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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 신부의 별별이야기] (56)규칙이 문제인가, 사람이 문제인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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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의 레지나는 우울감과 직장에서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상담을 청했다. 자신감이 없고 항상 주눅이 들어 있으며 대화가 부자연스러웠다. 상담 중에도 눈을 맞추기 어려워했고 머리를 숙인 채로 말을 띄엄띄엄 이어갔다. 몇 마디 말하다가도 문득 상대의 눈치를 살피면서 급하게 말을 얼버무렸다. 마치 자신의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를 항상 염두에 두는 듯이 보였다. 상대가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곧바로 입을 닫을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레지나는 대화 중에 말을 가로채거나 자신의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과감히 관계를 정리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정작 어떤 이유로 레지나가 자신을 멀리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상대가 계속 그 이유를 물어와도 레지나는 모르쇠로 일관했고, 주변에 친구 하나 없이 외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레지나는 자신의 심리상태를 알고 싶어 심리검사를 해보았다. 우울과 무기력이 심각한 주요우울장애 진단이 나와 약물을 처방받았다. 하지만 약을 먹은 이후 정신이 멍하고 졸음에 시달렸으며 업무를 하기 어려울 정도의 무기력을 체험했다. 결국, 임의로 복용을 중단하였다.

레지나는 약물 없이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기쁨과 감사의 기도를 통해 우울감을 해결하고 싶었다. 휴가를 내서 1주일 피정을 다녀오기도 했고, 매일 복음 묵상과 신심 기도문을 열심히 바치며 살았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도 특별한 마음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자 더 깊은 방황이 시작됐다. 아직 믿음과 기도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심리치료라도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레지나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했기에 생후 3개월부터 보모의 손에서 자랐다. 유년시절 경험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철저한 예절교육을 받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레지나의 마음속에 새겨진 가장 중요한 삶의 규범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요구하는 만큼 누군가는 그것을 들어주기 위해 피해를 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레지나는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는 말씀대로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타인을 최대한 높이는 삶이야말로 하느님이 원하시는 삶이라 생각했다.

가족심리치료학자 버지니아 사티어(Virginia Satir)는 인간은 누구나 원가족 안에서 형성된 ‘가족규칙’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고 했다. 레지나의 무의식 안에도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가족규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가족규칙은 사회적으로 장려해야 할 규범이지만 항상 옳은 규칙이 될 수 없다. 어린 시절 무조건 수용되었던 가족규칙은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정되고 재조정돼야 한다. 쉽게 말해서 아이의 발달단계에 따라 도덕의식이나 윤리의식 역시 발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규칙은 합리적이고 융통성이 있으며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적용될 때 온전한 인간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중요한 교육적 자산이 된다. 하지만 가족규칙이 비합리적이고 예외 없이 적용되는 경우엔 한 사람의 자존감을 파괴하고 그 인생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강력한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남에게 피해를 주어선 안 된다”는 가족규칙이 레지나의 우울과 대인관계 문제에 영향을 미쳤을까? 만일 그렇다면 이 가족규칙은 어떻게 수정 보완돼야 했던 것일까? 만일 규칙에 문제가 없다면 레지나는 도대체 어떻게 이 규칙을 받아들였기에 이런 심리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일까? 레지나를 돕기 위해서는 이처럼 가족규칙에 대한 분석이 필요해 보였다. <계속>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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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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