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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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눈] 유가족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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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복음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노인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갔는데, 거기서 아기 예수님과 함께 있는 마리아를 만납니다. 오랜 세월 구세주를 기다려온 시메온은 아기 예수를 받아 안고 축복을 합니다. 그리고 시메온은 성령의 도움으로 아기 예수의 죽음을 미리 보았는지 훗날 마리아가 느낄 고통을 말합니다.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5)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이태원 특별법’에 재의 요구권을 행사했습니다.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법안은 다시 국회로 돌아갔습니다. 법안에 강력하게 반대를 해온 국민의힘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법안은 폐기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태원 참사 후 칼에 찔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유가족의 호소는 대통령 앞에서 멈추게 되었습니다.

참사 후 정부는 유가족에게 위로를 말했지만, 사실 정부의 대응은 유가족이 원하는 위로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참사 책임자는 사건을 회피하기 바빴으며 인사권자인 대통령은 책임자를 두둔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참사 이후 일선 공무원들에 대한 조사와 징계가 이어졌을 뿐 제대로 된 조사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당일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유가족과 피해자에게 국가는 없었습니다.

더욱이 거부권과 동시에 재정적 지원을 이야기한 것은 유가족과 피해자에게 모욕적입니다. 정부는 ‘피해자 지원 종합대책’을 이야기 했습니다. 사고의 원인도 모르는데 어떻게 보상한다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부는 피해지원으로 금전적 배상을 말합니다. 눈물이 마르지 않은 유가족에게 정부는 돈을 내밀었습니다. 아무리 유가족이 미워도 이건 예의가 아닙니다. 마치 합의금으로 사건을 서둘러 종결시키려는 검사나 변호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이 말은 정확히 10년 전 세월호 유가족을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 공동체에 남긴 메시지입니다. 이 말을 지금 다시금 꺼내보는 이유는 15년 전 세월호 참사의 모습과 이태원이 너무나 겹쳐 보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알고 싶은 부모들은 겨울 땅바닥에 엎드리며 기도합니다. 정부는 진실을 가리기에 바빴고, 유가족과 피해자에게는 보상을 말했습니다. 인터넷에는 시체팔이 운운하며 참사에 대해 모욕과 혐오의 말을 쏟아냈습니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기 위해 사제들과 수도자들은 유가족과 함께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이들의 고통은 왜 그대로인지, 착잡할 뿐입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정부는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을 포기했습니다. 어떤 참사가 일어나도 이런 식으로 유가족과 피해자를 대하겠다는 정부의 선언입니다. 국가는 어디 있었냐는 질문에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정부의 경고로 들립니다. 이번 거부권행사로 유가족을 포함한 시민들의 마음은 한 번 더 칼에 꿰찔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그랬던 것처럼 시민들은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키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유가족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입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피해자에게 하느님의 위로가 함께 하길 기도하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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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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