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성경의 중요한 주제들 중 하나이다. 이집트 종살이로부터의 탈출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새로운 사회적 가능성에 대하여 깨닫게 하였다. 이스라엘은 억압과 착취에서 해방되고 약속의 땅을 선물로 받았는데, 이것은 해방된 백성으로서 다른 생활 방식, 즉 대안적 사회(alternative society)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집트로부터의 해방, 시나이 산에서의 율법 수여, 40년 동안의 광야 여정 이후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둔 요르단 강 건너편에 이른 상황에서 신명기는 특히 땅의 신학적 의미에 대하여 잘 설명한다. 우리는 여기서 땅의 의미를 생태 정의와 사회 정의의 맥락 안에서 선물, 유혹과 위협,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땅은 선물이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땅은 우선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이다. 이집트로부터의 해방이 그저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이듯이, 이스라엘에게 땅이 주어진 것은 하느님의 은혜로운 선물이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좋은 땅으로 데리고 가신다. 그곳은 물이 흐르는 시내와 샘이 있고, 골짜기와 산에서는 지하수가 솟아 나오는 땅이다. 또 밀과 보리와 포도주와 무화과와 석류가 나는 땅이며, 올리브 기름과 꿀이 나는 땅이다. 그곳은 너희가 모자람 없이 양식을 먹을 수 있고,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는 땅이며, 돌이 곧 쇠이고, 산에서는 구리를 캐낼 수 있는 땅이다. 너희는 배불리 먹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좋은 땅 때문에 그분을 찬미하게 될 것이다.”(신명 8,7-10)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그들의 해방자요 땅을 주신 분으로 인정하고 신뢰하기를 계속하는 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를 계속하는 한, 종살이로부터의 해방이 요구하는 대안적인 사회적 가능성(alternative social possibility)을 실현하기를 계속하는 한, 그들의 미래는 보장된다.
둘째, 땅은 유혹이고 위협이다. 땅은 이스라엘에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그들이 이집트에서 해방된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할 수가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을 건너 새로운 땅을 차지하기 전에 모세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명령하는 계명과 규정들과 법규들을 너희는 지켜야 한다. 너희가 이 법규들을 들어서 지키고 실천하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도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계약과 자애를 너희에게 지켜 주실 것이다… 또 너희에게 주시겠다고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 몸의 소생들과 너희 땅의 열매, 곧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 그리고 송아지와 새끼 양들에게도 복을 내리시어 불어나게 해 주실 것이다.”(신명 7,11-13)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이스라엘은 하느님과 그분의 길을 잊게 만드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이 유혹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노예로 만들었던 행위들을 받아들이게 하고 그 행위들을 승인하는 신들을 신뢰하게 한다. 즉 이스라엘이 그들의 계약, 역사, 토대를 잊고 포기하게 만드는 유혹이다.
그리고 땅은 하나의 위협이다. 땅을 선물로 받은 이스라엘은 권력과 부를 얻기 위해 사회를 조직화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그들의 정체성을 잊고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있었다. 즉 새로운 권력과 부를 위해 그들은 하느님과의 계약 뿐 아니라 채무자, 가난한 이, 종들을 향한 관심을 포기할 수 있었고 다른 신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셋째, 땅은 책임이다.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시나이 산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율법을 다시 살펴야 했다. 왜냐하면 율법은 그들의 대안적인 삶을 위해 필수적인 길잡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단지 하느님을 기쁘게 한다든지 지속적인 축복과 번영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해방된 백성으로서의 뿌리와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었고 모든 피조물이 충만한 생명을 누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 책임의 중심에 안식일(신명 5,12-15)과 안식년(신명 15,1-18)이 있는데, 그것은 쉼, 빚의 탕감, 가난한 이들을 위한 관심, 종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