니다.
▷노회찬 전 의원의 뜻이 담긴 버스 번호였군요.
▶그렇습니다. 버스 번호입니다.
▷지금도 말씀해 주셨지만 그동안 정치 인물에 집중을 많이 하신 것 같더라고요. 정치인 다큐멘터리 제작을 쭉 해오신 이유가 특별히 있을까요?
▶최초에 그런 목표를 가지고 했던 건 아니었던 것 같고요.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그분 돌아가시고 7주기쯤 되어 가지고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그걸 만들면서 그 이후에 제가 존경하시는 분들이 불의의 상황으로 돌아가시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 같아요. 최초에 목표했던 건 아니었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평소의 관심사, 그분들의 존경, 그분들의 삶을 알고 싶다는 것들이 어우러져서 이어져 온 것 같습니다.
▷‘길위에 김대중’은 어떻게 제작하시게 된 겁니까?
▶‘길위에 김대중’은 10년 전에 기획이 된 건데요. 김대중 추모사업회에 계시는 정현백 대표께서 최초에 기획을 하셔서 이희호 여사님께 허락을 받고 제작을 쭉 진행하다가 몇 번의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 현재 제작팀인 저희들에게 2019년에 제안을 주셔 가지고 3년 동안 작업을 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린 작품이네요.
▶그렇습니다. 기획부터 해 가지고 개봉 때까지 10년 정도 걸렸는데, 결과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쩌면 100주년 맞춰서 영화를 개봉하라는 대통령의 뜻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개봉한 ‘서울의 봄’이 역사가 스포일러였다. 이런 말이 돌기도 했는데. 이번 ‘길위에 김대중’ 작품은 팩트에 기반한 다큐멘터리입니다. 가공된 극영화는 아니어서 아마 제작자 입장에서 고민이 있으셨을 것 같기도 해요. 극성에 대한 고민 어떠셨습니까?
▶그렇죠. 그 부분은 감독님이 제일 많이 고민을 하셨을 것 같고요. 다큐멘터리 감독이지만 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첫 언론 공개 때 말씀을 하셨는데. 재미있다는 얘기는 그 영화의 상영 시간 내내 관객들이 몰입해서 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80년대 이후에는 영상자료나 이런 것들이 많이 있었는데 70년대, 60년대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었고. 특히 4번의 죽을 고비, 5번의 죽을 고비 중에서 핵심적인 부분에 대한 증언만 존재해서 그 부분을 꼭 전달하고 싶어서 고민을 하다가 재연을 해서 하는 것도 도입을 했었고요. 다큐멘터리 만드는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이 좀 아쉬운 것 같습니다. 분명히 상황이 있었다는 걸 다 알고 있고 그 안에서 굉장히 비중을 차지하는 사건들인데, 그런 부분이 자료가 없어서 못할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이고 어떻게 재연하고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같은 부분에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고민이 없진 않으셨다고 얘기를 해주셨는데, 민환기 감독님 얘기하신 것 보니까 신격화 하는 것처럼 비칠까봐 이 부분도 최대한 드라이하게 전달하려고 했다고 얘기를 하셨더라고요. 또 편향성 논란도 생각을 하신 것 같고. 시사회를 하셔서 평가도 많이 벌써 들으셨을 것 같아요. 어떤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저희가 후원해주신 분들 대상으로 1만 2천명 정도네요. 12월 18일부터 오늘까지 시사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서울, 부산, 광주, 목포 다 보셨는데 ‘일단은 몰입해서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런 말씀을 하셨고 ‘내가 김대중에 대해서 좀 알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 중의 아주 일부만 알았지 전혀 몰랐다’는 이야기도 많았다는 말씀도 많이 하시고. 이분이 좋은 정치가고 훌륭한 분인 건 아셨지만 이렇게 일관되게 민주주의에 대해서 목숨까지 내놓고 하셨구나라는 걸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고 하셨고. 대부분 상당히 많은 분들이, 대부분의 분들이 다들 우시더라고요. 제가 무대 인사를 하러 가는데요. 후원해주신 분들한테 인사를 하러 가서 처음에 무대 인사하고 끝나고 나서 다시 인사를 드리는데 그때 표정들이 많이 변해 있어요. 다들 상기되어 있고 눈이 빨개져 있고 여전히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울고 계신 분도 많고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들을 많이 해주십니다.
▷영상자료가 제가 듣기로는 20TB, 1700시간 분량. 편집전쟁이셨을 것 같아요.
