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2021년도 1월을 지나 2월이 되었습니다. 매해 1, 2월이 되면 이스라엘을 찾는 한국 순례단이 눈에 띄게 늘어납니다. 학부모들이 자녀의 겨울 방학을 이용해 시간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을 찾는 순례단의 70 이상은 개신교인입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성지를 방문하는 가톨릭 신자들과 달리 ‘오직 말씀만으로’ 신앙을 영위하는 개신교 신자들에게는 성경에 따른 이스라엘과 터키, 그리스만이 진정한 성지이기 때문입니다.
순례 중 가톨릭 신자들과 개신교 순례단은 확연히 구분됩니다. 단순히 성당과 경당을 지날 때마다 표하는 경의의 태도가 아니더라도, 둘을 한눈에 구분할 수 있는 지표가 있습니다. 바로 연령대입니다. 젊은이들이 많이 보이면 틀림없이 개신교 순례단입니다. 가톨릭 순례단의 경우 40대 후반은 이미 젊은 축에 속하며,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자매들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몇 년 전 이맘때쯤이었습니다. 수능을 치른 후 어머니와 함께 순례를 떠난 학생이 있었습니다. 아직 결과를 몰라 몹시 초조하고 불안할 텐데도, 그 학생은 공항에서부터 아주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손뼉을 치며 해맑게 웃기도 하고 낯선 공항 수속에 애먹는 주위 어른들에게 달려가 먼저 도움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순례 초반에 그 학생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학생의 아버님께서는 고3 수험 생활 중에도 매주일 미사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답니다. 미사에 참여하는 그 짧은 시간 때문에 성적이 떨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고작 그 정도로 정말 성적이 떨어진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요. 대신 수능이 끝나면 이스라엘 순례를 보내주겠다고 하셨고 약속을 지키신 것이었습니다.
그 짧은 이야기가 저에게 생각거리를 던졌습니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저는 주일학교에 가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오로지 주일만 바라보며 나머지 엿새를 공부할 정도였습니다. 저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그랬었지요. 또래는 물론 선후배들과 형제처럼 지내며 함께 놀고 또 학교 공부를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입니다. 성당에 학생이 없습니다. 고등학생이 미사에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이미 중학교 3학년이 되면 성당에 나오지 않는다는 신부님들의 하소연을 자주 듣습니다. 주일학교는 와해되었고, 주일학교를 이끌던 대학생들이 사라진 자리를 중장년 자매들이 다시 채워야 하는 경우도 너무나 많습니다.
대한민국 학생들에게 입시만큼 다급한 일이 또 있을 리 없습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공부 아닌 신앙 활동에 시간을 쓰는 것을 드러내놓고 싫어합니다. 수능 전까지는 공부만 열심히 하고,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 성당을 다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말대로 열심히 공부만 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아이들이 나중에 신앙 활동을 열심히 하게 될까요? 그럴 리가 없지요. 그 모습을 보고 부모들은 그제야 왜 성당에 나가지 않느냐며 다시 질책합니다. 세상에 하느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자녀들의 귀에는 다시는 와 닿지 않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지요.
제일 중요한 것은 언제나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분명 신앙의 중요함을 모른다는 신자는 없는데, 세상의 급한 일들에 신앙생활이 늘 밀려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살다 보면 급한 일은 매일 같이 생깁니다. 반면 중요한 일은 갑자기 생기지 않고 그냥 거기에 조용히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하루 이틀, 몇 달, 몇 년까지도 급한 일을 우선한 다음 ‘시간이 나면’ 다시 찾겠다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겠지요.
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을 틈타 이러한 생각과 반성을 순례단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날 밤 예리코에서 하룻밤 묵어가기 위해 호텔에 도착한 직후 어머님께서 저를 잠시 부르셨습니다. 무언가 결심하신 듯 편안한 표정이셨습니다.
“원래는 순례 중에 결과를 보지 않으려고 했어요. 혹시나 떨어지면 마음이 상할 수도 있고 순례를 괜히 망치게 될까 봐요. 그런데 딸과 얘기하다가 마음을 바꾸었어요.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네요. 부족했다면 다시 더 열심히 기도하고 공부해보라는 계기로 삼겠다고요. 결과를 확인하려면 컴퓨터가 필요한데, 혹시 노트북 좀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다음 날 저녁 예루살렘에 도착한 우리 순례단은 기쁜 마음으로 학생을 축하하며 포도주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 학생이 열심히 모아둔 용돈으로 구입한 포도주를 말입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