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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진의 토닥토닥](23)너무 살고 싶어 자해를 해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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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예진 회장



이번 주와 다음 주에는 자해하는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 사례를 다루겠습니다. 먼저 자녀의 행동부터 이해해 보도록 할까요?

“우리 애는 피어싱이 유행이라고 하고 다녀요. 귀랑 입술에도 여섯 개나 했어요. 근데 또 문신을 한대요. 그럼 나가라고, 용돈도 끊어버릴 거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안 하더라고요. 저희 부부는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과 교류가 있어요. 그러니 저희 애를 보면서 다를 분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그랬더니 아들이 자해도 하고 자살도 시도해서 이제 야단 안 치고 웬만하면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속이 많이 상합니다.”

청소년들의 자해와 자살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청소년 자살은 10만 명당 23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입니다.(2020, OECD Health data) 자해는 ‘자신의 신체 조직에 상해를 입히는 행위’가 있는 의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자해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자해를 경험한 68가 자살을 시도한다고 합니다.

자해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피부 찌르기, 고통을 가하는 문신하기, 바늘이나 핀 등으로 찌르거나 피나도록 긁기, 깨물기, 머리카락 뽑기, 날카롭거나 독성 있는 물질 삼키기 등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사이버 자해라고 해서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야, 나는 사랑받지 못해’, ‘나는 못생겼어’ 등의 이유로 자신을 비하하는 현상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의 상당수는 비자살적 자해로, 자살까지는 가지 않지만 자신을 위험하게 방치하거나 내버려두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행동들을 하는 걸까요?

자해가 일종의 세상 공격으로부터 도망치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수단입니다. 자기 자신을 훼손함으로써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음을 느끼고, 고통을 느낌으로써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지요. 인정과 관심을 받고 싶은 것은 인간의 공통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정과 관심을 받지 못해 심하게 낙담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바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거나 타인을 괴롭히는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관심을 두니까요. 대개 걱정해주거나 보살펴줍니다. 때론 야단이나 비난이 따르기도 하겠죠. 하지만 그 모두가 당사자에게는 관심의 일종으로 여겨집니다.

자해는 스스로에게 강한 고통을 가함으로써 자신의 다른 고통을 잊고자 하는 충동적이며 중독적 행위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상처를 통해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식으로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주길 바란다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해를 통해 어떤 마음(메시지)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인지, 그 숨은 목적을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 마음에 공감하고 반응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사례처럼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하는 부모님에게는 쉽게 이해가 안 되고 긍정적 반응이 어려울 겁니다. 세간에서 말하는 반듯한 모습의 아들을 바라고, 그렇게 이끌고 싶은 마음이겠지요? 야단을 치거나 어르기만 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아들이 피하고 싶은 고통이나 전하고 싶은 아픔이 있을 텐데, 그걸 먼저 파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지금 아들의 행동은 ‘살고 싶어서 하는 몸부림’일 테니까요.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아들에게 반응하면 좋을까요? 그 부분은 다음 주에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박예진(율리아) 한국아들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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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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