▶네, 그런데 그 과정 자체가 굉장히 즐거운 과정이었고요. 새로운 자료를 받고 공부하는 느낌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조감독들이 보면서 ‘이런 분이셨구나’ 하면서 특정 자료에 울기도 하고 가슴 받고 감동 받고 이런 게 많았기 때문에.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고요. 어렵고 힘든 시간보다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새로운 부분을 만나는 과정이어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질문을 드리려고 했어요. 영화 제작에 참여한 20대 스태프가, 20대 스태프면 아무래도 김대중 전 대통령 시기를 직접 같이 겪지는 않아서 잘 모를 수도 있는데 편집하다가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떤 장면이 20대 스태프를 울렸을까 궁금하거든요. 이 부분을 저희가 영상 준비한 게 있어서 같이 듣고 보면서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1980년 4월) : 이 나라는 과거 32년 동안 비도덕 몰도덕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한 사태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유신헌법 7년은 통일과 정반대의 독재와 영구집권의, 민족탄압의 그와 같은 국민에 대한 배신으로 유신헌법을 악용했습니다. 자기들의 반대편은 억지로 빨갱이로 몰고 얼마나 많은 민주투사들이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자유를 사랑한 죄로 어찌 공산당으로 몰리냐 이거야. 여러분,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유신세력은 10.26 사태 후 독재의 장벽에 평화롭게 열린 그 돌파구를 다시 메우려고 온갖 계획을 지금 꾸미고 있습니다. 우리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유신세력들이 반역사적인 반민중적인 반민주적인 그와 같은 흉계를 우리는 국민의힘으로 단호히 분쇄해야 합니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내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분 편입니다. 내가 대단히 외람된 말을 하는 것 같지만 나는 국민을 위해서, 여러분을 위해서, 내가 목숨을 걸고 7년 동안 박 정권과 유신 하에서 싸웠습니다. 나는 유신의 어느 한 귀퉁이에도 발 들여놓은 일이 없습니다. 나는 내 주위에 여러분이 있는 이상, 내 주위에 나를 바라보고 나에게 기대를 거는 국민이 있는 이상 어떤 권력의 비호보다도 어떤 금력의 비호보다도, 나는 내 국민이 나를 지켜준 그 이상의 바램이 없고 재산이 없고 힘이 없다는 것을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유신 독재에 맞서서 아주 힘차게 연설하시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부분이 20대 스태프의 마음을 울린 거군요.
▶네, 이런 장면과 또 나머지 장면들도 있는데요. 특히 이 장면에서 감동을 받고 북받쳤던 것은 그 전에 60년대, 70년대 자료를 보면서 이분이 어떻게 목숨을 걸고 유신을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정착했는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7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서 연설하시는 장면이거든요. 80년대 초에 서울의 봄 때. 그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사자후를 토하시지만 그게 정말 가슴 속에서 오랫동안 묵었던 얘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공감이 됐던 것 같아요.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눈물일 수도 있겠지만 북받쳐 오르는 공감 같은 부분에서 충분히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 같고. 영화 속에서도 중간쯤 1시간쯤에 이 분량이 나오거든요. 대부분 이 부분부터 관객들이 앉아 계시다가 몸을 숙이면서 화면 앞에 몰입하시기 시작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저도 기대가 됩니다. 아직 영화를 못 봐 가지고. 이번 다큐에서 또 주목을 받는 부분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후에 공개를 하라고 해서 비서관이 보관했던 교도소 CCTV 영상이 들어갔다고 들었는데요. 이 영상이 어떻게 존재한 건가요?
▶대통령 되시고 아마 관계기관이죠. 정부 기관에 계셨던 어떤 분께서 일부의 자료를 가져와서 대통령한테 전달하셨대요. 그런데 당신이 교도소에 계실 때 혹은 정보부에서 취조 받을 때 하던 것들이 다 CCTV에 찍혀 있었던 거예요. 당시엔 몰랐다가 전달한 분의 뜻은 이걸 보시고 이렇게까지 했으니까 이에 대해서 정리와 체계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취지였을 것 같은데, 대통령께서 그 후로 다시 한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으니까. 당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이거는 이 정도에서 묻어두자고 판단하셨던 것 같고. 그래서 기록비서관에게 ‘이거는 내 사후에 공개하라’고 해서 지금까지 김대중평화센터에서 가지고 있다가 이번 영화를 통해서 공개된 겁니다.
▷정말 의미있는 영상인데, 최초로 공개될 영상 일부 조금만 한 번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길위에 김대중’ 중에서 : 이희호는 미국으로 가서 병 치료를 하라는 안기부장의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김대중을 설득했다. 김대중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희호는 다시 면회했지만 2시간이 넘도록 김대중은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김대중은 아내의 뜻을 받아들였다. 김대중이 미국행에 동의하자 안기부는 정치활동은 하지 않겠다는 건의서를 요구했다. 출국을 위해서 필요하며 정부가 원하는 건의서라고 했다. 김대중은 건의서를 쓸 수 없다고 했다. 전두환 정권이 건의서를 이용해서 그를 웃음거리로 만들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김대중은 안기부 간부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동지들을 석방시킬 수 있다는 아내의 간곡한 부탁에 미국 망명을 결정했다.]
짧은 영상인데도 여러 가지 장면이 지나가면서 여운이 아주 깊게 남는데요. 대표님은 많은 자료, 영상 다 보셨는데 어떤 게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으십니까?
