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발언)
"황상무 수석, 아직 안 그만뒀나"
"타의적 권력을 자의적 권력으로 오해한 듯"
"시민사회수석 직무에 대해 감이 없는 듯"
"도덕적, 인권적 감수성 대단히 미흡"
"저항하는 언론 누르고 싶어 얘기 꺼낸 듯"
"언론 통제 방식, 회유 통제 겁박"
"회칼 테러 언급하며 기자 겁박? 민주주의 후퇴"
"바로 옷 벗고 나가야 할 사안"
[앵커]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에게 언론인 테러 사건을 언급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황 수석이 사과문을 내긴 했지만 여당에서조차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40년간 기자 생활을 한 분은 이 발언을 어떻게 들었을까요. 변상욱 대기자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아직 그만두지 않았나 보죠? 계속 얘기가 되는 것 보니까?
▷현직에 계신 거니까요.
▶글쎄요. ‘내가 MBC 기자한테 따로 할 말이 있는데 기사를 함부로 쓰다가 회칼로 두 번 찔린 옛날에 사건이 있었어. 중앙경제신문에 모 기자가 그렇게 됐지’라고 얘기를 하면 그러면 어떻게 하란 얘기일까요? ‘너도 당하지 않게 조심해. 사전에’ 이런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죠. 기자협회에서는 성명을 내면서 “이건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건 협박으로밖에는 받아들일 수 없다. 황 수석은 사퇴하라” 기자협회에서는 성명이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 이걸 뭐라고 해야 될 지 참 난감한데, 무력이라는 게 있습니다. 힘으로 남을 제압할 수 있는 힘. 여기에는 자의적 무력과 타의적 무력으로 둘로 나뉩니다. 타의적 무력이라고 하는 건 뭐냐하면 군대, 경찰, 검찰, 행정권력 이런 게 타의적 권력이죠. 왜냐하면 자기 게 아닙니다. 국민이 뭔가를 의뢰해서 부탁해 갖고 위촉한 거죠. ‘이 무력을 가지고 이런이런 임무를 수행해 주시오’ 그래서 군대는 탱크도 갖고 전투기도 갖고 장갑차도 갖고 하는 거고. 경찰, 검찰도 남을 잡아다가 수사할 수 있는 권력이 있는 거고. 정치권력은 이것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거고. 그러면 자의적 권력은 뭐냐. 자기가 스스로 힘을 키워서 자기가 뒤집어엎든 어떻게 하든 자기가 먹고 사는 겁니다. 이건 조직폭력배라든가 흔히 우리가 깡패라고도 부릅니다만. 거기서는 어느 날 내가 두목이 되고 싶으면 뒤집어 엎으면 그만입니다. 왜냐하면 누가 이 힘을 나에게 뭘 부탁하면서 맡긴 힘이 아니고 내가 스스로 일궈낸 힘이니까 여기서 내가 밀리면 밀리는 거고 엎어서 올라가면 올라가는 거고. 그러니까 군인들이 무력으로 정권을 뒤집어 엎으면 군사 쿠데타, 군사 정변이라고 해서 나중에 역사적 심판을 받는 거고. 경찰이나 검찰도 언론의 감시를 받는 거고. 그런데 이 사람 같은 경우는 이미 이건 내 힘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스스로 여기까지 올라왔고 내가 쥐고 마음대로 흔들 수 있는 힘이라고 타의적 권력을 자의적 권력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말 실수 차원도 아니라고 보시는 거죠?
▶실수가 아닌 거죠. 왜냐하면 시민사회수석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사회의 갈등을 미리 파악해서 각계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그래서 각종 사안들을 행정 권력 차원에서 미리 잘 풀어갈 수 있도록 조성하는 작업인데.
▷오히려 책임이 있는 자리에 있는 공직자가 이런 발언을 했어요.
▶거기서 무력과 회칼을 언급하면서 언론 기자들을 겁박했다고 하는 것은 시민사회수석이 뭘 하는 건지 직위와 직무에 대해서 전혀 감이 없는 것이고. 또 하나, 국가 권력이 이미 나의 뒷배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거죠. 도덕적인 감수성이라든가 인권적 감수성 이게 대단히 미흡한 거죠. 그렇게 볼 수밖에 없고.
▷인식과 감수성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해주셨습니다.
