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렸을 적에는 상본이 아주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이나 성모님, 성인의 얼굴이 그려진 상본은 성경 속 글귀나 성당 벽의 그림들과는 또 다른 감동을 주었고, 신앙생활의 새로운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상본 뒤에는 주로 기도문이 적혀 있었는데, 외국에서 직접 들여온 것들은 물론 그 나라의 언어로 쓰여 있었기 때문에 어린 마음에 작은 허영심을 갖게 하기도 했지요. 부모님께서는 상본이 헤지지 않도록 비닐로 잘 감싸서 책갈피 대신 쓰도록 하셨고, 한글로 적힌 기도문을 하루에 한 번씩 암송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가지고 있는 상본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나무로 조각된 십자가를 사진으로 찍은 상본이었고, 뒤편에는 스페인어 기도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이 환하게 웃고 계셨던 것입니다. 고통받는 예수님의 형상에 익숙해져 있던 저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잊지 못해 그 상본을 직접 찾으러 명동대성당에 나간 적도 있었지만 결국 구할 수 없었지요. 이후 시간이 흐르고 흘러, 웃는 예수님은 저의 기억 속에서 멀어졌습니다.
바스크 지방은 피레네 산맥을 중심으로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부에 걸쳐 자리하고 있으며, 이베리아 반도(유럽 서남쪽 반도를 이르는 말로 지금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다)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이지만 외세의 오랜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지금도 약 300만 명의 바스크인들은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며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민족적 자부심이 강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일례로 빌바오(바스크 지방의 중심도시) FC는 바스크인이거나 바스크 지방의 유소년 클럽을 거치지 않은 선수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와 더불어 스페인 축구 리그가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2부 리그로 강등된 적 없는 강팀이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바스크 지방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두 사람을 꼽는다면 아마도 이냐시오 로욜라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일 것입니다. 예수회 창설의 주역이신 두 분은 동시대에 바스크의 귀족으로 태어나셨는데, 하비에르 성인은 인도와 일본 등 아시아에서 선교 활동을 하신 영향으로 우리에게는 조금 더 친숙한 이름입니다. 바스크의 ‘예사’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하비에르 성인은 당대 최고의 대학인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수학하시고 사제품을 받으신 후 이탈리아에서 활동하시다가, 교황님께서 예수회에 내리신 선교의 사명을 받으시고 아시아로 떠나 인도와 일본에서 수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하비에르 가문의 성(城)은 박물관으로 조성되어 당대의 역사적 사료들과 성인의 일생에 관한 자료들로 가득합니다. 집 안의 중심에는 당시의 여느 귀족 집처럼 가족들을 위한 소성당이 마련되어 있는데, 들어갈 수는 없고 입구에서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만 가능합니다.
소성당이라는 공간에 특히 관심이 많은 저는 예사를 처음 순례하던 때에도 가장 먼저 창살로 가로막힌 소성당 입구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충격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며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상본, 십자가에 매달리신 채 웃고 계신 ‘웃는 예수님’을 입구 맞은 편 제대 위에서 수십 년 만에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는 상본이 아니라 제 눈으로 직접 말이지요.
하비에르 성인께서는 인도와 일본에서 선교 활동을 하신 후 아시아 전체의 복음 전파를 위해 중국 입국을 계획하셨으나,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열병으로 선종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신 전교의 수호성인 하비에르 성인은 이미 생전에도 ‘성인’으로 불리셨다고 합니다.
하비에르 신부님이 일평생 가지셨던 신앙과 사랑은 어쩌면 이 웃고 계신 예수님의 사랑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분께서도 ‘웃는 예수님’처럼 웃으며 떠나셨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분의 여정은 비록 길지 못했지만, 그분이 바다 건너 멀고 먼 땅에 뿌린 신앙의 씨앗은 결코 죽지 않고 자라나 수많은 이들에게 닿았으니까요. 성인께서 나고 자라며 매일 같이 보았을 예수님의 얼굴, 죽음의 고통조차 달게 받으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웃음을 떠올리며 저는 그날 저녁 숙소에서 제 손으로 직접 찍은 십자가 사진을 오래오래 들여다보았습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