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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약이 불법 유통되고 있다. 왼쪽은 낙태의 심각성을 다룬 영화 ‘언플랜드’의 한 장면이고, 오른쪽은 낙태약 구입과 복용에 대한 후기이다. |
“약물 배출했는데, 4일 우선 먹고 병원에서 찌꺼기 남았다고 3일 더 먹었어요.”
“약을 어제 복용하고 2시간 뒤 덩어리가 나왔습니다.”
해당 글 속 ‘찌꺼기’와 ‘덩어리’는 태아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넘쳐나는 낙태약 후기들이다. 낙태약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 허가를 받지 않아 이를 구매, 복용, 판매하는 행위 모두 범죄에 해당하지만,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관련어를 검색해보니 구매 사이트부터 후기까지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렇자 “주무부처인 식약처가 논란이 있는 약품에 대한 단속을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낙태약은 꾸준히 논란의 대상이다. 7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오유경 식약처장은 낙태약 ‘미프지미소’의 허가 사항에 대한 질의에 “심사 중”이라고 밝혔다. 자료 보완 등을 이유로 중단됐던 심사가 재개됐다. 캐나다의 낙태 지원 단체가 만든 사이트 ‘위민온웹’의 행정소송도 본격화됐다. 해당 사이트는 전 세계 여성을 대상으로 낙태 정보와 관련 약물을 제공한다. 지난해 12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약사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이 사이트를 접근 금지 조치했으나, 위민온웹 측이 반발하면서 법적 다툼을 하게 됐다. 약사법에 따르면 약국을 개설하지 않은 사람 등은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다.
실제 온라인 의약품 불법 유통 적발 건 중 낙태약은 2015년 12건에서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2019년 2368건까지 늘었다. 올해 8월 기준 477건으로 줄긴 했으나 여전히 온라인상에서는 검색 한 번으로 구입처가 나올 정도로 단속은 허술하기만 하다.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식약처가 불법 유통을 방치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구매자와 사용자를 막을 방법도 없다. 현행법상 불법으로 약물을 구매하거나 사용한 사람까지 처벌 대상인 의약품은 스테로이드·에페드린 주사제, 에토미데이트 정도다. 유일하게 제재 근거가 됐던 낙태죄의 처벌 조항도 지난해 1월부터 효력을 상실하면서 불법 약물을 구매하고 복용하는 현상을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3월 최근 5년 내 낙태 여성 6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약물적 방법으로 낙태를 경험한 사람은 189명이며, 이 가운데 42.8가 국내 혹은 해외의 낙태약물 판매자나 단체를 통해 구매했다고 응답했다.
이에 생명존중 단체 이름다운 피켓의 서윤화 대표는 “낙태약은 태아에게 가는 영양분을 차단해 태아를 아사시키고, 자궁에 강한 수축을 일으켜 탈락된 조직들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며 “이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에서도 ‘혼자 있을 때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교구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 박은호 신부는 “생명에 대한 이념이 낙태가 여성의 기본 권리고, 낙태를 자유롭게 해야 이 권리가 신장된다는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태아의 생명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해를 끼치는 낙태를 하나의 권리로 인정해 모든 여성에게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건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불법 행위를 제대로 규제하고 단속하지 못하는 정부 당국의 잘못”이라며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식약처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해달라”고 당부했다.
식약처는 “온라인 환경의 특성상 완전하게 모니터링하거나 차단하는 것은 물리적 한계가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낙태약 불법 유통에 대해 자체 모니터링과 제보, 대한약사회와 합동 점검을 하며 단속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런 사례가 확인된다면 즉시 방통위에 협조를 요청해 사이트를 차단하고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를 하겠다”고 전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