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공동체에 막둥이 수녀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몇 년 전 갑작스럽게 몸이 안 좋아져서 올해부터 이곳 공동체로 와서 함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이제 일 년도 안 되었는데 건강이 잘 회복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수녀님을 보면서 많은 분이 말씀하신다. 자연환경 안에서 여유롭게 지내니 건강이 좋아질 것이라고. 물론 자연환경이 선물해주는 이 모든 것이 수녀님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환경 안에서 사는 것은 여유롭지만은 않다.
우리 막둥이 수녀님은 1년 차 초보 농부이면서 밭 구석구석을 다니며, 손길을 아니 둔 곳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하다. 그러니 농작물을 거둬도 썩어 버려지지 않도록 부지런히 저장해둔다. ‘이런 걸 어디서 배웠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을 쓰고, 손길을 담아낸다. 어느새 농부의 마음이 되어 자기 길을 가고 있다.
수녀님과 함께 일을 하다 보면, 그저 엄마 웃음을 가지게 된다. 풀을 매다가도, 낫질을 하다가도 순간순간을 감탄하여 다른 사람들이 함께 찬미 드리도록 한다. “어머, 개구리 좀 보세요. 넌 왜 여기 나와 있어. 아직도 땅속에 안 들어간 거야?” 이렇게 생명과 대화하는 것을 보면, 그 어떤 과장 없이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야말로 ‘관상’하는 기도처럼 다가온다. 이렇게 생명과 함께하니 우리 손에 거둬지는 곡식에도 정성을 다하려고 마음을 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곁에 있는 수녀님들에게 항상 해맑은 미소로 “네, 수녀님” 하며 존중감을 보여준다. 그러니 수녀님이 여기서 건강을 회복했다기보다 이런 수녀님에게서 자연도 힘을 받고, 우리 공동체도 더 힘을 받고 있다.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지혜 13,5)는 말처럼, 우리 막둥이 수녀님은 모든 피조물 속에서 하느님을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주는 그 일을 매일 새롭게 하고 있다. 그런 수녀님의 감탄과 찬미가 그저 고상한 척 뒷짐 지고 하늘만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여린 손끝이 어느새 엄마 손처럼 갈라지고, 새까맣게 곡식 물든 손톱이 맑아질 새 없이 바쁜 중에도 나오는 감탄이니 곁에 있는 이들이 이 감탄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사실 수녀님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 공동체 수녀님들끼리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물을 보내주셨어요.”
우리는 수녀님을 통해서 우리를 둘러싼 것들 안에 계신 하느님을 알아보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고 마음을 두는 것을 배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말씀하시듯 “그분의 현존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고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그냥 수동적인 자세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발견하기 위해서는 찾는 마음이 필요하다. 생명 사이에서 이것을 발견하는 자세가 우리가 회복해 가야 할 감수성이다.
참 왕이신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실 때에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가장 힘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당신의 다스리심은 오롯이 ‘섬김’이라는 것을 보여주셨다. 섬기는 왕이신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그분처럼 섬기는 백성으로 살기를 원한다. 이 섬김은 비굴한 종의 모습이 아니며,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섬기는 모습도 아니다. 정말 기꺼이 돌보고, 마음을 쏟고, 감탄하고, 경청하고, 사랑하고, 봉사하는 ‘섬김’이다. 우리 막둥이 수녀님이 조용히 순간순간 살아가는 그 자세가 바로 우리 주님의 ‘섬김’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