▶또 하나, 맥락상에서 보면 지금 거의 모든 언론들을 정부는 이런저런 방법을 써서 제압하거나 통제하고 있는데 영 말을 안 듣는, 거의 마지막 남은 MBC 이렇게 지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MBC에다가 좌빨이라든가 여러 가지 명찰을 갖다 붙이면서 탄압하고 있는 상황에서 ‘MBC 기자 말이야’라고 지목하고 얘기했다는 것은 정말 저항하는 언론을 밟거나 누르고 싶어서 꺼내고 싶었던 얘기를 꺼낸 거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거죠.
그 다음 개인적인 얘기로 넘어가면 황상무 수석에 대해서. 1992년 입사에요. 1988년에 오홍근 부장 회칼 테러 사건 있을 때 언론사에 있지도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때 언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충격과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는지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거죠. 겪어 보지도 않았으니까. 1988년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겪어보지도 않은 사람이. 그땐 아마 학생이었겠죠. 대학원생이었을 것 같은 생각은 듭니다만. 언론계의 그때의 충격과 분노에 대해서 전혀 알지를 못하는 거고. 또 하나, 알려면 제대로 알든지. 공부를 해서.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당했다고 그러는데, 압구정 현대아파트 아닙니다. 정확하게는 청담동 삼익아파트입니다.
▷팩트도 틀렸어요.
▶팩트도 틀렸습니다. ‘경제신문 기자가 당했어’가 아닙니다. 중앙일보가 중앙경제신문이라는 신문사를 만들려고 준비하는데 중앙일보에서 파견 나갔어요. 칼에 찔린 것은 정확하게 8월 6일이고요. 신문사가 창간된 건 8월 8일입니다. 경제신문 기자가 아니고 사실 중앙신문 기자인 거죠. 중앙일보 기자. 오늘 편하게 얘기를 하자면,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이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문제는 삼성으로 옮겨가는 거죠. 왜냐하면 삼성이 그때 국가의 방위산업들을 수주를 받아 가지고 회사를 키우려고 엄청난 준비를 하고 있을 때거든요. 그런데 군하고 중앙일보 기자하고 꽝 부딪친 것 아닙니까 결국. 그 뒤로 나중에 회고록 같은 데 나옵니다만, 삼성의 사장단이 수도권과 주요 지역에 있는 군 장성들을 술집으로 모셔서 늦도록 술대접을 하면서 ‘중앙일보와의 이번에 충돌은 없던 걸로 생각해 주시고 잘 봐주십시오’ 이렇게 빌면서 계속 술을 마시고 다녔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되냐’고 삼성사장단에서 불만이 나왔다. 이런 얘기가 나중에 회고록에 나올 정도로. 결국은 언론이 어느 재벌이나 또는 어느 자본에 속해 있으면, 그 재벌이나 자본은 군이나 경찰이나 검찰이나 정치권력하고 부딪치는 것에 대해서 깜짝깜짝 놀라면서 수습하러 다닌단 말이죠. 수습하는 게 낫겠습니까? 아예 미리 찍어 누르고 그런 말이 안 나오게 하는 게 낫겠습니까?
▷1980년대 회칼 테러 사건 때 현직에 계셨던 거잖아요. 그때 현직에서 받으신 반응이나 충격은 어떠셨습니까?
▶그런데 이게 황당했던 것은 거의 예를 들면 1987년 6월 항쟁을 거쳐서 민주화로 갔는데, 민주화의 핵심은 무력으로 국민을 다스리는 게 아니라 문민사회로 가는 것 아닙니까. 문민사회의 제일 큰 쟁점 중의 하나가 군 정보기관이 민간인을 사찰하지 않는다는 것과 군인들이 다시는 정치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 이 2가지거든요. 그래서 일단 군 정보사는 나름대로 또는 안기부라고 하는 기관들은 다 정비가 되어 가는데, 군사 문화가 아직 우리 사회 곳곳에 너무 뿌리 깊어서 이게 뭔가 전반적인 문민화가 늦어지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있었거든요. 그걸 오홍근 중앙일보 기자가 지적을 했더니 바로 여기에 대해서 탄압이면 탄압, 아니면 폭행이면 폭행, 테러면 테러가 들어온 거죠.
