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곡식이 여물어가는 계절, 농부들의 손이 더 바빠지는 철이다. 얼마나 바쁠지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수확하는 농번기에는 겨우살이 먹을 양식이 하나하나 준비된다는 기쁨에 피로를 잊을 수 있다. 때로는 덜 여문 호박이나 고추, 곡식들이 있지만, 농부들은 이것을 살뜰히 거두어 이웃과 나눈다. 이조차 아쉬운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남은 밭째로 거둬가라고 내어준다. 성경에서 룻에게 나눈 것처럼 이삭줍기를 할 수 있도록 내어주는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 마을에는 감나무가 많았다. 이 계절이 되면 홍시가 된 감을 뜰채로 따곤 했는데, 나무마다 대여섯 개는 남겨두었었다. 어린 나로서는 그것이 궁금했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거는 까치밥이여. 저거마저 우리가 따먹으면 새들이 겨울에 먹을 것이 없어. 새들도 겨울을 나야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함께 산다는 게 대단한 격식으로 챙겨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누군가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열매와 시간과 정성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 많은 사람이 교과서를 찾는다. 수많은 말로 머리를 깨우치고 가슴을 열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는 것이 마치 사는 것처럼 여기고 교과서를 덮고는 다시 자신만을 위해 탑을 쌓는 사람들이 많다. 새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지, 들풀이 그들만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가난한 내 이웃의 행복이 우리를 얼마나 더 행복하게 하는지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철새들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하늘 길을 날 수 있는 것은 제 몸에 ‘기억’의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철새들처럼 우리 몸에는 이 모든 생명과 함께 사는 기억, 돌보는 기억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그것을 잊었을 뿐이다.
다행인 것은 본래의 기억으로 돌이키기 위한 우리들의 몸부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 9월 한 달 동안 ‘탈석탄법 제정을 위한 국회청원 서명운동’이 진행되었었다. 5만 명의 서명을 얻어야 국회에 발의될 수 있다는 것이 희망이었지만, 9월 중순이 되었을 때에 10밖에 받을 수 없어서 마음에 조바심이 일어났었다. 그런데 지금 삼척 현장에서 온 마음과 몸으로 활동하고 있는 성원기 교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녀님, 될 거예요. 걱정 마세요.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니까요.”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갔다. 교구ㆍ수도회ㆍ가톨릭평화방송과 가톨릭 굿뉴스, 그리고 시민단체들이 발 벗고 나서서 결국 27일에는 3만 명의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3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2만 명의 서명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이틀 동안 많은 수녀님과 형제자매들이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만나는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발 벗고 뛴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29일에 마침내 5만 명의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우리가 기적을 만들었어요!’라고 말을 했다. 정말 기적이었다.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너무 기쁘고, 함께 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결과를 보자마자 성원기 교수님께 전화를 했더니, “수녀님, 이거 봐요. 된다니까요”라고 하시며, “저는 우리가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주님께서 이루어주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주님께 감사드리면서 그분께서 시키시는 일을 계속 해나갈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예언자 엘리사가 나아만으로부터 받는 그 어떤 감사도 하느님께로 돌려드렸던 것과 같은 자세를 교수님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고, 이러한 믿음을 통해 당신 일을 이루시는 주님께 감사드렸다.
우리는 순간순간의 위기와 바람이 있을 때에 주님께서 이루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그런데 일이 이루어졌을 때에 노력한 자신의 몫을 드높인 후, 정작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시고 함께하셨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열 명의 나환우를 낫게 해 주셨지만 한 명만 돌아와 감사드리고, 결국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와 참으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