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인심방(活人心方)」은 원래 중국 명나라 때 도가(道家)인 주권(朱權)이 지은 책이지만, 퇴계 이황이 자신의 의학지식과 철학사상을 담아 다시 기록한 양생서이다. 이 책에서 퇴계 선생은 병이 나야만 치료를 하는 서양의학적 접근을 하의(下醫)로 규정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의술, 즉 상의(上醫)는 마음을 다스려 병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영혼이 병들어 치유가 필요한 상황이 되기 이전에 미리 마음공부를 통해 영혼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지혜롭다 할 것이다.
퇴계 선생은 자신과 이웃이 서로 화합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유지하기 위해 중화탕(中和湯)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중화는 중용(中庸)에서 강조한 의미로서 희로애락과 극단적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중화탕은 30가지의 마음의 자세를 잘 섞어 만든 마음의 약이라는 뜻이다. 이 마음 건강 처방들을 비슷한 내용끼리 짝을 지어 10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거짓된 마음을 버리고 진실해야 하며, 양심을 속이지 말고 정직해야 한다. ②매일 선행과 사랑을 실천하되 남모르게 도와주고, 항상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③시기와 질투를 멀리하고, 잔꾀를 부리는 교활하고 약삭빠른 삶을 버려야 한다. ④자연의 질서에 순응하고 하느님이 주신 생명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인간의 본분을 깨달아야 한다. ⑤탐욕을 버리고 마음을 가볍게 하며, 근검절약을 실천하면서도 항상 만족하고 감사해야 한다. ⑥자신에게는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유지하고, 타인에게는 관용과 연민의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⑦근검절약을 실천하되 검소하게 살면서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을 실천한다. ⑧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어떤 생명도 해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⑨매사에 화가 나거나 분노의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 ⑩때가 되면 미련없이 물러남으로써 번뇌를 쉬고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율법의 핵심은 바로 ‘사랑’이다. 이 사랑은 실제로 건강한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진실한 사랑을 실천하기 어렵다. 퇴계 선생은 자신의 마음 건강을 위한 여러 방법을 소개하면서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현대판 실천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퇴계 선생의 중화탕의 내용 중 특히 재물에 대한 부분에 더 초점을 두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상담하다 보면 대부분 정신적 건강의 취약성이 바로 이 재물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돈과 재물에 마음이 빼앗겨 신체적이며 영적인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음을 실제로 느낄 수 있다.
흙수저로 태어나 30대에 집을 마련할 수 없으니 결혼을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청년들, 아이를 기르기 위해 양육과 교육비로 최소 2억 원이 필요한데 그 돈이 없으니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 신혼부부들, 부부가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돈만 있으면 관계는 다시 회복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왔다. 이들은 실제로 경제적 안정이 심신의 안정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세대에게는 재물과 하느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도 현실감 없게 다가오고 있다. 이들에게 “집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가정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약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건강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식의 섣부른 조언을 해서는 꼰대라는 소리밖에 듣지 못한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돈은 실제로 ‘생존’의 의미를 넘어 삶의 가치와 의미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마음과 영혼의 돌봄을 위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재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계속>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