▷그게 해결되지 않은 걸 보여주는 단적인 방증의 사건이기도 하네요.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언론을 탄압하는 방식 중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국가 개입 또 하나는 국가 흡수 2가지 방식입니다. 국가 개입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잡아다가 때리고 두들겨 팬 다음에 내보내거나, 고문한 다음에 내보내거나 이런 식으로. 아니면 언론사를 갖다 없애버리거나. 국가 흡수라고 하는 것은 제도상으로 국가가 언론을 통제할 수밖에 없도록 제도를 만드는 거죠. 그게 전두환식 방법이고, 데려다가 때리고 하는 국가 개입은 박정희식 방법이고 이렇게 나눠집니다만. 그런데 가다가 이제는 전두환 스타일의 국가 통치도 개선해서 문민화로 가는 참인데 박정희 스타일로 돌아간다고 하니까 얼마나 깜짝 놀랄 일입니까? 그러니까 아니 우리 사회가 민주화 되어 가지고 문민화로 가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지라고 했는데. 그것도 나중에 오홍근 부장의 진술을 보면 1안, 2안, 3안이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1안, 집으로 쳐들어가서 가족들을 전부 다 해치운다. 다만 언제까지 어떻게 해치운 건지는 얘기가 안 나옵니다만. 집으로 쳐 들어간다. 두 번째 퇴근길에 기다리고 있다가 오홍근 기자만 해치운다. 이런 것들을 미리 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1, 2, 3안 중에서 제일 마지막 제일 약한 걸 택했다는 겁니다 그나마. 오홍근 부장의 개인적인 어떤 원한만 딱 처리하고 만다고 하는 것.
그래서 제가 다시 한번 쭉 정리를 해 봤어요. 그러니까 방식 중에는 이제 3가지죠. 회유, 살살 꼬드겨서 당근으로 언론을 통제하는 방식. 그 다음에는 회유가 아니라 통제. 예를 들면 겪어보셔서 아시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든가 등등등. 방송통신위원회 이런 것들을 불편하게 계속 기관들을 움직여서 불편하게 만드는 것. 세 번째가 겁박입니다. 완전히 위협하는 것. 그런데 세 번째 겁박 수준에 해당되는 건데.
박정희 정권의 1960년대와 1970년대가 달라요. 60년대는 데려다가 때리는 겁니다. 아니면 칼로 찌르든가. 1965년 7월 한국일보 조 기자, 경향신문 권 기자, 부산일보 최 기자 피습. 65년 9월 동아일보 변 모 편집국장 대리 집 대문 폭파. 화약으로 폭파시킨 겁니다. 문을. 65년 동아일보 조 무슨 과장 납치 폭행. 하다가 더 이상 때리지 않습니다. 잡아다가 칼로 찌르거나 때리는 것을 이제 그만두고 엄청난 사건들이 잔뜩 많습니다만. 여기서부터 군사정권이 이제는 우리도 정상적인 궤도에 들어섰다. 군사정변도 쿠데타도 완전히 마무리가 됐고, 그 다음에 정치권에 우리가 진입했고, 정당도 우리 정당을 만들어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니까 찌르고 때리고 하는 건 더 이상 안 되고 기관을 가지고 아니면 법과 어떤 제도 속에서 통제해도 충분하겠다고 해서 그 다음부터는 달라지죠. 그 다음부터는 이제 임의동행식의 연행입니다. 수사기관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때리거나 아니면 조서를 꾸며가지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리하거나. 1971년 1월 서울신문 이 기자, 박 부장 등등. 1971년 1월에는 대한일보, 신아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동아일보 편집간부 등등 역시 연행. 71년 3월 동아일보 편집 간부 기자 5명 강제 연행 등등 엄청난 사건들이 많습니다. 그 다음에 1979년 8월 신민당사에서 취재 중이던 기자들 14명 집단 폭행 등등 해서 1970년부터 1979년까지 기자를 강제로 끌고 간 게 12건, 그래도 집에다가 연락은 해주고 끌고 간 게 33건, 두들겨 팬 것이 28건, 취재를 못하도록 방해한 것이 38건, 구속이 7건 등등. 이 사건의 대부분의 주체는 경찰과 군인입니다.
▷언론의 자유가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군요. 말씀해 주시는 역사를 들어보니까. 다들 무시무시한데요.
