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하늘이 파랗고 높다. 높이 비상하는 새들이 파란 하늘을 만끽하며 무리를 지어 날고 있다. 이제 꽃처럼 치장한 나뭇잎들이 저를 좀 봐달라고 손짓하는 그 시절이 되었다. 거리는 은행 냄새로 가득하고, 센 바람이 부나 싶으면 왠지 머리 위로 은행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살짝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 전 도시의 조경하시는 분들이 기계 차를 이용해 은행 털기를 하고 계셨다. 말 그대로 은행 털기. 온 도시가 은행 냄새로 가득했고, 이날은 마치 벼 베기 하는 날처럼 추수하는 분위로 가득했다. 새롭게 맞이하는 추수 풍경이었다. 정해진 때가 된 것이다.
나는 요즘 “지구의 아픔을 자기 몸으로 느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신 교황님의 말씀이 더욱 간절한 호소로 다가온다. 그리고 내 몸으로 이것을 느끼고 있다. 마치 땅의 위기를 감지한 새들이 비상할 준비를 하듯 온몸으로 오늘의 위기를 감지하고 모두에게 이제 비상할 채비를 하라고 다양한 방법으로 호소하고 있는 모양이다.
최근에 많은 분께서 나에게 “수녀님, 방송에서 봤어요. 수녀님, 글 잘 읽고 있어요”라고 말씀하시며 알아봐 주신다. 문득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 거지?’라고 스스로 묻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사실 수녀원에서 생활하며 미사 독서조차 앞에 나와서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사시나무 떨듯 떨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나에게 한 말씀이 들린 이후로 나는 나 자신의 떨림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말씀을 입술에 담으려고 정신을 모았다. 바로 이 말씀이다. 예레미야서 1장 17절의 말씀. “그러므로 이제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나는 주님께 ‘나의 이 떨림을 좀 없애주세요’라고 청했었는데, 그분은 나에게 ‘너는 먼저 가서 백성에게 말하여라’라고 하시며, 오히려 내가 당신의 말씀을 전할 때에 떨면 당신이 나를 떨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사명을 받으며 듣게 된 이 말씀이 내 영혼에 깊이 박혀 내 사명으로 받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이상하리만치 그 떨림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누가 물어도 대답하려고 항상 준비하려는 모양으로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오늘 복음이 우리 삶을 어떻게 비춰주고 있는지를 고민하고 기도하게 된다. 사실 아픈 오늘의 현실을 보면, 매일의 복음 안에서 예수님의 시선을 볼 수밖에 없다. 그분 시선을 내 눈에서 느끼게 되면, 나는 내 몸으로 그들의 아픔을 감히 느끼게 되고 이것을 성령께서 재촉하시는 것으로 듣게 되었다. 그러면 나를 잊고 두려움 없이 뭐라도 말하게 되었다.
지난 9월 24일은 전 세계의 의식 있고 행동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행진하며, 지구 공동의 집의 위기와 어떻게 함께 살기 원하는지를 외치며, 아직 모르는 이들에게 호소하는 기후정의행진의 날이었다. 거리를 지나가던 이들이 우리 행진에 합류하여 함께 외치는 것을 보니, 마치 외따로 날던 새가 본래 무리의 대열에 들어와 함께 비상하는 것처럼 아름답게 다가왔다. 서울에만 3만 5천여 명이 거리로 나왔다. 추수했을 때에 여문 곡식의 풍요로움을 보듯이 시민들의 얼굴이 그렇게 빛나 보였다. 실제로 그보다 많은 사람이 지구 공동의 집의 미래를 의식하고 있고, 뭐라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행동하는 믿음을 살아야 한다. 울부짖는 생명의 소리를 들으며 우리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고 있다면, 복음을 잘못 읽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믿음을 더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우리에게 “믿으면 된다”라고 말씀하시고, 또 “믿으면 너의 삶이 바뀐다”라고 말씀하신다. 믿는 이들인 우리는 세례 때에 우리게 오시어 거하시는 성령, 예수님을 재촉한 바로 그 성령께 인도되어, 거리로, 또 울부짖는 소리가 나는 그 자리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오소서 성령님!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