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한 스님들이 절에 들어가시면 먼저 행자 생활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절에서 가장 미천해 보이는 일을 하면서 마음수련도 함께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수녀원도 비슷하다. 입회 전 밖에서야 손에 구정물 대지 않던 아가씨들이었겠지만 수녀원에서는 그 일부터 시작한다. 수녀원에 오자마자 청원기 때부터 하느님을 알고, 기도 또한 쉽게 깨우칠 것 같지만 그렇게 쉽다면 수행의 맛은 참 맛을 내지 못할 것이다.
몸뻬를 입고 앞치마를 두르고서 큰 쓰레기통을 닦는데, 밥그릇 닦듯 정성을 다하고 비린내에 역한 코를 열고서 오륙십 마리들이 생선 한 궤짝을 다 정리하기도 한다. 이것을 돈의 가치에 견주어 보면 아주 작은 노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참된 수행의 향기는 그 안에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수도생활에 적응되어가고 있었고, 단순한 그 행위들 속에 나의 침묵이 기도로 닦아져 가고 있었다.
나는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감성이 풍부한 편이다. 그래서 곤혹스러운 날도 있었지만, 그래서 자유로운 삶을 열어 가는 데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수녀회 입회 후 한 달가량 되었을 때였다. 지금은 무슨 사건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수도생활에 대한 확신 없이 흔들리는 감정을, 안 그래도 튀어나온 입으로 골난 입술을 만들어 숨김없이 드러냈던 어느 날이었다. 공동기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지도 수녀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는 갑자기 꽃을 꺾어 오라고 하셨다. 영문을 모르던 나는 놀란 눈을 하고 정말 꽃을 꺾으러 솔밭으로 나갔다.
정원에는 기도방 창문을 통해 수녀님들의 천사 같은 기도 소리가 울려 나오고 있었다. 나는 솔밭 위를 조용히 걸었고, 그때 아주 조용한 바람이 불어왔다. 솔잎을 밟으며 나는 계속 걸었다. 나는 내 마음 같지 않게 너무나 평정한 바람에 따지듯이 물었다.
“넌 누구니?”
“넌 뭐야?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이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 묻는 소리였다. 바람은 참으로 시원하게 불고 있었고, 나는 그렇게 바람을 맞고 있다가 철퍼덕 주저앉아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넌, 도대체 누구냐고!”
바람만이 솔 향을 몰아 불어주고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한참을 울고 난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른 솔잎 사이로 키 작은 구절초들이 참으로 예쁘게 꽃 피어있었다. 나는 꽃 몇 송이를 꺾어 들고 들어와 지도 수녀님께로 갔다. 수녀님께서는 나를 보시며 “꽃은 꺾었어요?”라고 물으셨다. 나는 대답 못 하고 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또 한참을 섧게 울다가 수녀님께 말씀드렸다. “저요, 살아볼 거예요. 하느님이 왜 저를 부르셨는지 알아볼 거예요.” 수녀님께서는 나를 어머니처럼 안아주시며 말씀하셨다. “그래,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주님께서는 철부지인 나를 위해 기다려주시고, 어쩌면 포도밭에 있는 무화과나무와 같은 나에게 마음을 써주셨다. 수도 삶으로 내 감정을 저울질할 때, 한마디 말없이 다만 정원으로 내보내신 수녀님의 방법은 포도 재배인이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위해 한 해만 더 돌보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모습처럼 다가왔다.
이후로 나는 길에 대해 묻게 될 때, 내가 걷고 있는 여정의 시작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것임을 기억한다. 주님께서는 아주 섬세한 방법으로 내게 필요한 양분을 주신다. 때로는 어려움 앞에서 ‘왜 나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어려움 자체도 포도밭에서 자라는 무화과나무에 필요한 양분임을 생각하면 살리시려는 그분께 좋은 열매를 맺어드리기 위해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다. 오늘 주님께서 바라시는 회개는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고 돌아서는 것이다.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