▶이게 박정희 정권 때입니다. 전두환 정권 때로 오면 없었냐. 그렇지 않습니다. 1982년 3월 한국일보 편집국장 강제연행, 82년 7월 조선일보 부장 강제연행, 83년 3월 조선일보 발행인 국장 부장 기자 강제연행, 84년 1월 한국일보 기자 연행, 84년 1월 한국일보 기자 또 연행, 85년 2월 동아일보 편집국장 정치부장 안기부에 강제 연행, 85년 7월 경향신문 편집국장 부장 정치부장 정치부 기자 강제연행. 국장이건 부장이건 별로 이렇게 직위에는 별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88년 8월에 ‘청산해야만 할 군사문화’라는 칼럼을 쓰니까 오홍근 기자를 칼로 두 방 찔렀다고 표현하지만, 무려 34cm가 찢겨 나가 가지고 수술을 했던 것이고요. 아파트 경비원이 ‘저 차가 왜 자꾸 저기서 왔다 갔다 하나?’ 궁금해 가지고 차량 번호를 적어놔서 나중에 그렇게 해서 쫓아가서 어떻게든 추적을 하다 보니까 나온 거죠. 그런데 이 사건에 관련된 모든 사람은요.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습니다. 일시적인 흥분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거라 책임을 질 사람이 별로 없다. 당사자들도 책임을 지는 듯 하다가 나중에 다 일찌감치 풀려났고요. 군으로 복귀하거나 공기업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니 30여 년이 지나서 이 사건이 다시 거론되고 있는 현실 어떻게 논평해 주시겠습니까?
▶글쎄 말이죠. 1안은 가족들을 해치운다. 2안은 죽여 버린다. 3안은 죽일 순 없으니 때리기만 하거나 찌르기만 한다. 어떻게 이런 계획을 언론인을 상대로 세울 수 있나 놀라야 되는데, 그걸 가지고 다시 후배 기자를 겁박하는 상황은 이건 민주주의 후퇴라고 밖에는, 그렇게 밖에는 볼 수 없는 거죠. 지난번에 잠깐 말씀드렸죠. 우리나라 민주주의 후퇴. 벨 모양으로 잘 올라가다가 뚝 떨어졌다. 뚝 떨어졌을 때 우리나라와 같이 망신을 당한, 민주주의가 후퇴한 나라가 아르메니아, 인도네시아, 니제르, 부르키나파소, 말리, 엘살바도르, 리비아, 아이티 이런 나라들인데. 황상무 수석의 이 발언이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후퇴했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거죠. 그런 다음에 대통령실은 ‘그걸 가지고 뭘 그러냐. 사퇴에 아직은 뜻은 없다’ 이렇게 아직도 버티고 있다는 건. 다음날 되면 바로 그냥 옷 벗고 나가야 되는 것 아닌가요?
▷사과로 책임질 사안은 아니다. 사퇴로 책임질 사안이라고 보시는 거죠?
▶그럼요. 이것은 지금 이종섭 호주대사 건이라든가 황상무 수석의 건은 이 언론이 흔히 우리가 ‘입틀막’이라고 그럽니다. 제대로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는 그 선이었는데, 입틀막에서 안 끝난다면 그 이상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의 권력은 국민이 우리에게 나름대로 넘겨주신, 위임해주신 권력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잘나고 스스로 힘이 세서 여기까지 왔다고 하는, 국민을 대하는 민주주의를 대하는 의식 수준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어서 여기서 오해를 풀지 않으면 정부가 또는 정권이 점점 더 힘들어집니다. 처리할 건 처리하고 잘못한 건 잘못했으니까 잘못했다고 한 다음에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 내부 교육도 좀 강화하고. 뭔가 좀 서로들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시도록 권유합니다.
▷저도 사실 매일 방송을 하면서 마이크 앞에 서고 있습니다만 여러 가지 생각이 들거든요. 언론인들의 인식도 다시 한번 좀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요. 기자이기 때문에 기자가 기자를 변호하거나 두둔해서 하는 말씀이 아니고. 기자가 제일 늦게 두들겨 맞습니다. 왜냐하면 기자는 모든 국민을 대표해서 권력을 만나서 취재해 갖고 국민들한테 알리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기자는 그냥 1명의 자연인으로서의 기자가 아니라 국민 전체에 대한 어떤 수탁 받은 위임자란 말이죠. 그러니까 제일 늦게 맞는데, 기자가 손쉽게 두들겨 맞는다는 얘기는 국민들은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두들겨 맞는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그게 하나의 척도죠. 그런 점에서 기자를 앞에 놓고 ‘회칼로 두 방’하면서 대통령실의 그냥 일반 비서관, 보좌관도 아닌 수석 비서관이 이렇게 얘기했다는 것은 정부로서는 우리가 얼마나 곪아터져 있나라고 하는 것을 자성할 기회가 되는 건데. 이 기회를 못 붙잡으면 더 위험해지는 거죠.
▷총선을 한 달도 안 남긴 시점에서 이런 일이 생겨서 더 생각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