▶너무 많아서 조심스럽긴 한데요. 생각해 보면 이렇게 해서 미국에 망명을 가시거든요. 82년도에 가셨으니까. 당시 대한민국 위상으로 봤을 때 아시아의 아주 이름 없는 나라였을 것이고, 88년도 서울 올림픽 이후에 대한민국이 조금씩 알려졌었잖아요. 대통령도 아니고 야당의 정치 지도자였는데 777일 동안 있으면서 150회 강연 그리고 주요한 언론 그리고 학자들 미팅을 하면서 ABC 방송이라고 당시에 가장 중요한 핫한 시간에 인터뷰를 하신 장면이 있어요. 한국의 안보상황과 민주주의 상황에 대해서 질문을 하는데 영어로 하시거든요. 감옥에서 혼자 독학하신 영어를 하시는데, 아주 정확하게 하면서 말씀 중간에 앵커가 자르고 들어와요. 그런데 ‘just a minute’ 하시면서 ‘내가 할 얘기 더 있다’ 아주 당당하고 대범한 자세로 끝까지 말씀을 다하세요. 그 장면이 굉장히 인상에 남습니다. 언제 어느 곳에 가시더라도 준비하셨던 것 같고. 정확하게 이 메시지를 전달해야 된다는 생각 속에서. 그 앵커는 당대 최고의 유명한 앵커였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밀리지 않으면서 하실 말 다 하신 장면이 ‘아, 이분이 이런 분이구나’라는 걸 절로 느끼게 하고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 장면을 얘기하십니다.
▷이번 영화가 1987년에서 행적이 끊깁니다. 2편을 혹시 예고하신 건지 염두에 두신 겁니까?
▶2편을 만들고 싶고요. 처음에는 1924년 출생부터 대통령 재임식까지 얘기를 다루자는 게 목표였는데. 그렇게 하니까 시간이 4시간 이상 나올 것 같더라고요. 1987년까지 다룬 게 2시간이었고.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그러면 나눠야겠다고 했을 때 어디에 나눌까 고민을 하고 토론한 끝에 1987년. 70년대, 80년대 정치의 장이 없다가 다시 돌아와서 정치의 장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출발을 하는 그런 데서 시작한다고 하면 충분히 한 영화로서 완성도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당연히 1987년도 이후부터 1997년도 대선 대통령까지 얘기도 하고 싶은 얘기가 많기 때문에 하고 싶고요. ‘길위에 김대중’이 많은 분들이 보시고 저희가 힘을 얻게 되면 2편도 만들고 싶고 또 많은 분들이 시사회에서도 보시고 싶다는 말씀을 많이 하셔서 저희도 하고 싶습니다.
▷자료를 갖고 계시니까 가능성이 있다는 것.
▶네, 네.
▷영화를 제작하시는 동안 정국이나 나라가 어수선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자취를 들여다보고 계셨기 때문에 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어떠셨습니까?
▶대통령님의 여러 가지 면모들을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많이 알게 됐었는데 정치 혹은 한 시민으로서 모습 속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공감을 느꼈던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되고, 다수의 결정 속에 승복하고, 소수에 대한 존중 같은 부분인데. 60년대 처음에 정치를 시작하셔서 영화 내내 평생 내내 그 부분을 구현하기 위해서 굉장히 오랫동안 노력하셨던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지방자치 얘기도 하시고, 여성에 대한 배려나 혜택에 대한 것도 말씀하셨지만 그런 부분들이 저한테 굉장히 다가왔었고요. 저희가 평범한 시민들 입장에서 보면, 주요한 결정을 하시는 분들이 약속하고 지키고 하는 것들이 기준이 되고 따라갈 수 있는 부분인데 대통령과 달리 최근에 그런 부분에서 생각할 거리가 많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위에 김대중’ 누구보다 먼저 한 줄 평을 남겨주신다면?
▶영화에 대한 평이라고 한다면, 대통령님에 대한 평이 아니라 영화에 대한 평이라고 한다면, 2시간 순식간에 가서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영화. 2시간 동안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순식간에 몰입해서 볼 수 있다. 더 궁금해지는데요.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드님이시자 정치인의 삶을 살고 있는 김홍걸 의원이 나오시거든요. 영화 준비하면서 만나셨을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말씀 전해주고 싶으세요.
▶영화에서도 어릴 때 모습이 나오기도 하고, 면회 와서 청소년 시기의 김홍걸 의원님 모습도 나오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또 편지에 쓰신 것 중에서 대목에 ‘그리운 홍걸아’ 이런 것도 있고 그렇거든요. 커다란 거인인 아버지를 모시면서 같이 산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건데 정치의 장에 들어와 계시니까 저희가 기대하는 것처럼 아버님처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정착과 구현을 위해서 애쓰시고 계시는데, 좀 더 애쓰셔서 그런 유지가 잘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