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들어서는 문턱, 기온이 제법 싸늘하다. 이때쯤이면 나무들은 서서히 추워지는 날씨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봄부터 여름까지 입었던 잎의 녹색을 버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단풍이라 하며 계절이 바뀌고 기온이 내려가면서 녹색의 나뭇잎이 붉은색이나 노란색, 갈색 등으로 물드는 현상이라 정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온이 일찍 내려가는 설악산에서 9월 중순부터 시작한다. 기상예보에서는 산의 약 20가 단풍일 때를 첫 단풍이라고 하고 80가 되면 절정이라고 표현한다.
나무를 비롯한 식물들은 광합성을 통해 성장한다. 나뭇잎이 가진 엽록소가 뿌리에서 끌어올린 물과 햇빛, 그리고 공기 속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탄수화물을 만들어 몸집을 불려간다. 나뭇잎이 광합성을 할 때 이산화탄소는 잎의 뒷면에 있는 구멍, 즉 기공을 통해 잎으로 들어오고, 물은 뿌리에서 빨아들여 흡수된 후 줄기를 따라 맨 꼭대기의 잎까지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숨 쉬는 데 필요한 산소가 만들어지고, 쾌적한 기온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학식이 바로 이 광합성식(6CO₂+12H₂O → C6H₁₂O+ 6O₂ 6H₂O)이다.
나무가 광합성을 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무의 뿌리는 상상할 수 없는 힘으로 물을 빨아들여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 달린 잎까지 전달한다. 그런데 가을이 오면서 날씨가 추워지고 땅이 건조해지면 뿌리는 물을 끌어들여 나뭇잎으로 보내는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이 도달하면 나뭇잎은 스스로 엽록소를 버리고 본래 가지고 있던 색깔을 나타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단풍이다. 단풍은 나뭇잎이 스스로 물러갈 때를 잘 알고 자신을 버리는 겸손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만일 뿌리야 어떻게 되든지 “난 이 녹색의 옷을 계속 입을 거야” 하며 버틴다면 나무는 다 죽을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공멸인 셈이다. 나무들은 이렇게 자신을 버림으로 매년 부활을 맞는다.
단풍의 색깔이 나무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나뭇잎에는 녹색의 엽록소 외에도 빛을 흡수하는 색소로 70여 종의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아닌이 있다고 한다. 이들이 엽록소가 열심히 일하던 봄과 여름에는 가려져 보이지 않다가 가을이 되면 없어지면서 이들 색소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독특한 색깔을 나타낸다. 그래서 가을의 단풍은 표현할 수 없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미국의 콜게이트대학 연구팀은 단풍나무의 안토시안은 원래 있던 것이 아니라 나무가 추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방어막으로 생성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고 한다. 기존의 단풍 원리와는 확연히 달라 후속 연구로 정확한 원리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쯤 해서 눈치 빠른 독자들은 그럼 ‘녹색 잎을 가지지 않은 홍단풍 같은 나무들은 광합성을 할 수 없지 않느냐?’고 질문할 것이다. 이 나뭇잎들도 가려져 있을 뿐이지 엽록소를 가지고 있어서 광합성을 하고 있어서 생존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가을 하면 단연 높고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단풍을 떠올린다. 몇 년 전 업무 출장으로 인도네시아에 가서 교민들과 만나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살면서 가장 아쉬운 게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라고 한다. 고국의 금수강산이 그리워 눈물까지 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기후의 변화가 지속된다면 이제 우리나라 남부는 고산 지대를 제외하고 단풍이 없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새겨들어야 할 경고이다.
신원섭 라파엘(충북대 산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