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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 신부의 별별이야기](57)규칙이 문제인가, 사람이 문제인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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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나가 경험한 우울과 대인관계의 문제는 어린 시절 원가족으로부터 생겨난 가족규칙, 즉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가정에서 이런 교육을 받고 성장한 아이들은 원만한 사회성을 유지하면서 타인과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삶을 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레지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살아온 행동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 대인관계가 좋아진 것도 아니었다. 대인기피증이 더 강해졌을 뿐 자신과 타인과의 모든 관계에 문제가 발생했다. 여기서 레지나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아무리 좋은 가족규칙도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가르치는 신념과 가치관은 아이의 심리적 기질과 특성을 고려하면서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수정, 보완되어야만 한다.

레지나의 가족규칙이 어떻게 조정됐어야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가족규칙의 또 다른 피해자인 요셉의 이야기를 풀어본다. 요셉은 극심한 죄의식과 대인기피증으로 50년째 은둔형 외톨이로 살고 있다. 요셉이 초등학교 3학년 때 1학년이었던 동생 안드레아가 동네 아이 세 명에게 폭행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요셉은 동생을 구하기 위해 세 명의 아이들에게 달려들었다. 서로 뒤엉겨 싸움이 벌어졌고 모두 상처를 입게 되었다.

싸움의 결과는 요셉의 부모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요셉과 싸움을 했던 아이 중에는 정치적으로 권력을 가진 집안의 아들이 포함돼 있었다. 사회적으로 약자로 살아온 요셉의 부모는 자식이 연루된 싸움으로 인해 수차례 경찰서에 불려다녔고 거액의 합의금을 내야 했다.

요셉과 안드레아는 너무도 억울했다. 요셉은 동생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싸움에 뛰어들었고, 이 과정에서 세 명의 아이들뿐 아니라 동생과 자신도 큰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싸움의 원인이나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덧 요셉의 부모는 이 사건의 가해자 부모로서 온전한 책임과 배상을 해야 했다.

요셉은 이 사건 이후 “싸우면 안 된다”는 가족규칙을 마음속 깊이 새겨 넣었다. 이 규칙은 부모가 직접 정해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친구들과 싸우다 보면 그럴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아이들을 더 위로해주고 돌봐줬다. 하지만 요셉은 부모가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스스로 이런 규칙을 만들어 내면 깊이 간직했다.

이 사건 이후 요셉은 친구들과 싸움이 발생할까 늘 두려운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 혹여나 친구들과 갈등이 발생하게 되면 무조건 친구들에게 사과하고 양보했다. 요셉은 어떤 경우에라도 가해자가 되기보다는 피해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런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요셉의 태도는 친구들의 폭력을 가라앉히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더 괴롭히도록 만드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 싸우지도 못하고 줄곧 맞기만 하는 요셉을 친구들은 더 쉽게 괴롭힐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이런 현상은 계속되었다. 사람들과의 갈등이 발생할 때 싸우지 않기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면 오히려 사람들은 그런 자신을 경멸하고 이용했다. 요셉은 싸우지 않고 사람들과 잘 지내는 방법이 도대체 무엇인지 늘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없기에 결국 사람을 만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요셉이 스스로 자신을 가두는 삶을 선택하게 된 이유다.

레지나와 요셉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들의 심리적 문제는 어린 시절의 가족규칙이 이들이 성장하면서 수정되고 보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레지나와 요셉의 이야기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계속>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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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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