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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50. 말씀은 오늘 우리 안에 살아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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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농부이신 아버지를 따라 새벽에 일찍 일어나던 습관은 내 삶의 태도가 되었다. 이른 새벽 아직 아무도 만나지 않은 상태로 주님을 만나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귀한 시간이다. 장소야 어떻든 일어나 가장 먼저 주님을 만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농촌에서의 새벽은 산새들조차 아직 입을 열지 않은, 별들만이 눈을 깜박이고 있는 고요함 그 자체이다. 아침 묵상이 끝날 때 즈음이면 산새들의 아침 찬미와 고라니들의 새벽 마실이 시작된다. 계속되고 있는 창조로 태어나는 생명의 합주인 것이다.

이곳 도시에서는 생명이 시도 때도 없이 심어지고, 뽑히고, 밤낮없이 맥아리 없는 성장을 하고 있어 보인다. 본래의 목적대로 살도록 돕기보다는 심은 인간을 위해 보이기 좋으라고 잠시 심어지기 때문이다. 밤에도 낮처럼 훤하니 쉼 없이 꽃이 핀다. 시골에서는 새들이 아침마다 풀잎 이슬에 제 얼굴 씻고 반짝이는 날개를 뽐내며 노래를 하는데, 도심 속 비둘기들은 매연으로 꾀죄죄해진 날개 빛으로 전날에 술 취한 사람들이 토해놓은 자리에 빼곡히 모여 다투듯이 먹고 있다. 자세히 보면 도시에서는 시골에서 보기 힘든 장애 비둘기가 너무나 많다. 도시에서 아무리 편리하고 깨끗하게 산다 한들, 결국 병든 저 비둘기들처럼 아파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지 못하고 있어 보인다. 이 도심 속에서 공해에 찌든 채로 날아다니는 저 새들처럼 우리는 찌들어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을 못 보고 있는 게 아닐까? 단지 몇 그루의 나무를 옮겨 다니면서 사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인 양 그렇게 붙어살고 있는 모양이 아닐까? 철저히 인간의 편리를 위한 땅이 바로 도시이다. 이곳에 다른 생명이 그들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는 곧 우리의 가치관에 그들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얼마 전 강의를 위해 속초에 다녀왔다. 걷기에는 먼 거리라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과의 짧은 대화 중에 마음이 정말 답답함을 느꼈다. 속초 바닷가 인근에 초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려고 하고 그것이 발전이라고 하는데, 정작 지역의 시민들은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하고, 타 도시 사람들의 별장식 집짓기가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사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땅도 작은 나라인데, 잠시의 호사를 위해 굳이 이렇게 많이 집을 지어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니, 정말 답답해요. 가진 사람들 더 배 불리는 이 구조가 정말 답답해요.” 기사님의 조용한 한탄이었지만 내 마음도 답답해졌다.

이 좁은 나라에서 얼마나 더 숲을 밀어내고 집을 지어야 할까? 그것도 집 없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집 있는 사람들의 두 번째, 세 번째 집을 위해서 살아 있는 흙을 봉인시켜야 하는 걸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83항에서 “지성과 사랑이 부여된 인간은 그리스도의 충만으로 이끌려 모든 피조물을 그들의 창조주께 인도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우리 인간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사명을 상기시켜 주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하면서 가진 돈 중에 얼마를 희사하는 것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술에 취해 토해놓고 새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혹은 공원에 쌀을 뿌려주며 그들을 위한 최선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강아지 발에 신발 신기고 유모차에 태워 다니며 생명을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사제도 레위인도 초주검 된 사람을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으나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의 상처를 싸매주고, 돌봐준다. 하느님 백성인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 말씀이 살아 계시다는 것은, 오늘 우리가 보는 모든 생명과 이웃의 울부짖음에 멈추어 싸매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으로? 그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 말씀은 우리 안에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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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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