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주로 도심에 세워져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쓰이는 넓은 빈터. 특별한 것 없는 광장이지만 역사는 광장에서 굽이쳤습니다. 조선시대 지방에서 올라온 유생들이 임금님께 상소를 올리는 곳이 광장이었고 권위주의시절에는 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광장이었습니다. 군사 퍼레이드가 벌어지거나 월드컵의 응원함성이 울려 퍼진 곳도 광장이었습니다.
그래서 권력은 언제나 광장에 시민들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했고 광장에서 들리는 함성을 막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없는 벽이라도 만들어서 시민들이 광장에 모이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광장에 동상이나 화분과 같은 구조물을 가져다 놓아 광장의 의미를 축소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광장에 시민들이 제대로 모이지 못한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즉 광장에서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있는 자유는 우리 민주주의의 깊이가 어느 정도 인지 알려주는 온도계입니다.
“우리는 조직 폭력배가 아닙니다.” 노동절인 지난 5월 1일 강릉에서 노동자 양회동씨가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민주노총 간부였던 고 양회동씨는 정당한 노조 활동이 검사독재 정치의 재물이 되었다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동료 노동자가 분신하고 정부의 노조 탄압이 극에 달하자 노동자들은 광장으로 갔습니다. 최근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1박 2일 노숙집회를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에서 벌였습니다. 경찰 추산 2만 4천명이 참가한 집회에서 노동자들은 노조탄압 분쇄, 윤석열 정권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무엇이 두려웠던가. 노동자와 시민들이 광장에 모이자 정부는 광장에서의 집회와 시위를 막기 시작합니다. 민주노총의 노숙집회 후 정부와 여당은 집시법을 개정하기로 했습니다. 당정은 불법 전력이 있는 단체와 새벽시간에는 집회 시위를 제한하는 내용으로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에다 이번 달 19일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집회와 시위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백남기 사건으로 사라졌던 물대포까지 언급했습니다. 박물관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물대포가 부활한 것입니다. 경찰은 살수차를 구매할 계획이 없다고 하지만 물대포라는 단어가 입에 오르내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시민들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여기에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정부가 법 집행 포기로 불법 시위가 만연해 있다며 집회와 시위에 대한 ‘엄정한 대응’을 경찰에 지시했습니다. 이에 경찰은 6년만에 전국 기동대 121개 중대가 참여하는 훈련을 재개했습니다. 훈련 내용은 시위에 대한 강제해산과 검거입니다.
노동자의 분신, 물대포와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 그리고 집시법 개정까지, 느리지만 분명하게 진보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퇴보하는 느낌입니다. 특히 대통령은 자유를 말하지만 그 자유는 말할 자유가 아니라 듣지 않을 자유인지 모르겠습니다. 듣기 싫은 이야기는 불법이라는 틀에 가두고 철저히 틀어막겠다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오히려 대통령과 정부는 집회와 시위 제한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왜 노동자와 시민이 광장에 나와 목소리를 내는지 성찰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시민들을 모이지 않게 만든다고 해도 내야할 목소리가 있으면 기필코 시민들은 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광장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대통령과 물대포 그리고 광장>입니다. 그 무엇도 광장의 목소리를 막을 수 없음을 기억하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