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19)어지러운 세상에서 듣는 숲의 소리
아무리 훌륭한 작곡가나 연주자의 음악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지루할 수 있는데, 숲에서 듣는 자연의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 소리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는 기본이고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 계곡 저편에서 흐르는 물소리, 곤충과 벌레들이 내는 소리가 잘 어울려 들려온다. 숲에 들어서면 녹색의 경관과 더불어 다양한 소리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한다. 자연의 소리가 이렇게 질리지 않고 또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이유는 바로 불규칙한 규칙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바람 소리나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면 규칙적이지 않으면서 나름 규칙된 형태의 소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숲에서의 소리는 이렇게 다양하고 입체적이기 때문에 ‘소리경관(soundscape)’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소리도 여러 가지 것들이 겹쳐지고, 눈과 귀, 그리고 모든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들은 포함한다는 개념이다. 또한, 이런 소리는 우리가 겪은 경험이나 향수 등을 내포하기 때문에 포근한 정서와 감정까지 곁들여 준다. 지난 초여름 내가 사는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소쩍새의 울음소리에 한참 귀를 기울인 적이 있다. 새가 운다는 표현은 부정적이라는 생각에 잘 쓰지는 않지만, 소쩍새는 그 표현이 알맞을 정도로 구성지다. 나는 이 소쩍새의 소리만 들으면 50년도 훨씬 지난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돌아간다. 방학이면 산으로 둘러싸인 할아버지 댁에서 지내곤 했는데 한여름 밤,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에 누워 들었던 그 추억이다. 코끝에 와 닿았던 모깃불의 매캐한 냄새,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주고받던 그때의 대화들, 어쩌면 그렇게 생생하게 그때가 기억나는지 참 신기하다.
숲의 소리가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우리에게 심리적 안정과 회복을 준다는 연구 결과들은 상당히 많다. 숲이 주는 미적 경관도 마찬가지지만, 소리 역시도 단순함보다는 다양한 소리가 함께 어우러질 때 우리에게 더 큰 심리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우리 실험실에서 대관령 치유의 숲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사람들은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등의 숲 소리가 어울릴 때 정서적 감정이 안정되고 뇌에서 안정된 파장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근 이러한 숲 소리의 심리적 효과가 알려지면서, 이를 활용한 다양한 숲 치유 프로그램들이 제공되고 있다. 때로 불면에 시달리거나 긴장되고 초조할 때 이런 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도시의 환경에서 사는 현대인들은 인공적 소리나 소음에 익숙해져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85데시벨(dB) 이상의 소음이 계속되는 곳에서 지내면 난청의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 85dB은 교통이 정체되거나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소음 정도이기 때문에 도심에서의 생활은 귀를 혹사하는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12세 이상 인구 15.2가 앓고 있는 ‘소음성난청’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 혹사당하는 귀를 위해서도 자주 숲으로 가서 고요와 자연의 소리로 치유하게 시킬 필요가 있다.
과거 선비들은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귀를 씻었다고 한다. 세속의 더러운 이야기를 듣고 귀가 더럽혀졌다고 생각해서다. 언제는 안 그랬을까마는 요즘 들어 부쩍 뉴스나 SNS, 그리고 여기저기서의 모임에서도 혼란스럽고 자기만의 아집에 사로잡힌 말들로 세상이 어지럽다. 세상에는 즐겁고 훈훈한 이야기도 많을 터인데 굳이 시끄러운 소식만 전하는 언론의 속성이 안타깝다. 자주 숲으로 가 맑고 청량한 자연의 소리로 더럽혀진 귀를 씻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신원섭 라파엘(충북대 산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