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매미가 온 힘을 다해서 울고 있는 듯하다.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보다 매미 울음소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그래도 시끄럽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저들의 시간이 단 일주일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7년에서 17년을 땅속에서 땅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여 고작 7일을 살고 죽기 때문이다. 일주일간 자기의 사명을 충실히 살다가 가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저 소리가 숭고하게도 느껴진다. 그런데 도심에는 인도에 떨어져 죽은 매미들이 유난히 많아 보인다. 그들을 보면 ‘쟤는 다 울고 죽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몸 붙일 기둥 하나 없어, 다만 방충망에라도 발을 붙여 보지만 그곳은 정말 살 곳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도심에서 이들이 편히 몸 붙여 살 수 있는 곳은 은행나무 가로수밖에 없다. 아, 정말 미안하다. 그들과 인간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같은 피조물인데, 이들이 살 영토를 몽땅 인간의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우리는 창조 때에 잘 돌보고 다스리라고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잊어버리고, 뭘 돌봐야 하는지 그 감각도 잊어버렸다. 복음에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그 대목이 지금 우리에게 딱 들어맞는다. 집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출타했다가 돌아온 주인이 봤을 때에 잘 돌보고 있는 집사와 그렇지 않은 집사에게 한 말은 지금 우리가 알아들어야 할 경고와도 같다. 우리는 지금 자기에게 도취되어 하느님께서 맡기신 다른 피조물들을 의식하는 감각조차도 잃었기 때문이다.
저 매미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문득 돌아봤으면 좋겠다. 들을 시간이 없다고 하기에는 저 친구들의 울부짖음이 너무나 크다. 그런데 최근 폭우와 폭염을 경험하면서 새들의 움직임이 다르다. 노래라기보다는 두려운 울부짖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연이 드러내는 징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기 몸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대대손손 이어온 그 기억을 자기들 몸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직도 이들의 소리를 그저 낭만적인 노래로만 알아들으며 그 울부짖음을 알아들을 수 없다면, ‘일단 멈춤’을 해야 한다. 매미나 새들이 기억하고 있는 연결된 감각을 우리가 잃은 것에 대하여 경각심을 가지고 멈춰야 한다.
사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들의 울부짖음보다 더 큰 소리를 듣고 있다. 하나는 마스크 쓰고 길을 오고 가는 아이들과 유모차에 타고 있는 아기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사랑스러움 너머에 “제발 우리를 살려주세요”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지구 공동의 집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다른 생명에게 ‘사랑한다’, ‘아름답다’고 하면서 자신이 취하고 싶은 것을 위해 아이들과 생명을 이용하는 몹쓸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어 보인다. 아이가 울면 달려가서 왜 우는지 알아볼 수 있는 부모의 마음이 지금 우리에게 시급하게 필요하다. 지구 공동의 집, 우리 집이 지금 아주 불안한 상태이다. 이 집에 사는 많은 가난한 사람들과 생명이 울부짖고 있다.
폭우에 수해로 생명을 잃고 위협을 느낀 사람들과 다른 생명을 보면서, ‘나는 고층 아파트에 살아서 괜찮다’고 생각하며 안심한다면, 우리는 정말 ‘바보’이다. 반지하라서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것으로 생각하고 단지 반지하를 없애는 데에 집중한다면 그것은 정말 ‘우매한 생각’일 것이다. 멈추고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빨리 점검해야 한다. 생태계의 이 움직임을 보며 도망갈 것이 아니라, ‘함께’ 풀어갈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교황님께서 왜 이 위기의 때에 진정한 리더는 ‘지구의 아픔을 자기 몸으로 느끼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리더는, 높은 자리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리더가 아니라 사람 서리에서, 그리고 저 생명과 더불어서 사는 그 자리에서, 그러니까 낮은 자리에서 ‘함께’ 경청하고, ‘함께 살 길’을 찾는 ‘그 사람’일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힘으로 다스리는 통치’가 아니라 ‘함께 손을 잡는 것’이다. 낮은 자리에서는 함께 앉을 수 있다. 함께!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