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3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15쌍 부부가 마치 한 가족처럼

[미카엘의 순례일기] (32)양보와 배려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성지순례단이 체코의 쿠트나호라 야고보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순례 인솔자로서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여러 기쁨을 만나게 됩니다. 그중 하나는 함께하는 순례자 중 꼭 닮고 싶은 분들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순례자 대부분은 저보다 세상을 좀 더 오래 살아오신 분이다 보니 훗날 언젠가 저런 삶을 살 수 있기만을 바라게 되는 경우를 접하게 되고는 하지요.

오랫동안 일을 하다 보니, 함께 했던 여정이 여러 번 된 모임이 생겨났습니다. 우연히 그렇게 된 분도 있고, 일부러 시간을 맞춰 저와 함께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중에 부부로만 이루어진 모임이 있습니다. 서른 명, 15쌍의 부부로 이루어진 순례단입니다. 이 순례단은 꼭 2년에 한 번씩 순례를 떠납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올해에도 어김없이 순례를 함께했을 것입니다. 한 본당에서 신앙생활을 같이하며 만나게 된 이들은 직업도 다르고, 나이도 서로 다르고 형편도 조금씩 다르지만, 우연히 함께했던 십수 년 전의 순례를 계기로 2년에 한 번씩 같이 순례를 함께하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사실 이런 약속을 한 사람들은 이전에도 많이 봐왔지만, 이분들처럼 오랫동안 그 약속을 지켜나가는 팀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함께 한 15년간 단 한 번,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형제님 한 분이 참여하지 못하셨던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모두 함께였습니다. 절반이 넘는 분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지만, 1년에 4번 만나는 모임과 2년마다 함께하는 순례는 절대로 놓치지 않습니다. 물론 그 모임이 전부는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이나 축복받아야 할 일들을 언제나 함께 합니다. 같이 웃어주고 같이 울어주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이웃이죠.

“나는 이탈리아 안 갔지만, 아오스딩은 따로 가봤잖아? 그냥 동유럽으로 가면 어때?”

“요셉 형님은 이탈리아 가보고 싶어 하셨잖아요? 저는 또 가도 좋으니 이탈리아로 해요.”

“나는 동유럽으로 가보고 싶었는데, 자매들 몇 명이 여행으로 갔다 왔다더라고. 자매들 안 가본 장소로 가자고.”

“저는 과달루페를 가보고 싶은데, 지난번에 형수님께서 허리를 다치셨잖아요? 비행기 길게 타시면 힘들 것 같아요. 이번엔 그냥 딴 곳으로 가죠.”

한동안 시끌벅적하다가 그해 회장직을 맡은 형제님께서 의견을 모아 저에게 전달하셨습니다.

“미카엘씨가 계절에 맞는 제일 좋은 곳을 골라줘요. 본당 신부님은 시간이 안 되신다니까, 지도 신부님도 알아서 정해주시고…. 저희는 그래도 따를 테니 말이에요. 함께 하는 게 좋은 거지 뭐!”

순례를 함께하면서 30명으로 이루어진 15명의 부부가 아니라 그저 한 쌍의 부부와 함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햇볕이 좋네. 창가에 앉으세요.”

“여보! 비켜봐요. 형님 부부 사진 찍는데 어슬렁거리지 말고.”

“이 과자 맛있네. 유스티나씨가 과자 좋아하잖아? 어디 계신가?”

“마리아씨 부부 짐이 많더라. 당신이 얼른 가서 짐 좀 들고 내려와 줘요.”

건네는 말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위한다는 것을 금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꼭 그렇게 살고 싶다는 저의 부러움 섞인 바람을 말씀드리자, 크게 웃음 지으신 형제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처음부터 서로 사랑하고 좋아하게 된 건 아니에요. 2년에 한 번씩 같이 순례하기로 하고, 그 약속을 지키려고 했죠.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려고 하다 보니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저 친구가 안 되는 시간을 내가 고집하면 약속이 깨지니까 말이죠. 그러다 보니 내가 시간을 내기 어려운 기간은 또 누군가가 피해 주더라고요. 한 가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죠. 순례뿐 아니라 나머지 그 친구의 삶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까, 그 친구를 사랑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 중의 한 명이 더는 순례를 할 수 없게 되면 아마 끝날 거예요. 그래서 나이 많은 내가 제일 건강해야 하지요.”

그분들에겐 사회적인 지위나 재산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되지 않고, 서로의 다름이 부족함을 채워줍니다. 그분들을 보고 있노라면, 서로를 사랑한다는 어렵고도 힘든 그 일은 믿기 힘들만치 간단해 보이기도 합니다. 바로 내가 먼저 양보하는 것이지요.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1요한 2,10)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1-08-1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10. 23

마태 5장 5절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